"MLB는 아직, KBO부터 평정할 것"...현역 다녀온 22세 신인왕 KT 안현민의 약속 [더게이트 현장]
-신인상·출루율 2관왕 -8월 슬럼프, 9월 반등 -"KBO 최고 뒤 해외"
[더게이트=잠실]
22세 젊은 선수는 신인왕을 수상하며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좀 더 높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마법처럼 등장해 22개의 홈런을 때린 젊은 거포는 2025 KBO리그 신인상과 출루율상을 동시에 품에 안고도, 먼저 ‘다음 무대’가 아니라 지금 뛰는 KBO부터 짚었다.
24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5 KBO 시상식에서 신인왕을 받은 KT위즈 외야수 안현민은 “조금 더 좋은 리그에서 뛰고 싶은 욕심이 있는 선수라면, 일단 KBO에서 최우수선수(MVP)를 받고 리그를 평정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 시점에서는 미국, 일본을 본다기보다 KBO에서 최고 선수로 인정받는 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안현민은 이날 신인상과 함께 출루율상을 수상했다. 한국야구기자회 기자단 투표 125표 가운데 110표(88%)를 얻어 한화 이글스 정우주(5표)를 가볍게 따돌렸다.
안현민은 “몇 분이 표를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설령 나를 안 뽑았더라도 정우주 선수가 워낙 좋은 선수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쟁자들 사이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또 “영광스러운 상을 KT 이름을 걸고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팀 모든 선배와 코치, 감독이 나를 잘 보살펴주고 많은 기회를 줘서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8월 슬럼프, 9월 반등…멘탈을 다시 세운 시간
시즌의 고비에 대해 묻자, 안현민은 “반등을 시작한 건 그래도 9월부터라고 봐야 할 것 같다. 8월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슬럼프를 겪었는데, 만약 시즌이 9월에 끝났다면 상 경쟁이 조금 더 치열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면서 조금은 기대를 할 수 있는 시기가 됐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슬럼프의 원인에 대해 “어느 선수든 슬럼프를 겪을 때 몸의 문제라기보다 멘탈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정신적인 부분을 더 케어하고, 스스로를 계속 체크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까 한결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이 반등의 계기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주변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안현민은 “특정 누구 한 명이라기보다 주장부터 여러 선배들까지, 정말 모두가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조급해하지 말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고, 그런 조언을 들으면서 마음을 조금 더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2차 4라운드, 현역 입대, 그리고 22홈런
자신의 이력에 대해 안현민은 “나는 2022년 2차 4라운드 전체 38순위로 KT에 입단했다. 그해 8월 현역으로 입대했고, 전역 후 첫 시즌에는 1군에서 16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성적도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르다. 안현민은 “시즌 개막 한 달이 지난 4월 30일이 돼서야 처음 1군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는데, 그 이후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112경기에 나와 타율 0.334, 22홈런, 80타점을 기록했고, 출루율·장타율·OPS까지 다 좋게 나와서 나 자신도 놀랐다”라고 말했다.
현역 복무를 마친 뒤 이런 성적을 낸 점에 대해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이런 성적을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나를 보면서 ‘현역으로 다녀와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군대 가는 후배들에게…“공포감보다 목표를 먼저 세워라”
안현민은 “KT에서는 현역 입대를 앞둔 선수들이 내게 먼저 연락을 준다. 군 생활 중에 운동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서로 조언을 주고받다 보니 그런 문화가 나름 좋다고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본인의 경험도 털어놨다. “현역 입대가 확정됐을 때는 ‘전역하고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이 생긴다. 몸이 다친 것도 아닌데 그런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런데 막상 다녀와보니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군 생활을 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군에 가는 선수들에게도 공포감에 머무르기보다 목표를 보고 생활하라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강백호의 이적, “아쉽지만 각자의 최선 존중해야”
KT 간판이었던 강백호의 한화 이글스 이적을 두고 안현민은 “어떤 선수든 한 팀에서 같이 뛰던 선수가 떠나는 건 당연히 아쉽다. 다만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고, 백호 형도 본인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를 포함한 팀 동료들과 팬들은 많이 아쉽겠지만, 팀을 떠났다고 해서 인연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서로 잘 준비해서 내년에 각자의 자리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 응원해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강백호가 떠난 만큼 본인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야구는 한 명이 팀 전체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종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에도 특별히 다르게 준비하기보다, 올해처럼 똑같이 준비하려 한다”라고 답했다.
또 “물론 책임감을 갖고 야구를 하겠지만, ‘올해보다 훨씬 더 큰 짐을 지겠다’는 생각까지 하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내년에는 어떤 선수가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기대보다 못하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게 나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개인 성적보다 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더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최고를 논하려면, 먼저 수비부터”
수상 소감에서 ‘언젠가 최고를 논할 수 있는 자리에 서고 싶다’고 언급한 이유를 묻자, 안현민은 “그런 레벨의 선수가 되는 건 어떤 역할을 맡아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서기 위해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부분이 수비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MVP와 상관없이, 팀에서 내가 반드시 잘해야 하는 기본 역할이기도 하다. 타격은 어떻게 하면 더 잘 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나중에 더 높은 자리에서 상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최근 체코와 일본과 가진 국가대표 평가전 경험에 대해서는 “올해 시즌 내내 나름의 자신감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자신감이 과해지면 오히려 플레이가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더라. 평가전에서는 자신감을 앞세우기보다 ‘욕심 내지 말고 기본만 하자’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앞으로도 욕심보다는 기본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게 더 좋은 경기력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폰세 상대로 친 ‘홈런’…“팀이 이겨야 진짜 큰 홈런”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 안현민은 “한화 코디 폰세를 상대로 친 홈런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터뷰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홈런’이라고 말하긴 했는데, 그 홈런이 경기 흐름을 크게 바꿨다고 보지는 않는다. 진짜 큰 영향을 끼치는 홈런은 결국 팀이 이겼을 때 의미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과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친 홈런은 결국 승리를 따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홈런 역시 평생 홈런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럽다”라고 덧붙였다.
폰세와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폰세가 인터뷰 전에 ‘어떤 홈런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서, 나는 당연히 ‘형 상대로 친 홈런’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홈런 때문에 폰세가 1패를 하게 된 거니까, 여러 감정이 같이 떠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안현민은 다시 한 번 처음의 다짐을 꺼냈다.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좀 더 높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일단은 KBO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먼저이고, 그 과정에서 팀이 더 많이 이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