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헌의 브러시백] 김민성 “야구와 넥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엠스플뉴스]
| 넥센 히어로즈 주전 3루수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김민성. 이젠 넥센의 프랜차이즈 선수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김민성을 만나 뒤늦게 터진 시즌 첫 홈런, 김명신 사건, FA 취득, 그리고 넥센이란 팀의 의미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머니볼]은 야구 경기 장면이 가장 적게 등장하는 야구 영화이자, 그 어느 야구 영화보다 야구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영화다. 영화의 결말 부에서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비디오 분석을 하다 한 뚱뚱한 마이너리거의 타격 장면을 본다.
제레미 브라운이라는 선수는 완벽한 홈런 타구를 날리고서도, 자기가 홈런을 친 줄을 모른다. 뒤뚱대며 전력으로 베이스를 돌다 넘어진다. 상대 선수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홈런이란 사실을 깨닫고, 베이스를 도는 브라운의 모습을 보면서 빌리 빈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넥센 히어로즈 내야수 김민성이 야구에 대해 느끼는 마음도 그와 같다. 김민성에게 야구는 아무 이유 없이 좋은 대상이다. 야구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보내는 시간이 그에겐 행복이다. 경기에 뛰지 못해도 매 순간 행복을 느끼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 안타와 홈런을 치지 못해도,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 행복하다. 무엇보다 넥센이란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김민성이다.
이제 김민성에게서 롯데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한 버건디색 유니폼이 마치 피부색처럼 자연스러운 일부가 됐다. 갓 고교를 졸업한 빼빼 마른 신인 내야수에서, 이제는 근육질 체구에 노련미가 느껴지는 어엿한 엘리트 선수로 성장했다. 모두 넥센 유니폼을 입은 뒤 생긴 일이다.
김민성에게 야구와 넥센은 정말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상이자, 언제까지고 버릴 수 없는 존재다.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야구장에 나선다는 김민성을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홈런 안 나와도 초조하지 않았다”
5월 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드디어 시즌 첫 홈런이 나왔다. 시즌 29경기 만에 나온 첫 홈런이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홈런이 안 나와서 초조하거나 불안한 건 없었다.
사실 첫 홈런이 5월에 터진 게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에도 5월 1일에 1호 홈런을 쳤고, 이후 2호 홈런은 6월 8일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해 홈런 숫자는 15개였다. 2015시즌에도 5월 13일 롯데전에서야 1호 홈런이 나왔다. 지난해엔 첫 홈런은 4월 5일에 때려냈지만, 2호 홈런은 5월 11일이 되어서야 터졌다. 올 시즌 첫 홈런은 오히려 일찍 나온 편이다. (웃음)
알고 있다. 원래 홈런이 안 나올 때는 지독하게 안 나오다, 한번 터지면 몰아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홈런 타자도 아니지 않나. (웃음)
그래도 매년 15홈런 이상 때려내지 않나. 홈런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겠다.
만약 내가 홈런을 치려고 욕심냈다면 지금 이 정도로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진 못할 거다. 진작에 망했을 거다.
그럼 타석에 설 때 주로 어떤 목표를 갖고 타격을 하나.
나는 계속 똑같다. 1년 풀시즌을 치르는 내내, 좋은 컨디션으로 공을 강하게 때리는 게 목표다. 좋은 타이밍에서 좋은 스윙을 하는 걸 항상 염두에 둔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 현재까지 타격 내용이 아주 좋다. 컨택트 비율이 89.9%로 풀타임 선수가 된 이래 가장 뛰어나고, 타구 방향도 좌(36.6%)-중(33.3%)-우(30.1%)로 고르게 형성되고 있다.
내가 그랬나? 그건 몰랐다.
아직 홈런은 많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 외의 부면에선 여전히 좋은 타격 지표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꾸준하게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다.
나는 항상 똑같이 하려고 한다. 그간 몇 년을 풀타임 시즌을 치르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바로 시즌이 너무 길다는 거다. 이 긴 시즌 동안 어떻게 한 경기 한 경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시즌이 끝났을 때 최종 성적이 나오지 않나. 만약 내가 잠깐 잘한다고 들뜨고, 못한다고 초조해하고, 들쭉날쭉하다면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가 어렵겠더라. 그래서 늘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보내려고 한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어땠나. 그때도 지금 같은 마음이었나.
어릴 적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야구했다. 그런데 어렸을 땐 지금처럼 알고 할 수가 없다. 어릴 적엔 그저 형들을 따라서, 팀의 분위기에 취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쭉 가는 경향이 있다.
지금처럼 한 시즌을 잘 치르는 방법을 깨닫게 된 건 언제쯤인가.
롯데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되고 난 뒤다. 2013년 정도? 사실 1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까지도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 내가 왜 잘하게 됐는지도 잘 몰랐다. 코치님과 감독님들이 자신감을 키워주신 덕분에 좋은 성적을 냈는데, 시즌이 끝난 뒤 돌이켜 보니 내가 야구를 어떻게 한지도 모르고 있더라.
그랬나.
그래서 다음 시즌을 앞두고 캠프를 치를 때 연구를 많이 했다. 어떻게 한 시즌을 치르며 몸 관리를 하고, 훈련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를 많이 연구했다. 그게 일 년 이년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나름대로 나만의 방식이 됐다.
최근 1군에 올라왔던 김규민 선수가 스프링캠프에서 김민성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단 얘길 했다. 그 외에도 도움이 된 선배로 김민성의 이름을 언급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다. 조언을 많이 해주는 편인 것 같다.
후배들이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려고 한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건 아니다. 그 선수들이 야구를 하다가 분명 잘 안되는 거나 궁금한 점이 있지 않겠나. 그럴 때 찾아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주려고 한다. 그게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전부 알려주려고 한다. 지금도 팀에 어린 선수가 많다. 그들에게 어떻게 시즌을 잘 치를 수 있고 잘 안 될 때는 어떡해야 치고 올라올 수 있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이야기해주는 편이다.
팀에 따라선 베테랑들이 치고 올라오는 어린 선수들을 찍어 누르려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반면 넥센은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선배들이 많다. 올라오는 신인 선수마다 좋은 활약을 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경쟁 상대이기도 하지만, 후배들이 잘해야 팀에도 좋은 것 아니겠나. 마찬가지로 우리 후배들도 선배들을 무시하거나 기만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서로 간에 그런 관계가 잘 유지될 때 좋은 팀이 된다.
“관중의 함성, 가진 능력 이상 끌어내는 힘”
개인적으로 득점권 타율이 신뢰도가 높은 스탯이라 생각진 않는다. 그걸 전제로 하더라도, 올 시즌 초반 득점 찬스에서 성적이 굉장히 좋다. 주전 타자 가운데는 서건창(0.464) 다음으로 좋은 득점권 타율(0.394)을 기록하고 있다. 찬스일 때 어떤 생각으로 타석에 서는지 궁금하다.
나도 득점권 타율 안 믿는다. (웃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타점 기회가 있을 때는 어떻게든 그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하자는 거다. 주자 3루건 2, 3루건 만루던 간데 굳이 안타를 치지 않아도 득점할 방법은 많다. 희생플라이도 있고, 빗맞은 땅볼도 있다.
꼭 안타를 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단 얘긴가.
맞다. 어릴 적엔 무조건 안타를 쳐서 주자를 다 들여 보내려는 욕심이 있었다. 근데 그런 욕심을 부리면 한 시즌을 버티기가 어렵더라. 결과가 생각대로 나지 않으면 힘든 시즌이 될 수밖에 없다. 안타 치고 홈런 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상황에 맞는 타격이 있다. 상황마다 팀이 1점을 원하는 상황도 있고 홈런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주자 1루일 때는 삼진이 팀배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병살타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난 상황을 나눠서 타격에 임한다. 점수 차와 이닝, 상황에 따라 내가 어떻게 타격할지 생각하고선 타석에 서는 편이다. 득점권에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주자를 홈에 들여보낸다는 생각을 한다. 유리한 카운트에선 자신 있게 치고, 불리한 카운트에선 어떻게든 득점으로 이어지게 하려 한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다. 캠프와 시범경기까지만 해도 거의 매 경기 실책이 나왔다. ‘올해 김민성 수비가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수가 잦았다. 그런데 막상 시즌을 시작하니 거의 실수 없이 완벽한 수비력을 발휘하고 있다.
솔직히 캠프와 시범경기, 청백전 할 때가 가장 힘들다.
이유가 뭔가.
시즌 때와 환경이 달라서다. 경기에 임할 때 경기장 앰프 소리라든가 긴장감, 마음가짐이 전혀 다르다. 연습경기라서 대충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기에 몰입하고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환경 조건이 맞지 않는단 얘기다. 그런 환경이 갖춰져야 제가 가진 능력 이상을 끌어내서 집중할 수가 있는데, 청백전이나 시범경기 때는 그런 여건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관중이 있고 응원 소리가 들리는 게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얘긴가.
내가 경기에 몰입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앰프 소리가 울리고, 많은 관중의 환호성이 들리는 정규시즌은 선수가 가진 경기력을 업그레이드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이제 이해가 된다.
그래서 시범경기 때까지는 본의 아니게 실수 아닌 실수를 많이 했다. 물론 보는 사람 입장에선 조금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나 스스로는 괜찮다는 걸 아니까 전혀 문제가 없다. 시즌 때는 또 다른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큰 문제는 없다.
시즌 시작한 뒤엔 3루는 물론 유격수 수비까지 소화하고 있다. 벌써 3경기나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솔직히 생각지도 못한 포지션이다. 글쎄, 팀과 감독님이 원하신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김명신, FA, 그리고 넥센 히어로즈
올 시즌 초 본의 아니게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달 25일 타구에 얼굴을 맞고 쓰러진 두산 베어스 투수 김명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명신과는 그 이후 다시 만났나. ‘사건’ 다음날에도 바로 문병을 다녀왔었는데.
수술한 다음 날 다시 한번 문병을 하고 왔다. 별 이야기는 안 했다. 진짜 잠깐 얼굴만 보고 왔다. 수술하기 전엔 붓기가 좀 남아 있었는데, 수술한 뒤에는 확실히 얼굴이 좋아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어떤 느낌일 것 같나.
서로 다음에 보면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기로 했다. 물론 타석에서 승부할 땐, 다른 투수들과 똑같이 임할 거다. 명신이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가 하면 올 시즌을 앞두고는 ‘비운’의 선수로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야구 규약상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이 올해가 아닌 내년 시즌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FA 문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다.
시즌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오프시즌에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진 다소 예민하기도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막상 훈련을 시작하고, 캠프에서 단체 운동을 하다 보니까 FA 욕심은 내 개인적인 욕심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내가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것도 아니고, 야구는 이렇게 계속할 수 있지 않나. (웃음) 그 문제가 내가 경기를 하고 플레이하는 데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인가.
맞다. 그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신경을 쓰고 거기에 목을 매고 한다면, 여기 운동장에서 제대로 된 실력 발휘를 할 수가 없다. 주위에서 좋은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선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FA까지 필요한 등록일수를 채우는 것이다. 다른 건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항상 그라운드에서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난 그라운드에서 야구하는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사람 가운데 하나다. 개인적인 성적을 떠나서, 야구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게 야구하고 있다. 당장 안타를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내가 캠프 때부터 준비하고 생각한 방향을 흔들리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면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편이다. 그런 행복을 느끼면서 야구를 하다 보면, 나중에 시즌이 끝났을 때 내 성적은 100% 나온다는 확신이 있다.
확신이라.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 몸 관리나 훈련하면서 사소한 부분도 어느 하나 대충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준비하고 목표한 것들이 지켜지고 있다면, 만약 지금 성적이 가장 밑바닥에 있더라도 무조건 언젠가는 올라온다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다.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야구장에 나오고 있다.
야구가 왜 좋은지 이유를 한마디로 답할 수 있나.
이유 없다. 야구가 좋은데 이유는 없다. 진짜로 좋아하는 건 이유가 없는 법이다. 정말 좋은 건 어떤 설명이 되지 않는다.
멋진 대답이다.
나만이 느끼는 행복이고, 좋은 건데 이유가 있나. 그냥 야구장에 나오는 자체가 좋고, 야구하면서 사소한 것들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이전에 나이가 어릴 땐 꼭 경기에 나가야만 행복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경기에 뛰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런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더라. 어린 후배들 도와주고, 같이 잘해서 팀이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 그게 행복한 것 아니겠나.
이제는 어엿한 넥센 프랜차이즈 선수가 됐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하하.
롯데 시절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넥센의 색깔이 짙어졌다. 앞으로 넥센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내게 넥센이란 팀은 정말 특별한 팀이다. 내가 이 팀에서 지금처럼 야구를 하고, 이런 선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나 자신도 몰랐다. 야구선수 김민성을 다시 발견하게 해준 팀이 넥센이다. 정말로 이 팀을 버릴 수가 없다.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나중에 야구를 그만두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넥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내겐 너무나 감사한 팀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