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잠실]
‘무주공산’, LG의 2루 포지션을 두고 이보다 어울리는 표현이 있었을까. LG는 유독 2루수 ‘갈증’이 심했다. 팀의 고질적인 문제는 MVP 출신 서건창이 2021년 시즌 중 트레이드로 합류하며 일단락된 듯싶었다.
그런 서건창이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마저 부진하며 골머리를 앓은 LG다. 백업 내야수 정주현마저 기대에 못 미쳤다. LG의 전천후 내야 유틸리티로 활약 중인 김민성이 숨 가쁘게 2루까지 커버했던 이유다. 다만, 김민성은 7월 초 허벅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
LG의 거듭된 2루 고민을 덜어낸 건 바로 신민재다. 1996년생 우투좌타 신민재는 2017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에서 LG로 이적했다. 그 뒤 1군에선 4시즌을 뛰며 주로 ‘빠른 발’을 살려 대주자 역할을 수행했다.
신민재는 올 시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LG가 신민재에게 선발 2루수를 맡기는 빈도가 점차 늘고 있다. 무엇보다, 신민재 스스로 증명해 낸 성과라 뜻깊다. 올 시즌 67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1, 출루율 0.406, 장타율 0.361을 기록한 것. 도루는 21개로 전반기 1위다.
스포츠춘추가 신민재를 만나 숨 가쁘게 달려온 전반기 얘길 들어봤다.
2군에서의 값진 경험, 교훈…올 시즌 활약에도 좋은 영향 끼쳐

기분 좋은 전반기를 보냈다. 소속 팀이 1위로 마쳤고, 신민재 본인에게도 의미가 깊은 전반기였다.
시즌 초부터 ‘어떻게 해야겠다’는 뚜렷한 밑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언제나 상황에 맞게 팀이 내게 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지금까지 왔다(웃음). 팀 성적도 그렇고, 결과가 좋기 때문에 전반기를 잘 마무리한 듯싶다.
최근 몇 시즌은 잠실보단 이천(2군)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2군에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타격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시즌 모두 매 시즌 4할 출루율에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그렇다. 2군에서의 경험은 분명히 값졌다. 특히, 타격이나 주루에서 많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게 쌓이고 쌓여 올 시즌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엔 2군 리그에서 북부리그 타율 2위(0.302), 출루율 1위(0.429), 도루 1위(34)를 차지하기도 했다.
(골똘히 생각하며)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그게 뭐였나.
가령, 출전한 경기에서 매번 잘할 순 없다. 잘할 때가 있으면 부진할 때도 찾아온다. 경기 경험이 늘면서 노하우가 점차 쌓였다. 즉각적인 대응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안 풀렸을 때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바로바로 수정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다음 타석이 있고, 내일 경기도 있었기에 조바심을 내지 않은 까닭이다. 그게 지금까지도 좋은 영향을 준 듯싶다.
21일 후반기 시작을 앞뒀다. 일주일여 휴식기를 가졌는데, 어떻게 보냈나.
일단 쉬면서도 체력 관리에 집중했다. 운동을 쉰 건 딱 하루뿐이었다. 저절로 몸이 운동을 하도록 찾아가더라(웃음). 쉴 수 있었지만, 몸 상태를 계속 좋은 컨디션으로 꾸준히 유지하고 싶었다.
‘지나간 건 지나간 것’ 실패를 두려워해선 더는 뛸 수 없다

6월 말부터 경기에 나올 때마다 안타를 기록 중이다. 타격감이 상당히 좋다.
그 전과 다른 비결이 있는 건 아니다. 사실 6월 전에도 좋은 타구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게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타석에 들어서면 분명히 전반기 막바지처럼 결과가 좋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보통 타석에서의 마음가짐은 어떤가.
다들 그렇겠지만, 타석 들어가기 전에 ‘투수와 어떻게 승부를 가져갈지’ 노림수를 고민한다. 다만, 기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 뒤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그 전 타석 잔상에서 빨리 벗어나 다음 타석을 준비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수정’ 능력이 중요하다.
지난 5월 9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전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때도 9회(주루사), 10회(끝내기 안타)로 말 그대로 ‘지옥과 천당’을 오갔는데.
9회 말 아웃은 10회 말 타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단지 상대 투수에게만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전 상황을 계속 의식할수록 결과만 좋지 않더라. 그런 감정을 분리하고 또 컨트롤하는 게 도움이 되고 있다.
전반기 도루 1위(21개)다. 성공률도 75%로 좋았다. 전반기 마치고 본인 이름이 적힌 순위표를 봤을 때 기분이 남달랐을 듯싶다.
처음에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물론 처음에만. 이제 절반 지났다. 시즌 끝날 때도 내 이름이 거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웃음).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렸다.
도루 몇 번을 성공해도 한순간 실수가 어마어마한 비판으로 이어질 때가 잦다. 어쩌면, ‘대도’들의 숙명일지 모르겠다. 미루어 짐작해 보면, 매 순간 ‘살얼음 위를 뛴다’는 기분 아닌가?
몇 번 실패하면 당연히 분위기도 그렇고, 해당 주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런데, 실패를 두려워하는 순간부턴 더 이상 뛸 수 없다. 지나간 것에 연연해선 안 된다. 만일 오늘 도루에 실패하거나 주루사가 나와도, 나는 내일 또 뛸 것이다.
LG에서 내야와 외야를 병행했지만, 올 시즌만큼은 2루수로 많이 출전하고 있다. 수비 범위 관련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감이 점점 붙고 있는 모습인데. 2루 포지션에 대한 욕심도 있을 듯싶다.
욕심은 당연히 난다. 2루 포지션은 시즌 초보다 출전 기회가 늘면서 점점 익숙해진 탓인지 수비에도 여유가 생기고 있다. (오)지환이 형처럼 든든한 파트너가 있는 게 가장 크다. 그래도 내 수비엔 계속 아쉬움이 보이더라.
어떤 의미에 그런가.
내 쪽으로 오는 타구들을 좀 더 안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런 부족함을 더 채워야 하지 않을까. 타격은 ‘업앤다운’이 있다. 하지만, 수비는 기본기다. 늘 견고해야 하고 안정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런 걸 더 보완하고 싶다.
전반기를 훌륭하게 보냈다. 신민재의 후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수 본인이 임하는 각오가 궁금하다.
아직까진 다들 좋게 말씀해 주시는 것과 달리, 2루를 포함해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후반기에도 팀이 좋은 성적 거둘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 현상 유지만 바라다간 좋았던 분위기가 떨어지기만 할 것 같다. 팬들께 ‘좋은 모습 유지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보단, ‘더 잘하겠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