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어플을 켜면 이 화면부터 나온다. (사진=S 어플 갈무리)
S 어플을 켜면 이 화면부터 나온다. (사진=S 어플 갈무리)

[더게이트]

“선수와 1:1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20만 원을 결제하면,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줘요.”

KBO리그 스타 선수들과의 소통을 내세운 S 어플의 유료 멤버십 홍보 문구다. 이름만 보면 아이돌 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이 앱은 현실의 프로야구 선수와의 교류를 '구독'과 '결제'로 거래하는 구조였다. 월정액을 지불해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영상 메시지를 받으려면 추가 비용이 든다. 팬심은 가격표가 붙은 서비스가 되었고, ‘소통’은 결제 조건 아래서만 가능해졌다.

이 방식이 공개되자 많은 팬들, 특히 여성 팬들 사이에서 깊은 실망과 우려가 퍼졌다. 단지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으로 야구를 사랑해온 이들을 단순한 소비 주체로 대상화한 시선에 대한 반응이었다. 운영사는 결국 논란이 커진 지 하루 만에 서비스를 철회하고 전액 환불을 결정했다.

서비스 무기한 중단을 결정한 S 어플. (사진=S 어플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서비스 무기한 중단을 결정한 S 어플. (사진=S 어플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해당 앱은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 에이전시가 제작한 것으로, 이 회사는 KBO리그의 간판급 선수들을 다수 관리하고 있다. 그만큼 리그의 흐름과 팬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은 곳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리그를 움직이고 있는 절반 이상이 여성 팬이라는 사실을. 직관, 굿즈 구매, SNS 콘텐츠 소비와 확산, 응원 문화 형성 등 프로야구 생태계 전반에 여성 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그러나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나온 방식은 안타깝게도 시대를 거스르고 있었다. 팬을, 특히 여성 팬을 동등한 문화의 구성원이자 파트너로 보지 않고, 감정을 자원 삼아 수익화할 대상으로 바라봤다. 팬심이란 감정의 진폭을 어떻게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졌고, ‘소통’은 서비스로 포장됐다. 감정은 거래의 수단이 되었고, 관계는 상품으로 환원됐다.

운영 과정 역시 문제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구단, 프로야구선수협회 모두 앱의 존재를 대부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선수들조차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받지 못한 채 이름과 얼굴이 유료 콘텐츠에 활용되고 있었다. 상표권, 초상권, 수익 배분 등 구단과 협회와 거쳐야 할 기본적인 협의조차 빠진 상태였다. 이 구조 안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은 건 결국 팬들이었다.

만원 관중이 방문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사진=삼성)
50% 이상의 관중은 여성 관중이다. (사진=삼성)

그중에서도 여성 팬들이 받은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들은 단지 야구 선수를 얼굴로, 유사 연애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랜 시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지켜냈고, 부진한 시즌에도 자리를 지켰으며, 응원 문화를 만들고,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번역하고 편집해 공유해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고, 밈과 팬아트를 만들어내고, 자비로 현수막과 구호를 제작하며 구단과 선수를 함께 빛내왔다.

이들은 ‘패션 야구 팬’, ‘얼빠’라는 낡은 멸칭에도 꿋꿋이 야구장을 지켰고, 자신이 사랑하는 스포츠의 미래를 책임져 왔다. 그런 마음이 결국 ‘결제해야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돌아왔을 때, 그 충격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가 전체 4순위로 미국 프로여자야구 무대를 밟는다. (사진=WPBL)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가 전체 4순위로 미국 프로여자야구 무대를 밟는다. (사진=WPBL)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이 벌어진 바로 며칠 전 미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PBL)의 첫 드래프트가 열렸고, 여성 선수들이 정식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여성은 이제 더 이상 관중석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정당한 계약을 통해 당당하게 그라운드에 서는 주체가 됐다.

한쪽에서는 여성 팬의 감정을 상품처럼 소비하려 한 시도가 실패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 선수들이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며 진정한 주체로 인정받았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 두 사건은 공통의 메시지를 던진다. 여성은 더 이상 조용한 소비자, 그라운드 밖의 구경꾼이 아니다. 이제는 무대를 함께 만들고, 스포츠의 중심을 움직이는 존재다.

S 어플 사태는 단순한 마케팅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 팬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성 팬은 ‘돈을 잘 쓰는 타깃’이 아니다. 그들은 이 스포츠를 구성하고 지탱해온 주체들이며, 오랜 시간 야구라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이제 스포츠, 특히 야구 산업이 대답할 차례다. 팬심은 가격표를 붙일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여성 팬은 결코 지갑이 아니며, 수익의 수단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들이 보내온 응원과 진심은 오직 존중으로만 되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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