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KT 위즈가 ‘지는 법’을 잊어버린 걸까. 적어도 8월엔 그랬다. 8월 끝까지 두 경기를 남긴 채, 22경기를 소화해 18승 4패로 승패마진이 +14다.
시즌 초 최하위 몰락 걱정에서 벗어난 KT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이젠 리그 선두 자리마저 탐낸다. 1위 LG 트윈스와는 어느덧 4.5게임차다.
KT의 기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발화점은 그 앞에 있었다. 바로 올스타 브레이크 직후다. KT는 후반기 31경기에서 25승을 챙겨 승률이 무려 0.806을 자랑한다.
마법사 군단의 후반기를 대표하는 선수? ‘무패 투수’ 쿠에바스

KT는 시즌 초 외국인 투수 보 슐서의 부진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돌아온 ‘빅게임 피처’ 윌리엄 쿠에바스가 후반기 KT 약진을 이끌고 있기 때문.
쿠에바스는 현시점 KT의 기세를 대표하는 선수다. ‘패배를 도통 모른다’는 점에서 그렇다. 6월 중순부터 합류해 12경기 동안 75.1이닝을 던져 8승 0패 평균자책 2.63을 기록 중이다.
이에 ‘무패 투수’ 쿠에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패전이 없어 매우 행복하긴 하다(웃음). 다만,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승수가 많은 건 야수진 역할이 70%를 차지한다. 투구 내용이 늘 좋을 순 없는데, 그때마다 팀 동료들이 도와줘서 패전이 없다. 야구는 9명이 하는 것 아닌가.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한편, 쿠에바스는 올 시즌 KBO리그 합류 전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 산하 AAA팀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에서 뛴 바 있다.
그런 쿠에바스가 잇따른 호투 비결엔 “마이너리그 경험을 통해 올 시즌 하체 움직임을 많이 공부했다”며 “내게 맞는 변화를 가져가면서, 좀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었다”고 했다.
쿠에바스의 활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해진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후반기에만 47이닝(리그 1위)을 던져 6승(1위), 47탈삼진(1위)을 선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투구 퀄리티(평균자책 1.72)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후반기 최고 투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쿠에바스 역시 자신이 넘친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늘 ‘슬로우스타터’였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더 좋은 컨디션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쿠에바스의 자신감이다.
‘슬로우스타터’ KT, “선수들, 반등에 의심 품은 적 없어”

KT엔 본인을 향해 ‘슬로우스타터’라고 말하는 선수가 또 있다. 바로 잠수함 에이스 고영표다.
“유독 여름에 강한 느낌이 든다. 팀도 그렇지만, 나도 슬로우스타터인 듯싶다(웃음).” 고영표의 말이다.
KT는 개막 뒤 줄곧 부침에 시달리며 하위권을 전전하곤 했다. 선수들의 부상은 물론이고, 믿었던 외국인 투수들도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5월 초엔 승패마진이 -14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랬던 시기의 KT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무엇보다, 후반기 루징시리즈가 한 차례조차 없단 것이 현시점 KT의 기세를 방증한다.
KT 선수단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에이스 고영표는 “분위기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게 우리 팀 강점”이라며 “그 어떤 상황에도 더그아웃이 항상 ‘일희일비’와는 거리를 둔다. 기복을 좀처럼 타지 않는 것, 그게 KT 상승세 비결 아닐까”라고 답한다.
이에 투·타 가교 역할인 베테랑 포수 장성우가 고갤 끄덕인다.
“야구엔 흐름이 다 있다. 안 좋을 때가 있으면, 분명히 좋을 때도 찾아온다. 팀 내부적으로 계속 그런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은 하위권이 있지만, 결코 여기에 그칠 전력은 아니’라고. 마침내 그 ‘잘할 때’가 됐다.” 마법사 군단 안방마님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KT는 그 어느 팀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늦은 출발에도 낙오하지 않고 버텨 지금의 자릴 쟁취해 낸 셈이다.
이제야 고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KT엔 여러모로 ‘길고도 길었던’ 시즌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제치고 결승선을 먼저 밟을 수 있을까. KT가 집필 중인 동화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