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팔꿈치 수술 후 줄곧 두려움에 갇혔죠. 하지만 이젠 다릅니다. 제 팔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KIA 타이거즈 우완 필승조 장현식이 마침내 고민을 떨쳐냈다. 그간 옥죄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장현식은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말 그대로 ‘맹활약’을 펼친 바 있다. 지난 4경기 기록은 0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막 열흘 전 시점부터 벌써 속구 스피드가 150km/h를 상회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것도 주목해야 한다.
앞서 오랜 시간 동안 장현식을 지켜보던 이범호 KIA 감독 역시 “공을 던진 후에도 후유증이 없고, 스피드 역시 예전만큼 나오고 있다”면서 “컨디션이 이렇게 올라와주면 불펜 과부하를 줄이고, 필승조를 4~5명까지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가 알던 그 장현식이 드디어 돌아온 것일까.
부상 ‘트라우마’ 떨쳐낸 호랑이군단 홀드왕, 비상을 다시 꿈꾼다

장현식은 1995년생으로 서울고를 졸업한 뒤 프로 첫 커리어를 NC 다이노스에서 시작했다. 공룡군단의 1라운더 신인 출신 장현식(2013 KBO 신인 드래프트 9순위 지명)이 두각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특히 2017년은 134.1이닝을 던져 9승 9패 66볼넷 120탈삼진 평균자책 5.29를 기록하면서 국가대표 차세대 선발투수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잇단 부상이 장현식의 발목을 또 잡았다. 그 과정에서 선발이 아닌 불펜 역할을 맡게 됐고, 2020년 시즌 도중엔 KIA로 트레이드된 바 있다. 새 둥지에 합류한 장현식은 이듬해 화려하게 비상했다. 새 팀에 합류한 지 2년째를 맞은 장현식은 2021년 홀드왕에 등극하면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69경기를 구원 등판해 76.2이닝 동안 1승 5패 34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 3.29를 기록한 가운데 그해 평균 1.1이닝을 소화했을 정도로 팀의 마당쇠였다.
정상에 오른 장현식에겐 야속하게도 또 한 번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팔꿈치 통증이 장현식을 괴롭혔고, 결국 10월엔 수술대에 올라야만 했다.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와 골극(튀어나온 뼈) 정리 수술을 받았고, 재활 기간을 4개월여 보냈다.
그 뒤 장현식은 몸과 관련해 이상징후를 느꼈다. 예년과 달라진 몸 상태는 좀처럼 자신의 말을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팔 상태가 (예년과 달리) 따라오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또 제 역할에선 연투가 필요할 때도 생기잖아요? 몸 상태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 건지, 던진 다음 날엔 팔 컨디션이 유지가 되질 않았어요.” 장현식의 기억 속 2023년이다.

전년도 홀드왕은 직전 시즌을 그렇게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보냈다. 당시 기록은 56경기 2승 2패 5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 4.06이다. 이에 장현식은 “던진 후엔 미세한 통증이 있었고, 매번 ‘수술 후 내 팔꿈치가 자리잡은 게 아니’라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많이 흔들렸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범호 신임 감독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수술 1년 차인 작년(2023년)엔 선수가 걱정이 많았던 걸로 안다”고 운을 뗀 이 감독은 “나 역시 장현식을 보면서 ‘공 던지는 게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캠프 때부턴 그런 두려움을 어느 정도 떨쳐낸 모습”이라고 했다.
사령탑의 생각처럼, 수술 후 2년 차를 맞이한 장현식은 달라졌다. 부상을 다시 당할까 우려해 스스로 채웠던 족쇄를 풀어낸 것. 팔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서 좋았을 때의 루틴을 그대로 올겨울부터 회복한 장현식이다.
이를 두고 장현식은 “나는 원래 공을 많이 던지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스타일이다. 작년엔 몸 걱정 때문에 그걸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올해 12월부터 개인 훈련하면서 내 루틴대로 공을 많이 던졌다”고 했다. 개막을 앞두고 열흘 전부터 150km/h 강속구를 던질 수 있던 비결이다.
한편 소속팀 KIA의 경우 이번 스토브리그 동안 유망주들의 ‘미국 유학’으로 많은 이목을 끌은 바 있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낸 장현식 역시 비시즌 동안 사비를 들여 국외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장현식은 일본 돗토리현에 위치한 한 피칭 센터에 방문해 12월부터 1월까지 약 3주간 몸을 만들었다.
이때 장현식은 공을 많이 던지면서도 동시에 회복 운동을 집중했다. 이러한 집념들이 모이고 모여 그 뒤 스프링캠프 소화에도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건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멈춤 동작’ 장착한 장현식, 2024년 키워드는 ‘진득하게’

한편 올 시즌을 앞둔 장현식의 변화는 멘탈적인 영역에 그치지 않았다. 바로 투구 자세의 변화다. 기존 투구 동작에 ‘멈춤 동작’이 들어간 것. 흡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 투수 클레이튼 커쇼, 일본프로야구(NPB) 히로시마 도요카프 투수 쿠리바야시 료지 등이 떠오른다. 이는 올겨울 고민 끝에 장현식이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제 기존 투구폼이 와인드업 단계에서 기복이 정말 심해요. 동작 자체가 한 번 흔들리면 그날 등판이 엄청 꼬이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시즌 중 힘이 떨어졌을 때도 그 영향을 피해 가기 어렵고요. 멈춤 동작을 장착한 건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장현식의 설명이다.
이어 장현식은 “연습을 통해 일정한 타이밍을 갖추게 됐고, 익숙해질수록 제구가 흔들리는 경우가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3년 프로 데뷔 후 투구폼 변경을 셀 수 없이 많이 가져간 장현식이지만, 2024년 키워드는 ‘진득하게’다. 올 시즌부터 팀에 새롭게 합류한 정재훈, 이동걸 두 투수코치의 조언도 장현식의 변화에 도움을 줬다.
정재훈 코치는 이와 관련해 “선수가 먼저 투구 동작에 대한 고민을 꺼냈고, ‘밸런스 측면에서 멈춤 동작을 추가하고 싶다’고 조언을 구했다”면서 “그래서 딱 한 가지를 강조했다. 할 거면 좀 진득하게 해보자고. 매번 바꾸고, 또 바꾸면 선수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어렵다. (장)현식이의 경우가 그동안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장현식에 따르면, 이동걸 코치 역시 “시즌 들어가기 전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건 좋다. 하지만 개막 후엔 ‘일희일비’하면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당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현식이 현재 투구 폼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과정이다.

KIA 팬들은 ‘홀드왕’ 장현식의 반등을 기대한다. 여기에 시범경기에서 거둔 호성적도 그런 기대감을 부풀게 하기엔 충분했다. 선수 본인도 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지난 2년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에 장현식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팀 동료들이 매년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어요. 반면에 저는 조금씩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흔히 ‘우상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기에 팬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국제대회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쉽(APBC)도 장현식에겐 큰 자극이 됐다. 그도 그럴 게 장현식은 2017년 당시 열렸던 제1회 APBC에서 박세웅(롯데), 임기영(KIA) 등과 함께 국가대표 선발 기둥 역할을 책임진 이다.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자, 장현식은 “프로 데뷔 후 성인 대표팀은 2017년 APBC가 처음이었고, 또 그게 마지막이었다”면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 뒤로도 태극마크는 항상 내 마음에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은퇴 전에 다시 한번 대표팀에 뽑히고 싶다”고 했다.
KBO리그 개막도 어느덧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KIA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탈락의 아픔을 뒤로 하고 재도약을 꿈꾼다. 이를 위해선 임기영, 정해영 등 필승조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선수의 등장이 절실하다. 다만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제 기량을 회복한 ‘홀드왕’ 장현식이 새 무기를 장착한 채로 든든하게 서 있다.
장현식은 끝으로 “필승조 ‘후보’, ‘경쟁’ 등에 집착하진 않을 것”이라며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 하나하나에 집중하려고 한다. KIA 팬들께 더 믿음직스럽고 편안한 모습 보여드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힘줘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