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테니스 황제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동안 온화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신사’ 소리까지 듣던 그가 다시 원래의 도발적이고 호전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
10일(한국시간) 영국 윔블던에서 열린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조코비치는 홀거 루네(6위·덴마크)를 3-0(7-6 6-3 6-2)으로 완파하고 8강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남아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선수를 무시한 사람들, 저를 무시한 사람들은 좋은 밤 되세요. 아주 조오오오은 밤, 조오오오오오은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라며 일부 관중을 조롱했다. 이날 경기중 관중석에서 나온 야유의 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받아들인 조코비치의 반격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조코비치는 지난해 프랑스오픈에서 라파엘 나달(37·스페인)을 제치고 최다 그랜드슬램 우승(23회) 기록을 세운 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에서 자란 소년이 꿈을 이뤘다”며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남겼다. 또 윔블던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1위·스페인)에게 패한 뒤엔 “내 후계자”라며 그를 격려했고, US오픈에서는 뉴욕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코비치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5월 이탈리아 로마 대회에서 야닉 시너(4위·이탈리아)와 경기 때 관중들의 야유에 지휘자 흉내를 내며 조롱했다. 호주오픈에서는 현재 호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알렉스 드 미나우르(12위)와 맞대결에서 이긴 뒤 이를 ‘복수전’으로 묘사해 논란을 자초했다. 조코비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백신 접종 거부로 호주오픈 출전 기회를 박탈당하고, 호주 정부로부터 추방당한 바 있다. 프랑스오픈에서는 코소보 문제에 대해 정치적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US오픈 준결승에서 벤 셸턴(20위·미국)을 이긴 뒤엔 그의 세리머니를 흉내 내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 일도 있었다. 경기후 악수를 나눌 때 셸턴이 조코비치를 비난하듯 노려보자, 조코비치는 위악적인 미소를 지으며 “벤의 축하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조코비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상대 선수나 관중와의 마찰을 마다하지 않는, 의도적으로 싸움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조코비치. 미움받기를 즐기는 그의 이런 언행은 어떤 면에서 의도된 면이 있다. 주변의 적대적인 분위기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동기를 부여하고 투쟁심을 끌어내는 선수가 바로 조코비치다. 전직 선수인 마크 필리푸시스는 “조코비치는 야유를 들으면 오히려 더 잘 친다”며 “내가 그와 경기한다면 오히려 칭찬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조코비치는 12일 열리는 8강전에서 드 미나우르와 맞붙는다.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6-2 6-1 6-2로 완파했던 상대다. 조코비치가 이번에도 호주를 상대로 한 '복수'를 운운하며 논란을 유발할 지 주목된다. 윔블던 우승 8회를 자랑하는 ‘싸움꾼’ 조코비치가 이번에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