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장면(사진=서울시체육회)
승마 장면(사진=서울시체육회)

 

[스포츠춘추]

올림픽 승마 종목이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여 존폐 위기에 놓였다. 영국의 3관왕 승마 선수 샬럿 뒤자르댕이 말을 과도하게 채찍질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승마 종목의 올림픽 존속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이 이를 둘러싼 논란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시점에 공개된 문제의 영상은 4년 전 뒤자르댕이 코칭 세션 중 말을 "과도하게" 채찍질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에 뒤자르댕은 파리 올림픽을 포함한 모든 대회 출전을 자진 철회했고, 국제승마연맹(FEI)은 6개월 임시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미국의 동물권 단체인 '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위한 사람들(PETA)'은 즉각 "올림픽에서 승마 종목을 제외하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PETA는 "말들은 자원해서 참가하는 게 아니라 폭력과 강압에 굴복할 뿐"이라며 "올림픽이 현대 시대에 걸맞게 변화할 때"라고 주장했다.

뒤자르댕 사건을 계기로 승마계 전반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디 애슬레틱의 샬롯 하푸르 기자에 따르면, 동물권 활동가들은 모든 승마 종목에 대한 전면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올림픽 업계 일각에서는 승마의 올림픽 종목 지위가 "당장은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각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모으고 있다.

승마계 내부에서도 이번 사건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뒤자르댕의 오랜 팀 동료이자 멘토인 칼 헤스터는 "17년 동안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영상 속 행동은 명백히 잘못됐고 누구도 지지할 수 없다"면서도 "17년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뒤자르댕은 성명을 통해 "판단 실수"였다며 사과했다. 그는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더 나은 본보기가 되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주 단체 이벤트에서 영국 대표팀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톰 맥이웬은 승마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영국 대표팀으로 올림픽 3개의 메달을 따낸 메리 킹은 "채찍을 지속적으로 사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올림픽 출전을 막으려는 의도로 영상이 공개된 타이밍이 끔찍하다"고 말했다.

PETA의 캐시 기예르모 부회장은 이번 사건에 "충격을 받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초보부터 프로 선수까지 각 종목에서 내부 고발 영상을 자주 받는다"며 "말을 학대하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놀랍다"고 주장했다.

기예르모 부회장은 마장마술이 승마 종목 중 가장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장마술은 말에게 자연스럽지 않다. 원래는 말의 균형과 신체적 특성을 정상적으로 활용하는 훈련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왜곡된 형태가 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메리 킹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기수는 말이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만 말을 다룰 수 있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마장마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PETA는 브라질의 이벤트 라이더 카를로스 파로가 FEI 규정을 위반해 말의 목을 과도하게 구부리는 '롤쿠어' 기술을 사용했다며 출전 자격 박탈을 요구했다. FEI는 파로에게 "말에게 불필요한 불편을 줬다"며 경고를 내렸지만 출전은 허용했다.

오스트리아의 장애물 비행 선수 막스 퀴너도 2023년 5월 독일에서 동물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폴링' 또는 '래핑'이라는 기술을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말이 장애물을 넘을 때 다리를 막대기로 치는 기술로, 말이 울타리에 부딪혔다고 생각하게 해 다음에는 다리를 더 높이 들게 만드는 방법이다.

유럽승마연맹이 올해 4월 실시한 9,000명 이상의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0%가 집에서 열악한 말 복지 사례를 목격했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이런 일이 지난 6개월 내에 발생했다고 밝혔다.

FEI의 잉마르 드 보스 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며 "많은 기수와 선수, 말이 있지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매우 낮은 비율"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하지만 한 건이라도 많은 것"이라며 "30년 전에 허용되던 것이 오늘날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말복지협회의 롤리 오워스 최고경영자(CEO)는 이 문제가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뒤자르댕 사건을 넘어선다고 봤다. 그는 "이번 사건을 또 하나의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승마가 미래를 갖기 위해서는 경기장에서든 집에서든 항상 말이 핵심 이해관계자임을 보여줘야 한다. 말의 복지가 최우선 순위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사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영국승마협회 전 임시 회장을 지낸 에드 워너는 승마계의 특정 태도가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대부분의 마주와 기수, 코치들이 말의 복지에 전념하고 있다"면서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나쁜 사람들이나 구시대적 관점을 가진 이들이 스포츠의 평판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승마는 1900년 올림픽에 처음 도입된 이후 1912년부터는 모든 대회에 포함돼 왔다. 하지만 이제 전통적인 올림픽 종목을 제외한 모든 종목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워너는 분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각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모든 종목에 대해 티켓 판매량, 방송 시청률, 올림픽 사이 해당 종목의 성과, 비올림픽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 젊고 세계적인 관객에 대한 매력 등 여러 요소를 검토한다.

IOC는 2028년 올림픽 종목으로 승마를 이미 확정했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종목을 제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영국올림픽협회(BOA) 전 최고경영자인 사이먼 클레그는 뒤자르댕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경계하며, IOC가 개별 종목이나 전체 종목을 제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워너는 승마가 "당장은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관계자들이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IOC는 평판에 매우 민감하며, 4년마다 올림픽을 통해 승마를 접하는 일반 대중에게 말의 학대가 어떻게 비칠지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FEI는 이번 사건에 대해 "말 학대 사례는 절대 용납될 수 없으며 FEI는 항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FEI는 "규정을 위반하고 말을 학대하려는 이들을 제재할 강력한 법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IOC는 FEI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우리가 이러한 사건들을 적절히 다룰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말복지협회의 오워스는 승마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대중에게 말의 복지가 어떤 경쟁적이거나 상업적인 영향력보다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말의 복지를 마술 스포츠의 중심에 두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다"며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말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가 되려면 그만한 자격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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