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논란에 휩싸인 이만 켈리프 선수(사진=이만 켈리프 SNS)
성별 논란에 휩싸인 이만 켈리프 선수(사진=이만 켈리프 SNS)

 

[스포츠춘추]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경기의 성별 논란이 스포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알제리의 이만 켈리프와 대만의 린 유팅 두 선수를 둘러싼 논란이 올림픽 전체로 번지면서 스포츠계의 성 정체성 문제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의 마크 풀레오 기자는 이번 사태의 전말을 상세히 정리했다. 풀레오 기자에 따르면 논란의 시작은 지난 8월 3일 열린 여자 66kg급 경기였다. 이만 켈리프와 이탈리아의 안젤라 카리니의 경기에서 카리니가 경기 시작 46초 만에 기권을 선언하면서 의혹의 시선이 쏟아졌다.

켈리프는 25세로 이번 대회 66kg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확보한 상태다. 그는 도쿄올림픽에서는 60kg급에 출전해 5위를 기록했다. 프로 경기 1전을 포함해 39승 9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린 유팅 역시 25세로 57kg급에 출전 중이다. 그는 8월 6일 열린 준준결승에서 불가리아의 스베틀라나 카메노바 스타네바를 꺾고 동메달을 확보했다. 린은 도쿄올림픽에서 9위를 기록했으며,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2회씩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두 선수를 둘러싼 논란은 2023년 세계여자복싱선수권대회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제복싱협회(IBA)는 두 선수가 '성별 적격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대회 출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구체적인 검사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고, IBA의 대회 운영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복싱 종목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IOC 대변인 마크 애덤스는 "올림픽은 주로 여권과 공식 국가 문서, 의료 허가서 등을 통해 남녀 부문을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켈리프는 출생 증명서상 여성으로 등록됐고 평생 여성으로 살아왔다"며 "이는 트랜스젠더 사례가 아니며, 과학적으로 볼 때 남성이 여성과 싸우는 경우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린 유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만 신베이시의 조 관팅 시의원은 "린은 출생 증명서상 여성으로 등록돼 있다"며 "작년의 검사 결과는 염색체와 관련된 것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IBA 회장 우마르 크렘리요프는 지난해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와의 인터뷰에서 "켈리프와 린이 X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DNA 검사로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 선수가 여성인 척하며 다른 선수들을 속이려 했다고 비난했다.

IOC는 IBA의 검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켈리프와 린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확보한 후에야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점을 문제 삼았다. IOC 대변인은 "켈리프와 린은 IBA의 갑작스럽고 자의적인 결정의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IOC 회장 토마스 바흐는 "우리는 정치적으로 동기 부여된 문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별 복싱 단체들이 IBA가 아닌 새로운 우산 아래 모여 더 나은 규정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한편 켈리프와 카리니의 경기는 예상 외로 빨리 끝났다. 경기 시작 후 36초 경 켈리프의 강한 어퍼컷을 맞은 카리니는 헤드기어를 고쳐 쓰기 위해 잠시 중단을 요청했다. 재개 후 10초도 되지 않아 켈리프의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정통으로 맞은 카리니는 왼손을 들어 기권 의사를 밝혔다.

카리니는 경기 직후 "켈리프의 펀치로 인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계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짧은 경기는 성별 논란에 불을 지폈고, IBA는 카리니에게 올림픽 챔피언에 준하는 상금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IOC는 켈리프와 린의 올림픽 출전 자격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IOC 대변인은 "자격 규정은 진행 중인 대회에서 변경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변경은 적절한 과정을 따라야 하고 과학적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켈리프는 8월 5일 헝가리의 안나 루카 하모리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경기 후 "이 승리가 자랑스럽다. 특히 파리에서 알제리를 위해 뛰어서 더욱 그렇다"고 소감을 밝혔다. 린 역시 스타네바를 꺾은 후 "파리와 고국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다"며 "이 힘을 끝까지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스포츠에서의 성별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민감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과학적, 윤리적, 행정적 측면에서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 스포츠계는 공정성과 포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켈리프는 8월 8일 준결승에서 태국의 수완나펭과 재대결을 펼칠 예정이며, 결승은 11일로 예정돼 있다. 린은 8월 9일 준결승에서 터키의 에스라 일디즈와 맞붙고, 결승은 12일에 열린다. 두 선수의 경기 결과와 함께 이번 논란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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