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투수였지만 사이영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리베라(사진=MLB.com)
최고의 투수였지만 사이영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리베라(사진=MLB.com)

 

[스포츠춘추]

"마리아노 리베라가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데도, 이를 수상 기록으로 보여줄 수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시상하는 '올해의 구원투수상' 신설을 이끈 주역, 제이슨 스타크 기자가 24일(한국시간) 장문의 칼럼을 통해 이번 상 신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게재한 "때가 됐다(It's about time)"는 제목의 칼럼에서 현대 야구에서 구원투수가 차지하는 비중과 기존 시상 체계의 한계를 지적했다.

스타크 기자는 이 아이디어를 무려 12년 전에 처음 제안했지만 당시엔 투표에도 부쳐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년 12월 BBWAA 회의에서 같은 회사 동료 앤드류 배걸리 기자가 다시 이 문제를 제기했고, 연구위원회가 구성되면서자신이 위원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구원투수상 신설의 근거는 명확했다. "100년 동안 모든 경기의 핵심 질문은 '오늘 누가 선발하지?'였다. 이제는 '양팀 불펜에서 101마일(162km)을 던지는 놈들이 몇 명이나 나올까?'가 됐다." 현대야구 경기의 중심이 선발투수에서 불펜투수로 옮겨갔다는 지적이다.

스타크 기자는 기존 시상 체계에서 구원투수들이 받은 차별도 꼬집었다. 역사상 유일한 만장일치 명예의 전당 선수인 마리아노 리베라(전 뉴욕 양키스)조차 제대로 된 개인상을 받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가 역사상 최고의 구원투수인데도 이를 보여줄 상이 없다면, 이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해주지 않나?" 스타크의 질문이다.

실제 데니스 에커슬리가 1992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 수상한 이후 33년 동안 사이영상을 받은 구원투수는 에릭 가니에(2003년) 단 한 명뿐이다. MVP는 아예 없다. 이 기간 사이영상 1위 투표를 받은 구원투수도 8명에 불과하고, 준우승은 3명에 그쳤다.

리베라의 경우는 더욱 가혹했다. 커리어 내내 한 번도 사이영상이나 MVP를 받지 못했고, 사이영상 2위에 오른 것도 딱 한 번이었다. 사이영상 1위 투표를 받은 것도 1996년과 2005년 두 차례뿐이었다.

스타크 기자는 "투표자들은 MVP는 야수상, 사이영상은 선발투수상, '해당사항 없음'이 구원투수상이라고 결정한 것 같다"며 "30세이브 이상에 평균자책 1.50 미만을 기록한 구원투수가 에커슬리 이후 34번 나왔는데, 이 중 사이영상 1위 투표를 받은 건 6번뿐"이라고 덧붙였다.

현역 구원투수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켄리 잰슨, 아롤디스 채프먼, 조시 헤이더, 에마누엘 클라세, 에드윈 디아즈, 데빈 윌리엄스 등 쟁쟁한 구원 투수들이 있지만 이들은 사이영상 1위 투표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명예의 전당 투표자들이 빌리 와그너의 경력을 보고 '와, 이 선수가 올해의 구원투수상을 6번이나 받았네'라고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스타크는 질문했다. 와그너는 올해 10년 만에 겨우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만(사진=MLB.com)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만(사진=MLB.com)

스타크 기자는 현대 야구에서 불펜의 역할 증대도 강조했다. 현재의 야구에서 선발투수는 평균 17아웃만 잡아낸다. 에커슬리가 상을 받던 1992년엔 20아웃이었다. "매일 밤 60개 아웃, 시즌 전체로는 14,500개 아웃을 선발보다 구원투수들이 더 많이 잡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BBWAA가 '투수들이 MVP 투표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판단해 1956년 사이영상을 만든 것과 지금의 상황이 비슷하다. 스타크 기자는 "이제 구원투수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뭘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흥미롭게도 기존 MLB에서 시상하는 리베라상과 호프만상 투표에 참여하는 구원투수들은 BBWAA 상 신설을 환영하고 있다. 스타크 기자에 따르면 한 마무리 출신 은퇴선수는 "우리는 모두 마무리였기 때문에 세이브가 많은 선수들에게만 투표해 왔다. 당신들은 이걸 제대로 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신의 팀에서 뛰었던 한 셋업맨을 언급하며 "당시 내가 투표할 수 있었다면 그에게 표를 줬을 것이다. 솔직히 그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스타크 기자는 마지막으로 "스포츠의 진화가 우리를 이 순간으로 이끌었다. 토론이 재밌을 것이다. 우리에겐 특별한 일을 할 기회가 있다. 단순히 세이브 개수를 세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기회 말이다"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2026년 첫 시상을 앞둔 올해의 구원투수상이 과연 현대 야구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세이브에 특화된 마무리 뿐만 아니라 셋업맨이나 중간계투의 가치까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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