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게이트=천안]
"도장 찍는 즉시 5천만 원 버는 거고, 1개월 내 전매 가능하다는 말에 계약했어요.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요. 더 기가 막혔던 건 2025년 7월 완공된 집을 찾아가 보니 하자만 무려 100건이 넘었어요. 이건 사기를 넘어 재앙이에요. 재앙"
천안 '힐스테이트 두정역'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분양받은 K 씨의 절규다. K 씨는 시행사와 분양대행사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분양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P 5천" 가짜 전매 미끼로 분양 사기 의혹

"분양대행사의 조직적 기망행위에 속아 계약한 것도 억울한데, 완공된 아파트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의 '부실 공사' 투성이였어요." K 씨는 이중고를 호소했다.
K 씨가 7월 9일 직접 방문해 확인한 펜트하우스 내부는 처참했다. K 씨 주장에 따르면 각 방의 콘크리트 벽면은 마감이 울퉁불퉁해 육안으로도 수평이 맞지 않았다. 계단 마감 역시 불량이었다.
벽지는 곳곳이 뜯겨 있거나 이물질이 묻어 있었으며, 천장과 벽면 곳곳엔 들뜸 현상이 심각했다. 게다가 누수와 균열 의심 흔적, 마감 불량이 셀 수 없이 발견됐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바닥 몰딩은 벽면에서 튀어나와 있었고, 2층 테라스로 향하는 문은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1층과 2층 테라스 문틀엔 검은색 이물질이 변색된 채 방치됐으며, 거실 벽지와 2층 계단 벽지도 손상돼 있었다.
슬라이딩 도어 주변의 실리콘 마감은 조잡했고, 몰딩 역시 불균형 상태였다. 이렇게 K 씨가 집계한 하자 내역만 100건이 넘는다.
"변호사님한테 '하자만 100건'이라고 하니 '전체 아파트 단지에서요?'라고 반문하시더라고요. '아니요. 제 집에서만 100건이요' 했더니 '정말요?'하고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K 씨는 "모델하우스 방문 당시 펜트하우스 실물은 보지 못한 채 도면만으로 설명을 들었다"며 "정말 수억 원대 최고가 펜트하우스의 마감이 이 정도일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양대행사 "내부자 물건"이라며 접근…"명의만 빌려주면 6대 4 수익" 유혹

K 씨에게 고통을 안긴 건 부실공사만이 아니다. K 씨가 경찰서에 낸 고소장과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K 씨가 해당 아파트를 계약하게 된 과정 자체가 분양대행사 직원들의 조직적인 '기망행위'에 의한 것이었다.
발단은 2024년 3월 28일, 천안 서북구 두정동 모델하우스에서 시작됐다. 분양대행사 유00의 실장 P 모 씨 등은 K 씨에게 "000동 0000호 펜트하우스는 당첨자가 포기해 우리가 확보해 둔 귀한 물건"이라며 "현재 프리미엄(P)이 5,000만 원 형성돼 있고, 한두 달 내 8,000만 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접근했다.
이들은 "이미 매수하기로 한 사람이 정해져 있다. 우린 내부자라, 친인척 명의로 계약하면 문제가 된다. 명의를 빌려주면 계약을 체결하고, 한두 달 내 책임지고 전매해 수익을 6대 4로 나누겠다"고 제안했다 .
K 씨가 '마이너스 피' 소문을 언급하며 의문을 제기하자, 전무 K 씨 등 다른 직원들까지 가세해 "인터넷 정보는 잘못됐다. 분양하는 우리가 정확하다", "무조건 돈 버는 것"이라며 K 씨를 안심시켰다.
알고 보니 '지역 최고가' 미분양… 뒤늦은 각서도 '공수표'

K 씨는 이들의 설명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주장한다. 소장에 따르면, 당시 '힐스테이트 두정역'은 3.3㎡당 1,553만 원, 84㎡형 평균 5억 3,200만 원에 이르는 '지역 최고가' 분양가로, 인근 아파트보다 1억 원 가까이 비싸 미분양이 속출하고 '마이너스 피'까지 형성된 상태였다.
분양 실적이 저조하자 대행사 직원들이 수당을 챙기기 위해 '가짜 프리미엄'과 '확정된 전매수자'라는 미끼로 자신을 속여 계약을 유도했다는 것이 K 씨의 주장이다.
결국 K 씨는 2024년 4월 1일, 분양대금 9억 8,300만 원에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 등 총 6억 8,810만 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약속한 한두 달이 지나도 전매는 이뤄지지 않았다.
K 씨 항의가 이어지자 분양대행사 유00의 실장 P 씨는 2024년 12월 말, '2025년 3월 입주 전까지 전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와 함께 1억 원의 공정증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K 씨의 법률대리인 최성수 변호사는 "이는 명백한 사기에 의한 계약"이라며 "시행사인 이린(주) 역시 분양 실적이 저조한 상황에서 대행사의 기망행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
K 씨는 현재 시행사에 사기를 이유로 분양 계약을 취소하고, 이미 납부한 계약금 9,830만 원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또한 중도금 대출을 실행한 창원진동농업협동조합을 상대로도 5억 8,980만 원의 중도금 대출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더게이트]는 현대건설 현지 담당 사무소, 힐스테이트 두정역 관리사무소와 하자 관리센터 등을 취재하며 K 씨 피해 사실 확인에 나섰다. 해당 아파트 하자 관리센에선 "하자 103건을 발견하여 101건을 보수 완료했다"며 "미처리는 2건"이라고 밝혔다. K 씨가 발견한 100건보다 3건이나 더 하자가 많았던 셈이다.

분양 사기와 관련해서 현대건설 측은 "시행사에 질의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작 시행사 이린(주) 측은 수차례에 걸친 질의해도 답변을 회피했다. 이린의 분양대행 업무를 맡은 유코렌(주) K 전무는 "원고(K 씨)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그러나 무엇이 말이 되지 않는지 묻자 "특별하게 전달해 드릴 말이 없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찾았던 모델하우스에서 분양 사기 의혹과 부실시공이라는 이중 덫에 걸린 K 씨. 가짜 프리미엄으로 수분양자를 유인하고, 완공된 주택은 하자투성이로 넘기는 부동산 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에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취재 후 : 분양사기로 피해자 K 씨에게 고소 당한 P 모 씨는 지금도 다른 아파트에서 버젓이 분양대행을 하고 있다. P 씨는 "아산으로 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말엔 "내가 왜 그런 걸 기자에게 이야기해줘야 하느냐"며 전활 끊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