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외국인 투수들에게 5이닝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긴 어렵다. 시즌 내내 그랬기에 아쉬운 대목이다.”
KT 위즈 이강철 감독을 전반기 내내 괴롭힌 고민이다. 7월 초 더그아웃에서 만난 KT 사령탑은 마운드를 흘깃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KT는 올 시즌 외국인 투수 부진으로 골치를 겪었다. ‘믿을 구석’ 웨스 벤자민에 이어 새롭게 영입한 보 슐서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내엔 한계가 뒤따른다. 슐서는 10경기를 채 넘기지 못하고 KBO리그를 떠났다. KT가 택한 대안은 윌리엄 쿠에바스 재영입이었다.
하지만, 벤자민을 향한 믿음은 달랐다. 지난해 후반기 1선발 맹활약을 펼친 벤자민이 ‘제 폼을 찾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해 맹활약, 올 시즌 에이스로 기대 모은 벤자민

벤자민은 2022년 대체 외국인 선수로 KT에 중도합류했다. 그해 6월부터 1군 등판에 나선 벤자민이 ‘날이 갈수록’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특히, 벤자민은 순위 싸움이 치열했던 9월에 무척 빛났다. 4경기에 등판해 23.1이닝 동안 평균자책 1.93 활약을 통해 팀 가을야구 진출에 이바지한 것. KT는 벤자민이 등판한 해당 4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헤드샷 사구 강판(KIA 타이거즈전, 9월 4일 2.2이닝 투구)을 제외하면, 3경기에서 20.2이닝을 소화해 단 4자책만을 내줬다.
벤자민의 지난해 정규 시즌 최종 기록은 17경기 96.2이닝을 던져 5승 4패 24볼넷 77탈삼진 평균자책 2.70이다. 쿠에바스의 빈자릴 제대로 메꾼 벤자민의 매력은 포스트시즌(3경기 13이닝 평균자책 2.77)에도 이어졌다.
KT는 그런 벤자민을 향해 총액 130만 달러 재계약을 안겼다. 한편, KT는 이듬해 지난 3년간 팀 마운드를 책임진 ‘철완’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와 이별했다. 쿠에바스, 데스파이네 없이 2023년을 시작한 KT는 새 에이스로 벤자민을 낙점했다.
벤자민의 시즌 준비는 순조롭다 못해 훌륭했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부터 시작해 3월 시범경기(3경기 11이닝 평균자책 1.64)까지, 개막 전부터 박차를 가한 것.
3월 당시 시범경기에서 만난 이강철 감독은 “벤자민이 1선발이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계속 좋았다. 지난해 던졌던 공이랑 완전히 다르다”며 “지난해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고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흘렀다. 개막 뒤 벤자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KT 마운드에 우려를 가져왔다. 사령탑의 기대가 무색해진 까닭이다.
‘뜻밖의 부진’ 겪은 벤자민, 전반기 마지막 등판 ‘희망투’ 펼쳐

벤자민은 올 시즌 17경기에 선발 등판해 93이닝을 던져 9승 3패 31볼넷 97탈삼진 평균자책 4.16을 기록 중이다. 승수가 많은 건 팀 타선의 힘이다. KT는 벤자민의 올 시즌 등판 경기에서 리그 최고 득점지원(8.81)을 안겨준 바 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전반기 다승 3위’ 벤자민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0.27로 1선발 역할엔 여러모로 낙제다. 전반기 내내 퀄리티스타트(QS)는 5차례, QS+도 단 1경기에 불과했다.
벤자민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제구가 크게 망가진 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 비율(66.2→66.1)이 그렇다. 다만, 9이닝당 볼넷이 2.23개에서 3.00개로 늘었다. 무엇보다, ‘5회’에만 볼넷을 10차례 허용하며 피출루율이 무려 4할(0.391)에 달할 정도다.
벤자민은 올 시즌 풀카운트 승부에서도 약한 면모를 드러냈다. 벤자민의 2스트라이크-3볼 상황 기록은 15볼넷 및 피출루율 0.449다.
당혹스러운 건 팬들뿐만 아니라 이강철 감독도 마찬가지다.
“벤자민은 소위 마운드에서 ‘완벽하게’ 던지려는 스타일이다. 자기 공에 자신감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는데, 볼 판정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가 너무 크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시즌 중 취재진과 만난 이 감독은 벤자민의 문제를 ‘멘탈’에서 찾았다. 한편, KT 관계자도 “뜻밖의 부진에 다들 놀랐다. 잘 던지나 싶다가도 중요한 상황에 흔들린다. 벤자민이 좋았던 폼을 회복하기 위해 코치진과 수차례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계에선 “물론 선수단 연쇄 부상 여파도 있겠지만,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벤자민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한 것도 KT 부진에 지분이 꽤 있다”고 목소릴 낸 배경이다.
그런 벤자민이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서 ‘희망’을 던졌다. 벤자민은 7월 11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올 시즌 최고 역투를 선보였다. ‘우리가 알던 에이스’의 모습이 돌아왔다. 11일 벤자민은 7.2이닝 동안 99구를 던져 1볼넷 11탈삼진 2실점을 거두며 시즌 9승을 달성했다.
‘늘 힘겨웠던’ 5회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키움 타선 상대로 5회 삼자범퇴 처리하며 달라진 모습을 예고한 것.
KT가 고단했던 시즌 초를 딛고 5위권 진입을 노린다. 후반기를 앞둔 KT호 ‘항해사’는 단연 벤자민이다. 심적 여유를 되찾은 에이스의 무서움은 이미 키움전에서 확인됐다. 벤자민이 마침내 에이스로 다시 우뚝 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