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키움 히어로즈는 후반기 줄곧 울상이다. 잇따른 선수 부상에 고단한 리그 일정까지 겹쳤다.
“웃음조차 나오질 않는 상황이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사령탑인 홍원기 감독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앞서 전반기를 다소 부진한 채로 보냈던 불펜진은 더 괴롭다. 선발진 붕괴 여파가 불펜까지 향했기 때문.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난’이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키움이 가야 할 길을 몸소 보여준 이가 있다. 바로 올해로 신인 티를 갓 벗은 프로 2년차 우완 이명종이다.
후반기에만 200이닝 가까이 소화한 키움 불펜진, 다 이유가 있다

키움 불펜은 올 시즌 468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5.14를 기록 중이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서 제공하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로는 총합 0.60을 쌓았다. 이는 KBO리그 10개 팀 가운데 최하위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좋지 못한 성과를 거두며 ‘최악 뒷문’ 오명까지 얻었다. 사실 필승조 운영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건 당초 전반기부터였다. 베테랑 우완 원종현은 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로 4년 총액 25억 원 계약을 맺으며 키움에 합류한 바 있다.
하지만, 원종현은 시즌 중인 7월 팔꿈치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낙마했다. 원종현은 이적 첫해 20경기에 등판해 18.2이닝 동안 평균자책 5.79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키움을 올해 유독 곤혹스럽게 만든 건 ‘부상’ 악재다. 선수단은 늘 부상에 신음했다. 불펜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시즌 초부터 좌완 이승호, 우완 문성현이 부상으로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후반기엔 선발진마저 무너졌다. 9월 둘째 주엔 초토화를 겪었다. ‘에이스’ 안우진 이탈 뒤 마운드를 책임져 온 아리엘 후라도, 이안 맥키니마저 부상으로 마운드를 잠시 비운 것.
키움 불펜진이 후반기에만 185이닝을 소화한 이유다. 해당 기간, 리그에서 가장 많다. 선발 공백이 발생하면서 불펜이 짊어져야 할 짐이 더욱 무거워졌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용달차’에 비유하며 “감당할 수 있는 화물 중량이 있기 마련인데, 과적이 불가피한 상황 아니겠나. 키움 불펜진이 처한 상황이 그렇다”고 우려를 표했다.
키움 불펜이 후반기 들어 더 부진한 면모를 드러낸 배경이다. 참고로 키움의 후반기 팀 불펜 평균자책은 5.94에 달한다. 타자(888명)를 많이 만난 만큼, 실점(139)도 무척 잦았다.
이명종의 의젓함 “올 시즌 ‘후회 없이’ 잘 마무리하고 싶어”

2002년생 우완 기대주 이명종 역시 제법 힘든 후반기를 겪는 중이다. 전·후반기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명종은 5월 초 1군에 콜업돼 전반기 20경기에서 24.2이닝을 던져 4승 2패 8볼넷 14탈삼진 평균자책 3.28을 기록했다.
단연 키움의 전반기 ‘최고 발견’ 가운데 하나다. 다만, 후반기엔 달랐다. 22경기(1선발) 24.2이닝 1승 2패 1홀드 11볼넷 11탈삼진 평균자책 5.11에 그친 것.
최근 스포츠춘추와 만난 이명종은 “시즌 초엔 힘이 넘쳤다. 내 공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다”며 “하지만,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타이트한 상황에도 등판하게 됐고, 시간이 갈수록 구위가 떨어졌다”며 설명했다.
이어 이명종은 “그게 또 멘탈적인 영향으로 이어졌다. 좋았을 때(전반기)와는 다르게, 마운드 위에서 생각이 많아지더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명종은 8월 한 달간 14경기를 소화하며 홈런을 3차례나 허용한 바 있다. 같은 기간, 피안타율은 0.340에 피출루율 0.397로 무척 좋지 않았다.

일련의 성장통에 험난한 일정마저 더해졌다. 하지만, 이명종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의젓해진 모습으로 ‘후반기’를 바라볼 정도다.
“팀원 모두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정규시즌도 거의 막바지다. 그렇다고 해서 ‘더 잘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을 하고 싶진 않다. 결과를 떠나, 마운드에서만큼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남은 경기에선 ‘자신감 있는 투구’에 계속 집중하겠다.” 이명종이 밝힌 올 시즌 소회다.
프로 2년차 새싹이 보여준 건 말뿐만이 아니었다.
이명종은 지난 9월 9일 한화 이글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 등판한 바 있다. 당시 정찬헌, 안우진, 맥키니, 후라도 등 기존 선발진이 마운드에서 이탈했기 때문.
그런 이명종이 4이닝 1실점 깜짝 역투를 선보였다. 물론 사사구를 4차례 내준 건 아쉽지만, 선수 본인이 바라던 씩씩함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이날 이명종은 17타자를 상대해 1피안타를 기록했다.
키움은 최근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정규시즌은 이제 단 13경기만이 남았다.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키움의 앞엔 흙먼지가 여전히 자욱하다. 내년 시즌을 향한 의문부호가 벌써부터 기승을 부린다.
어쩌면, 현시점 키움 선수단에 이보다 필요한 자세가 있을까. 선수단 막내 격인 이명종이 던진 61구엔 그 이상의 울림이 담겼다.
향후 영웅군단이 걸어갈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길이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