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자 흑자 기업의 대명사다. 반도체, 전자제품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다. 하지만 그런 삼성에도 해마다 저조한 실적을 내고 심지어 적자를 보는 파트가 있으니, 바로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의 홈런 생산과 투수 볼 스피드 라인이다. 심히 부끄러운 팀 성적 얘기는 굳이 여기서까지 하지 않겠다.
KBO리그 최고의 타자친화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친 홈런보다 맞은 홈런이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라팍)의 2016년 개장 이후 득점 파크팩터는 1054로 정규구장 가운데 단연 1위다. 한국의 쿠어스필드라는 인천 SSG랜더스필드(1021)보다도 라팍이 한 수 위다. 멀티시즌 홈런팩터도 라팍이 1211로 인천(1192)보다 앞선다.

하지만 삼성은 라팍 개장 이후 좀처럼 안방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6년 65홈런·97피홈런으로 첫 적자를 본 뒤 2017년 73홈런·116피홈런, 2018년 82홈런·96피홈런으로 3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2019년 근소한 흑자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21시즌엔 뚜렷한 흑자를 기록했지만, 최근 2년간 다시 침체에 빠졌다. 올 시즌 삼성의 팀 홈런은 전체 8위, 투수진의 피홈런은 전체 1위였다.
젊은 야수 가운데 거포 기대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2년 전 -지금은 팀을 떠난- 삼성 코치진 중 하나에게 ‘팀 내 거포 유망주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자 “그게 제일 난제”라며 “20대 초반 중에 장타를 칠 만한 선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선수 아니면, 상무에 가 있는 선수들 정도다. 20대 초반 선수 중에 노시환, 한동희 같은 캐릭터는 없는 실정”이란 답이 돌아왔다. 최근 3년간 삼성의 29세 이하 선수가 기록한 홈런은 71개로 10개 팀 중에 꼴찌다. 세대교체 때문에 감독까지 자른 SSG 랜더스도 이 분야에선 79개로 삼성보다 앞선다.

투수 파트에도 문제가 있다. 최근 세계야구의 트렌드인 ‘강속구 투수’를 삼성 젊은 피 중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3년간 삼성 투수(50이닝 이상) 구속 랭킹을 보면 평균 150km/h 이상을 던진 투수는 외국인인 2022년 버전 알버트 수아레즈(151.5km/h) 하나뿐이다. 2위도 2023년 수아레즈(149.9), 3위는 2023년 데이비드 뷰캐넌(146.8), 그리고 4위가 2021년 39세 시즌 당시 오승환(145.7)이다.
2022년 원태인이 144.9km/h(7위)로 20대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나머지 젊은 사자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아마추어 때 140 후반을 씽씽 던지던 투수들이 삼성에 오면 140 초반대가 되고, 130 후반을 던지던 투수가 삼성에 오면 그대로 130 후반대를 던진다는 속설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른 팀에선 140 초반 투수를 150대 투수로 키워내고, 150 던지던 투수가 160을 찍는데 삼성만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올 시즌 삼성이 겪은 최악의 불펜난도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스피드’와 무관하지 않다.

누적된 스카우트, 육성 문제 해법 찾는 이종열 단장
거포-강속구 투수 부재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수년간 누적된 스카우트 실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리더가 바뀐 현 스카우트 팀에선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전 체제에선 방향성과 결과에서 의문을 자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삼성은 유독 체구가 작은 선수, 툴보다 ‘스킬’ 위주의 선수를 선호했다. 물론 프로에서 벌크업하고 신체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신체조건 좋고 운동능력 좋은 선수들만 모아놓은 팀과 비교하면 애초부터 육성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뒤떨어진 육성 시스템과 열악한 인프라도 문제였다. 1992년 건립한 경산볼파크는 한때 리그 최고의 퓨처스 시설이자 삼성의 자랑이었지만 30년이 지난 이제는 노후화된 유물이다.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건 최근 퓨처스 시설에 거액을 투자한 LG 트윈스가 증명했다. 지나치게 기술 훈련과 강훈련에 치중하는 ‘올드스쿨’ 성향도 삼성이 야구 최첨단 경쟁에서 뒤쳐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신 트렌드에 능통한 야구인으로 알려진 이종열 신임 단장도 이런 문제점을 모르지 않는다. 이 단장은 부임 이후 스포츠춘추와 인터뷰에서 “타자는 타자대로, 투수는 투수대로 어려움이 있더라. 앞으로 신인 드래프트 기조 역시 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변화를 예고했다. 또 외부 전문가 집단과의 협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팀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외부의 도움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해법 중 하나로 트레이닝 파트를 강화했다. 삼성은 지난 11월 3일 코칭스태프 영입 소식을 발표하면서 트레이닝 파트에 5명을 신규 채용했다고 전했다. 1군엔 NC 다이노스 수석 트레이너 출신인 정연창 총괄 트레이닝 코치가, 퓨처스엔 2023 아시안게임에서 트레이너로 활약한 김지훈 총괄 트레이닝 코치가 합류했고 1군 염상철 트레이너, 퓨처스 허준환 트레이너, 재활 김용해 트레이너도 가세했다.
이 단장은 트레이닝 파트를 보강하면서 단순히 부상 방지와 컨디션 관리만 목표로 삼지 않았다. 이 단장은 “신인급 투수들의 구속 문제와 타자들의 파워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트레이닝 파트 강화가 필요했고 그 첫걸음을 뗐다”면서 “향후 선수 부상 관리 등 1군에서의 즉각적인 효과와 함께 퓨처스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고 선언했다.
새로 합류한 코치 명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1군 담당 정연창 총괄 트레이닝 코치다. 정 코치는 2012년 NC 다이노스 창단 때부터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면서 야구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1군 수석 트레이너가 된 뒤에 최신 이론을 야구 훈련에 접목해 NC 유망주들의 성장과 성적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NC 시절 호흡을 맞췄던 임창민, 김진성 등은 베테랑이 된 지금도 정 코치와 교류하며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C에서 떠난 뒤엔 현대 글로비스 럭비단 스트렝스&컨디셔닝 코치를 맡았고 대구 팀42 트레이닝센터 대표코치로도 일했다. ‘스피드 스트렝스’, ‘인간은 어떻게 움직임을 배우는가’ 등의 번역서도 출간했으며 인하대학교와 동아대학교 외래교수로 최근까지 강단에 선 ‘공부하는 지도자’다.
정 코치의 전문분야는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스트렝스&컨디셔닝(Strength & Conditioning)이다. 이 가운데 스트렝스에 대해 정 코치는 과거 한 기고문에서 “스트렝스는 단순한 힘이 아닌 종목의 특성에 따른 힘을 나타낸다. 역도 선수에게는 바벨을 강하고 빠르게 위로 올리는 동작이 스트렝스이며, 마라톤 선수에게는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스트렝스”라면서 “야구 선수의 스트렝스는 더 복잡해서 ‘중심을 낮게 가져갈 수 있는 하체의 능력’ , ‘회전력을 강하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협응력’, ‘어깨를 유연하면서도 탄성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 등 야구를 잘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통합한 의미의 힘과 ‘강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삼성 선수들이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갈지 조금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대표 스트렝스&컨디셔닝 전문가 정연창 코치
정연창 코치는 스포츠춘추와 통화에서 “이종열 단장님과는 10년 전 NC 인스트럭터로 잠시 오셨을 때 처음 만났다. 이후 럭비단으로 이직하면서 교류가 끊어졌는데, 이번에 단장이 되신 뒤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고 합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정 코치에게 “박진만 감독을 도와서 팀을 잘 꾸려달라” “선수들의 구속 향상과 부상 방지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고. 정 코치는 “럭비단에 있는 동안 고중량 무게와 파워 향상 방법을 많이 연구하고 공부했다. 이 부분을 야구에 적용할 수 있게 돼서 기대된다. 명문팀인 삼성에서 감독님, 코치님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말했다.
정 코치는 NC 시절 김경문 감독, 최일언 투수코치 등 베테랑 지도자들과도 원활하게 소통하고 타협하며 성과를 낸 경험이 있다. 정 코치는 “김 감독님과 최 코치님 등 지도자들께서 트레이닝 파트의 건의를 잘 수용해 주셨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 경험은 삼성에서 기존 코칭스태프, 선수단과 함께 일하는 데도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정 코치는 “감독, 코치님들이 선수를 생각하고 팀을 위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 새로운 지식이나 방법은 잘 설명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운동할 때) 최대한 설명을 많이 할 것이고, 결과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과정에 충실하겠다. 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훈련하면 결과는 나온다고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트레이닝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나 단번에 기적을 일으키는 마법의 물약이 아니다. 스트렝스 훈련을 시도한다고 삼성 타자들이 당장 내년 시즌부터 20, 30홈런을 날리고 150km/h를 던지게 되진 않을 것이다. 성과는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나타나게 마련.
분명한 건 삼성이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며,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앞으로 수년 뒤에는 라팍에서 젊은 타자가 홈런왕 경쟁을 벌이고 150km/h대 광속구로 삼진쇼를 벌이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