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이상훈으로 시작해 라벨로 만자니오까지, 모든 게 7천일을 훌쩍 넘어간다. 우승 트로피 탈환에 나선 LG 트윈스가 매 순간 팀의 새 역사를 맞이하고 있다.
LG는 29년 전 1994 한국시리즈를 우승했다. 그 이후로 올해를 포함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4번 도전했고, 그중 앞 3차례(1997, 1998, 2002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올 시즌 마침내 다시 한번 우승 기회를 잡았다. 또한 과거 2002년에 머물렀던 한국시리즈 기록을 새롭게 채워가고 있다.
LG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기록 ‘경신(更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23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케이시 켈리를 기점으로 4차전 김윤식, 그리고 또 13일 예정된 시리즈 5차전 이후로도 현재진행형이다.
2002→2023, 21년 전 이름들 위로 다시 쓰여진 ‘새 역사’

맨 처음으로 ‘새 옷’을 입은 건 탈삼진이었다. 지난 11월 7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23 한국시리즈 1차전, 에이스 켈리가 1회 초 KT 위즈 외야수 앤서니 알포드를 신무기 포크볼로 삼구삼진 처리한 것.
그전까지 LG의 한국시리즈 탈삼진은 21년 전 대구 시민구장에서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해 11월 10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마운드에 오른 이상훈 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9회 말 4구 승부 끝에 바깥쪽 슬라이더로 강동우 현 한화 이글스 잔류군 야수총괄코치의 헛스윙 삼진을 이끈 게 마지막이었다.
정확히 7,667일 만에 나온 LG 투수의 탈삼진이다. 2002년에서 2023년으로, 21년 만에 새롭게 색칠된 ‘마지막’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1일 수원 KT 위즈파크, 2000년생 좌완 김윤식이 한국시리즈 4차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이날 선발로 등판해 KT 타선에 맞서 5.2이닝 동안 단 1실점을 내주면서 승리 투수가 된 것. 참고로 그전 LG 투수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선발승은 외국인 좌완 만자니오의 몫이었다.
2002년에 열린 한국시리즈는 올해만큼이나 강추위를 자랑했다. 그 와중에도 ‘야생마’ 이상훈과 함께 반팔 차림으로 마운드를 지켜 화제를 모았던 이가 만자니오다. 이때를 회상한 ‘2002년 LG 막내’ 이동현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그 둘의 열정 덕분이었을까. 추운 날씨가 전혀 신경 쓰이질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만자니오는 2002년 11월 4일 대구에서 불혹의 나이로 한국시리즈 2차전 선발로 등판해 7이닝 1실점 호투로 당시 LG의 시리즈 첫 승을 견인한 바 있다. 마흔 살 투수가 남긴 기록 역시 돌고 돌아 공교롭게 7,677일 만에 스물셋 후배에게 안겼다.
11일 한국시리즈 4차전 종료 후 취재진 인터뷰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팀의 한국시리즈 선발승이 꽤 오랜만에 나온 건 알고 있다”고 말한 김윤식은 ‘2002년’이라고 취재진이 귀띔하자 깜짝 놀라며 “내가 3살 때”라며 웃었다.
‘KS 3승 1패’ LG, 1승만 더하면… 하지만 ‘방심’이란 없다

또 최근 들어 연일 홈런 잔치를 펼치고 있는 LG 타선이지만 8일 한국시리즈 2차전 오지환의 홈런이 나오기 전까지는 최동수가 21년 동안 외롭게 자리를 지켰다. LG 타자들은 오랜 아쉬움을 만회하듯 ‘캡틴’ 오지환(3홈런)을 필두로 올해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만 8홈런째를 기록 중이다.
이어 이동현 해설위원이 현역 시절 기록한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승리 투수는 함덕주, 고우석, 김윤식이 차례대로 경신했다. 동시에 장문석이 남긴 2002년 한국시리즈 5차전 세이브 기록 위엔 고우석, 이정용의 이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긴 공백을 빠짐없이 다시 채웠다. 그런 LG의 시선은 이제 21년이 아닌 ‘29년 전’으로 향한다. 우승 트로피 탈환이 어느덧 코앞이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3번의 기회를 거쳐 찾아온 절호의 기회다.
LG는 11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KT를 15대 4로 대파하며 시리즈 3승 1패 고지를 밟았다. 7전 4선승제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기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둔 상황. 다만 LG 선수단은 그 어느 때보다 ‘방심’을 멀리한다.
먼저 산전수전 다 겪어본 ‘타격기계’ 김현수는 4차전 종료 후 취재진을 만나 “(과거 역사나 시리즈 스코어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뒤가 없는’ 팀처럼 계속 나아갈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그도 그럴 게 김현수는 2013년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그해 한국시리즈 3승 1패 상황에서 삼성에 3연속 패배로 아쉽게 우승을 놓친 바 있다. 김현수가 남은 시리즈를 두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까닭이다.
201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경험한 염경엽 LG 감독도 마찬가지다. 다소 우세한 상황에도 ‘절실함’을 강조하며 방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 11일 경기 후 LG의 사령탑은 “선수단, 프런트, 그리고 팬들까지 LG의 모든 일원의 절실함이 모이고 있다”며 “하지만 야구는 끝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 5차전에 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KT는 앞선 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 맞서 2패로 시리즈를 시작해 잇따른 3연승으로 리버스 스윕에 성공하며 남다른 저력을 뽐낸 팀이다. 또 한 번 ‘1패면 끝’ 벼랑으로 몰린 KT 상대로 방심은 금물이다.
LG가 숙원 사업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고 홈 팬들 앞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13일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릴 잠실을 향해 많은 이목이 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