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의 주축 타자들(사진=KIA)
KIA의 주축 타자들(사진=KIA)

 

[스포츠춘추]

12월 18일, 아주 오랜만에 KIA 타이거즈의 선수 계약 소식이 전해졌다.

KIA는 이날 오후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와 12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코칭스태프 소폭 교체(투수코치 2명)와 FA(프리에이전트) 고종욱 잔류 외엔 내내 조용했던 KIA의 스토브리그에서 거의 한 달 만에 들려온 계약 소식이다.

감독을 교체하고, 단장을 바꾸고, 코칭스태프를 갈아엎고, 대형 FA 선수를 사들이는 등 연일 포털 뉴스페이지 메인을 장식하는 다른 구단들의 요란한 행보와 비교하면 KIA의 행보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느낌마저 든다. 코칭스태프 대거 숙청이나 대형 선수 영입, 신속한 외국인 선수 교체 같은 ‘사이다’를 기대한 팬들 입장에선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KIA가 손 놓고 한가하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다. 가시적으로 눈에 확 띄진 않아도, 물밑에선 의미 있는 변화와 개혁의 움직임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처음 겪는 변화일 수도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야구계 트렌드에 뒤처져 있던 올드스쿨의 대명사 KIA가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새로운 야구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KIA가 선수 5명을 미국 드라이브 라인에 파견한다(사진=KIA)
KIA가 선수 5명을 미국 드라이브 라인에 파견한다(사진=KIA)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드라이브라인 훈련 도입…KIA가 달라졌어요

데이터 분석, 바이오메카닉스, 드라이브라인, 스트렝스 트레이닝. 그간 KIA와는 영 거리가 멀어 보였던, 앞서 가는 몇몇 구단의 전유물로 여겼던 야구계 새 언어다. 이런 표현이 최근 KIA가 내는 보도자료나 구단 관계자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여전히 해태 시절 ‘올드스쿨’ 이미지가 남아있는 KIA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키움 히어로즈 코치 시절 데이터의 중요성을 눈으로 확인한, 그리고 해설위원을 하며 다양한 데이터를 접한 심재학 단장은 KIA에서도 데이터 활용을 강조한다. KIA는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호크아이 시스템을 최초 도입해 데이터 야구에 첫발을 내디뎠다. 여기에 심 단장 부임 후엔 기존 운영팀 아래에 있던 데이터 팀을 단장 직속으로 재편해 힘을 실었다. 

심 단장은 전략기획, 분석, 데이터 파트 직원들과 자주 미팅을 가지면서 팀에 필요한 부분과 방향성을 정리하고 있다. 단순히 라인업 결정, 선수 교체 등 운동장에서 내리는 결정만이 아니라 구단 운영의 모든 영역에서 ‘데이터 기반’의 근거 있는 의사결정을 하는 게 목표다. 

퓨처스팀에서 시작한 훈련 프로그램도 1군 선수들까지 범위를 넓혔다. KIA는 올 시즌을 앞두고 미국 유명 야구 아카데미인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을 퓨처스 훈련에 접목했다. 구속 향상에 도움이 되는 웨이티드 볼 훈련을 도입하고, 광학 센서와 지면 반력기 등의 장비도 도입했다. 그 결과 올해 젊은 투수들의 속구 구속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성과를 거뒀다.

올겨울에는 아예 1군 주축 투수 5명을 미국 드라이브라인에 파견한다. KIA는 정해영, 이의리, 윤영철, 황동하, 곽도규 등 총 5명의 투수와 정재훈, 이동걸 투수코치를 오늘(18일) 미국으로 보냈다. 이들은 내년 1월 20일까지 총 33박 34일 동안 드라이브라인에서 ‘미니캠프’를 통해 맞춤형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KIA는 “구속 증가, 구위 향상 등 선수들의 기량 발전과 코치들의 바이오 메카닉스?등의 코칭 프로그램 습득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오 메카닉스 모션 캡처, 체력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선수 별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한 뒤 이 프로그램대로 일정이 진행될 예정. 또 동행한 코치들과 데이터 분석원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1군 스프링캠프와 국내 훈련에 활용할 계획이다.

심재학 단장은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자 이번 파견을 결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코치진도 선진 훈련 시스템을 잘 습득해 실제 훈련에 적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이번 파견을 계기로 향후 더 많은 선수에게 선진 야구를 경험할 기회를 폭넓게 제공해 팀 전력 향상을 도모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KIA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사진=KIA)
KIA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사진=KIA)

 

외국인 스카우트 파트 혁신 “당장 성과 안 나도 지속적으로”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 탈락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외국인 선수 파트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다. KIA는 올겨울 외국인 스카우트를 전담하는 국제업무팀을 신설했다. 또 미국 메이저리그 및 일본, 타이완 리그 소속 외국인 선수 후보군을 분석하는 전문가도 채용했다.

국제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모 직원 채용은 달라진 KIA의 구단 문화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이 인사는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일했고 국내 구단에서도 프런트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한국식 문화와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다른 국내 구단 시절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KIA에선 빠르게 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KIA 한 관계자는 “다리 꼬고 앉는다고 뭐라 할 이유가 없다. 업무 역량과 성과만 보면 된다”고 했다. 경직된 조직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다.

MLB 관계자와 외국인 담당자 사이에선 KIA가 새로 계약한 미국 현지 담당자 A씨를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 프로야구 구단 소속으로 오래 활약한 A는 올겨울부터 미국 현지에서 KIA의 외국인 선수 후보 리스트를 만들고 연결하는 일을 담당할 예정. 한 MLB 구단 관계자는 “A씨의 미국 인맥은 최고 수준이다. 구단 프런트는 물론 선수, 에이전트까지 방대한 인맥과 리스트를 갖추고 있어 KIA의 외국인 선수 영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소개했다.

다만 A씨 영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건 내년 겨울부터일 가능성이 크다. KIA 관계자는 “새 코디네이터가 추린 리스트로 선수를 영입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내년 겨울 정도부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단 올겨울엔 기존 외국인 명단에서 후보를 추려 영입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KIA는 최우선 후보로 정한 몇몇 선수에게 오퍼를 건넨 뒤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시간이 필요한 건 외국인 스카우트만이 아니다. 데이터 분석과 활용, 바이오메카닉스, 드라이브라인 훈련도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는 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일 가능성이 크다. KIA 한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변화를 이어갈 것”이라며 지속적인 혁신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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