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어두운 터널 끝엔 한 줄기 빛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겨울 FA(자유계약선수)를 맞이한 베테랑 포수 이지영이 고향팀 SSG 랜더스에 합류했다.
SSG는 1월 12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통해 이지영을 영입했다. FA 이지영이 키움과 계약기간 2년 총액 4억 원(연봉 3억 5천만 원, 옵션 5천만 원)에 도장을 찍었고, 그 뒤 SSG가 키움에 2억 5천만 원과 2025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반대급부로 내줬다.
SSG는 이지영을 향해 “그간 모범적인 선수 생활과 우수한 기량을 보유했다”면서 “투수진을 이끌어주고 젊은 포수진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프로 17년차를 맞이하는 이지영은 2008년 삼성 입단 후 키움을 거쳐 통산 1,270경기 소화에 빛나는 베테랑이다. 다만 2023년엔 명암이 교차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개막 전 제5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승선하는 등 영광의 순간을 누렸지만, 정작 본 시즌에 들어가선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2013년 이후 매 시즌 100경기 전후로 소화했던 이지영이 지난해에만 단 81경기 출전에 그친 까닭이다. 그런 이지영의 손을 붙잡은 건 SSG였다.
다음은 계약 후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이지영과의 일문일답.
‘고향팀에서 마지막’ 꿈꾸는 이지영의 소감 “두근두근하다”

생애 두 번째로 맞이한 FA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2023년은 정말 힘든 한 해였는데요.
맞습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참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나간 일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고, 또 고향팀에서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됐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감회가 남다르고 두근두근하긴 하네요.
SSG와의 협상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를 둘러싼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은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간절했죠. SSG 구단과는 1월 초부터 얘기를 시작했고, 다른 것보다, ‘정말 야구를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다행히 SSG에서 그런 저를 향해 ‘아직 좋은 선수고, 더 할 수 있다’며 격려와 함께 손을 내밀어줬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계약 때 김재현 단장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미소와 함께 ‘잘 왔다’고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 팀에 정말 필요하다는 인상을 받았죠. ‘선수 이지영’의 가치를 좋게 봐주셨기에 힘이 더 났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건 ‘팀에 유망한 투·포수들이 많은데, 잘 이끌어달라’는 말씀이었어요. 제게 주어진 역할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죠.
2013년 이후 한 시즌 100경기 이상 출전이 8차례나 될 정도로 내구성이 장점입니다. 잠시 부침을 겪었기에 올 시즌 준비를 더 탄탄하게 했을 듯싶은데요.
저야 항상 몸이 워낙 튼튼했으니까요(웃음). 올 시즌 준비를 일찍부터 했습니다. 앞선 11월 초부터 꾸준하게 운동하면서 지금은 거의 몸을 다 만들어 놓은 상태에요. 지난해의 아쉬움을 빨리 만회하고 싶습니다.
인천은 나고 자란 곳이잖아요. 서화초부터 신흥중-제물포고까지, 10대 시절을 뒤로 한 채 돌고 돌아 고향팀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묘해요. 제 야구 인생 통틀어 인천에서 야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대학은 부산(경성대)에서 졸업했고, 첫 프로 생활은 대구(삼성 라이온즈)에서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론 고향에 돌아온 게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거의 20년 만이잖아요.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론 특별한 기대감도 드네요.
어떤 기대감일까요.
인천은 제가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던 곳입니다. 순탄했던 건 아니지만,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시작과 끝을 잘 매듭짓고 싶습니다. 인천, 그리고 SSG에서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새 소속팀 SSG 선수들과 인연이 따로 있나요?
(김)광현이, (최)정이, (최)지훈이는 지난해 WBC 대표팀에서 만났고요. 김성현 선수와는 상무 야구단에서 함께 뛰었습니다. 3년 터울이라 아쉽게 연은 없었지만, (한)유섬이는 경성대 후배예요. (노)경은이 형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입니다. 다른 선수들과도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웃음).
‘정든 팀’ 키움과의 이별 “많이 아쉽고, 마음 무거워”

이적이 결정된 후 팬들과 동료 선수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별이라는 게 많이 아쉽고 마음이 무겁죠. 현역 연장 갈림길에서 선택을 내려야 했습니다. 비록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팬들과 이전 동료들을 경기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특히 키움 팬들께서 5년 동안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덕분에 항상 야구를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아쉬운 이별을 뒤로 하고, 야구장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간 보내주신 격려와 응원, 잊지 않겠습니다.
또 키움에서 함께했던 후배들이 많은 감사 인사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동고동락했던 후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일까요?
누구 한 명 손꼽기에는 다들 섭섭해하지 않을까요(웃음). 그래도 (김)재웅, 또 군복무 중인 (이)승호와 (안)우진이 같은 후배들이 먼저 생각이 납니다.
불펜부터 선발까지, 안우진의 성장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이렇게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물론이죠. 우진이는 원래 갖고 있던 기량이 출중하지만, 성장할 수 있는 잠재 능력도 큰 친구였습니다. SSG 이적이 결정되고, 최근에 ‘함께하지 못하게 돼 아쉽다’고 연락도 왔어요. 저 역시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큰 성장을 보여준 우진이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프로 데뷔 2년차를 맞는 키움 포수 김동헌의 어깨가 올해부터 많이 무거워질 듯싶은데요. 지난 한 해 동안 바라본 김동헌은 어떤 후배였습니까.
지난해 너무 잘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가능성을 키워가면서, 키움의 주전 포수로 성장하고 있어요. 시즌 중에도 제게 많이 다가와서 많이 질문하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비단 제 도움 때문이 아니라, 그런 노력이 (김)동헌이를 크게 발전시킨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베테랑 포수의 역할? “단순히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

올해부터는 로봇 심판(ABS)가 리그에 본격 도입됩니다. 베테랑 포수 입장에서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요?
아직까지는 저도 경험하질 못해서 스프링캠프를 통해서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2군에서 경험해 본 선수들은 타자들이 적응하는 데 더 힘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낙차 큰 커브 같은 경우에는 대응하기가 전보다 많이 어렵다는 말도 들리고요. 일단 저는 직접 겪어보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프레이밍의 필요성이 떨어졌다’거나, 포수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포수가 잡아주는 기술은 여전히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운드 위 투수의 심리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죠. 미트의 방향 하나하나에 투수들은 많은 감정 변화를 겪습니다. ABS 도입과 별개로 포수는 끝까지 열심히 잡아줘야 할 겁니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투수와의 교감이 더 중요해질 듯싶습니다.
프로 무대에서만 16년을 뛰었습니다. 오랜 시간 상대로 맞선 SSG는 어떤 팀이었나요.
화력이 무서운 팀이었죠. 저는 포수라서 더 조심하고 경계했습니다(웃음).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그랬어요. 항상 시합에서 보면 SSG를 상대할 때 조금만 방심해도 피홈런으로 이어지는 게 많았습니다. 포수로 출전할 때면 늘 투수의 실투를 줄이는 데 신경 쓰곤 했죠.
SSG는 젊은 포수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팀에서 ‘베테랑 이지영’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데요.
제 역할은 SSG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팀이 제게 손을 내밀어주신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단지 조언해주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제가 솔선수범하면서 많이 보여주고 그래야 세대교체 취지에 맞지 않을까요. 다만 출전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따로 정하지 않았어요. 후배 선수들을 도와 팀 우승에 기여하는 것만 바라보려고요.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릴 빌려 SSG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20년이란 세월 끝에 고향팀으로 왔습니다. 벌써부터 팬들께서 SNS를 통해 응원을 보내주셨더라고요. 팀에 하루빨리 적응해 동료 선수들과 좋은 호흡을 보일 수 있도록 해야죠. 야구장에서 늘 변함 없는, 그런 열정적인 모습을 약속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