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호랑이 군단의 사령탑 자리다. KIA 타이거즈는 2024년 시즌 대비 호주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 김종국 전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직무 정지로 시작해 끝내 해임되는 등 악재를 겪어야만 했다.
그런 KIA의 최종 선택은 결국 ‘내부 승격’이었다. KIA는 2월 13일 오전 제11대 감독에 이범호 1군 타격코치를 선임한 바 있다. 이범호 감독은 2011년 KIA로 이적해 선수로 9시즌을 뛰었고, 은퇴 후 프런트 및 코치로 팀과 동행한 지 어느덧 5년째다.
이를 두고 KIA는 “이 감독은 퓨처스팀(2군) 감독 및 1군 타격코치를 경험하는 등 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다”면서 “선수단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과 탁월한 소통 능력을 주목했고, 현재 팀 분위기를 빠르게 추스를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초임 감독의 마운드 운용? 든든한 지원군 정재훈-이동걸 코치 있다

이범호 감독은 직전 시즌까지 지도자로 뚜렷한 성과를 낸 이다. 특히 1군 타격코치로 활약한 2022, 2023년이 백미(白眉)다. 이 감독이 타격 파트를 맡은 뒤 환골탈태한 KIA 타선은 리그에서 무척 강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KIA의 팀 OPS(출루율+장타율)는 2022년 0.746(1위), 2023년 0.735(2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2019~2021년 앞 3시즌의 경우, 팀 OPS가 각각 0.706(8위), 0.755(7위), 0.673(10위) 등 10개 구단 가운데 하위권에 그쳤다.
대타 성공률도 눈여겨볼 만하다. KIA는 2023년 정규시즌 중 대타 상황에서 가장 많은 홈런(6개), 가장 높은 타율(0.283)·OPS(0.855) 등을 기록한 팀이다.
이처럼, 타격엔 별다른 걱정이 없다. 다만 이 감독을 향한 의문부호는 ‘마운드’에 있다. 야수 출신이기에 전문 영역이 아니기 때문. 다행히 든든한 지원군이 이 감독 곁에 서 있다. 올겨울 투수 파트 쇄신을 통해 KIA에 새롭게 합류한 정재훈·이동걸 투수 코치다. KIA는 2024년 1군 투수 코치진을 모두 새 얼굴로 채웠고, 두 코치가 그 중책을 맡게 됐다.
정재훈 코치는 현역 시절 두산 베어스의 철벽 불펜으로 활약한 바 있다. 14시즌 동안 통산 555경기에 등판해 84홀드 139세이브를 수확했고, 2017년 은퇴 뒤엔 1, 2군 투수·불펜 코치를 오가며 두산의 마운드를 책임졌다.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한 이동걸 코치는 은퇴 후 전력분석원을 거쳐 2021년부터 코치로 변신했다. 그 뒤 한화 1군에서 불펜 코치와 피칭 퍼포먼스 코치를 역임한 바 있다.

둘은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호주 스프링캠프에 앞서 미국 시애틀로 향해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 센터에서 바이오메카닉스 등 선진야구 노하우를 익히는 데에 온 힘을 쏟기도 했다.
무엇보다, KIA 구단과는 이번이 첫 인연이란 점에서 돋보인다. KIA가 투수 파트에 ‘외부 수혈’을 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19년 이후 최근 5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한 KIA 투수진을 바꾸고자 함이다. 팀 평균자책점이 그동안 8위(4.66)-8위(5.14)-9위(4.91)-6위(4.21)-5위(4.13)에 머무르면서 아쉬움이 많았다.
이에 외부인 출신 정재훈, 이동걸 코치는 호랑이 군단에 색다른 시선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KIA 구단 사정에 밝은 야구계 한 관계자는 “(두 코치를 향해) 벌써부터 팀 내부적으로 호평이 자자하다”면서 “선수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깨우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유형”이라고 전했다.
지난 11월 오키나와 마무리캠프부터 두 코치와 함께한 우완 기대주 황동하가 대표적이다. 당시 황동하는 속구, 변화구 ‘터널링’에서 문제가 있었다. 속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팔 스윙 스피드가 미묘하게 달랐던 것.
황동하는 이와 관련해 “터널링 문제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때마침 코치님들께서도 잘 알고 계셨고,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정재훈 코치는 “선수(황동하)가 스스로 깨닫고 코치들에게 얘길 꺼냈다”면서 “그걸 보완하는 데 도움을 줬고, 또 비시즌기엔 (황)동하가 큰 노력을 기울인 걸로 안다. 스프링캠프에서 바뀐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 캠프 출국 전 연락이 닿은 이동걸 코치도 그런 황동하의 모습을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도자라고 해서 제 말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잖아요. 선수의 생각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통 단계에서 여러 근거를 통해 선수가 스스로 더 생각하게 하고, 선수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코치의 몫이죠”
정재훈-이동걸 두 코치가 주목한 KIA 마운드 과제? 불펜!

정재훈, 이동걸 코치가 생각하는 KIA 마운드의 2024년 숙제는 명확했다. 캠프 직전 두 코치는 이구동성으로 ‘불펜’을 외쳤다.
“우리 팀 불펜 뎁스가 나쁘지 않아요. 좋은 선수가 참 많습니다. 정해영, 최지민, 임기영, 전상현, 장현식이 있고, 여기에 유승철, 김기훈, 박준표, 윤중현 등도 힘을 보태줄 수 있죠.”
정재훈 코치가 내린 KIA 불펜진 평가다.
이어 정 코치는 “이번 캠프에선 필승조-비필승조 기량 차이를 줄이는 데에도 주안점을 두려고 한다. 그래야 마운드가 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당쇠 임기영의 짐을 덜어주는 것 역시 중요해졌다. 우완 사이드암 임기영은 2023년 64경기에 구원 등판해 82이닝을 던져 4승 4패 16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 2.96을 기록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임기영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는 2.19로 그해 KIA 불펜진 으뜸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이동걸 코치는 “선발이 아무리 탄탄해도 한 시즌 매 순간 6이닝을 책임지긴 어렵다. 때론 불펜에서 이른 시점 등판해 길게 끌어줘야 할 때도 생긴다. 지난해(2023년)의 경우 KIA에서 임기영이 그런 소방수 역할을 잘해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임기영은 직전 시즌 등판할 때마다 온갖 궂은일을 도맡으며 아웃카운트 3개 이상을 자주 책임졌다. 평균 1.3이닝을 소화한 가운데 지난해 순수 구원 80이닝을 넘긴 건 SSG 랜더스 우완 노경은(83이닝)과 임기영 둘뿐이다.
이에 이 코치는 “이닝 소화가 워낙 많았고, 올 시즌은 그에 따른 피로도를 신경 써야 할 시기”라면서 “임기영 외에도 롱릴리프 혹은 추격조 임무를 수행해 줄 선수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 게 쌓여서 팀이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 캠프에서의 과제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범호 감독은 13일 구단을 통해 취임 소감을 전하면서 “내게 기대하는 부분을 잘 안다. ‘초보 감독’이 아닌 모습으로 임기 내 반드시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현역 시절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초임 감독들이 흔히 어려움을 겪는 대목이 바로 투수 운용이다. 당장 2023년 KBO리그에선 그와 같은 풍경이 몇 차례 펼쳐지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전설들도 마운드에서 쓴맛을 봤다. 이 감독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정재훈, 이동걸 두 코치는 그런 이 감독의 고민을 덜어줄 적임자들이다. ‘꽃감독’이 이끌 KIA가 부임 첫해 만에 투·타에서 절묘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