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KIA 타이거즈 새 감독 선임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종 후보 선정이 끝난 가운데 이제 면접과 결정권자의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다. 구단 안팎에선 이범호 코치와 이종범 전 코치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지만, 막판 ‘제3 후보’가 급부상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KIA는 금품수수와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 중인 김종국 감독을 해임하고 새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호주 캔버라에서 감독 없는 1차 스프링캠프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사령탑의 부재에도 선수들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밝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다만 실전 경기가 시작되는 2차 일본 오키나와 캠프부터는 감독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구단도 감독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KIA의 감독 선임 프로세스는 최근 KBO리그에서 표준화된 감독 임명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10명 안팎의 1차 후보를 추리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여기서 한 차례 더 후보를 추리는 과정을 거쳐 서너 명의 최종 후보를 압축한 상태다. 심재학 단장과 핵심 관계자들, 최준영 대표이사가 긴밀하게 의논해 후보를 걸러내고 다시 걸러냈다.
심 단장과 KIA 관계자들은 감독 후보 명단과 관련해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후보 이름을 언급했다가 큰 홍역을 치른 SSG 랜더스의 사례를 봤기에, 후보의 실명은 물론 힌트가 될 만한 언급조차 철저하게 자제하고 있다. 구단 소식에 밝은 인사들조차 이번 감독 선임과 관련해선 누가 유력한지, 후보가 맞는지조차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이다. 또 후보로 거명된 인사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외부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구단 방향성, 코치-선수단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다만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소식과 정보를 통해 KIA가 생각하는 새 감독의 조건 몇 가지가 밝혀졌다. 우선 타 구단 소속 코치들은 후보에서 배제했다. 이미 전 구단이 코칭스태프 세팅을 끝낸 가운데, 타 구단 코치와 접촉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최근 KIA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보조를 맞출 지도자인지도 중요하다. KIA는 타 구단보다 뒤늦게 데이터 분석, 바이오메카닉스 등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런 방향성과 거리가 먼 지도자는 구단에서 선호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구단과 협력하고 구단의 도움을 수용하는 지도자가 우선이다. 이에 올드스쿨 계열의 베테랑 감독들은 자연히 배제되는 분위기다. 나이만 젊지 생각은 낡은 지도자도 제외다.
KIA 구단은 물론 현 코치진, 선수단과 빠르게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KIA는 이미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구성이 끝난 상황이라, 새 감독은 홀몸으로 들어와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 타 구단에서 우승을 맛본 감독이라도 갑자기 혼자 들어와서 단시간에 선수단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한 KIA 출신 야구인은 “그 사람이 현재 KIA에 들어왔을 때 이질감이 없는지,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 같은지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선수단 파악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시즌을 허비하는 일이 생겨선 곤란하다. KIA를 잘 아는 내부자, 혹은 내부자나 마찬가지인 외부 인사가 적합한 이유다.
그외 크고 작은 결격사유가 있는 후보들도 제외되거나 뒷순위로 밀렸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 카드로 거론된 진갑용 현 수석코치는 김종국 전 감독의 오른팔이라 후임으로 임명하기엔 그림이 좋지 않다. 투수 파트의 스페셜리스트인 손승락 2군 감독은 좀 더 종합적인 지도 경험을 쌓아야 한다.
선동열 전 감독은 10년이란 긴 현장 공백에다 과거 KIA에서 실패를 경험한 역사가 있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현 KIA엔 어울리지 않는다. 특정 대학 출신 후보들도 최근 여론 구도에선 정말 능력이 탁월해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재가 아닌 이상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분위기다.
‘초보 감독은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현재 KIA 상황에선 감독 경험이 필수가 아니란 의견도 만만찮다. KIA는 올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전력을 갖췄다. 지난해까지는 부족한 감독 탓에 선수들의 잠재력이 억제된 면이 컸다. 새 감독은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마음껏 자기 야구를 펼칠 수 있게 풀어놓는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 굳이 이름난 명장일 필요는 없다. 감독이 마이너스만 되지 않아도, 가진 전력만큼의 성적만 나게 해도 충분하다.

기준에 맞는 후보는 이범호, 이종범…제3의 후보 가능성도 여전
이런 기준으로 보면 내부인 가운데서는 이범호 타격코치가 가장 근접한 후보다. 이 코치는 한화에서 데뷔해 KIA에서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타이거즈 출신이지만 순혈은 아니다. 일본프로야구 경험도 있고, ‘타이거즈 출신 지도자’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색깔도 옅은 편이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순조롭게 경험을 쌓고 성과를 내면서 차기 준비를 해왔다. 현재 호주 캠프에서 좋은 훈련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구단 코치는 “적어도 이범호가 감독이 되면 선수들이 위축되고 눈치 보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의견을 들려줬다. 팀 분위기만큼은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후보다.
구단 윗선에서 아끼는 인재로 알려진 이범호는 그간 KIA가 차기 지도자로 공들여 육성해 왔다. 좀 더 준비가 필요하단 의견도 있지만, 어차피 언젠가 지휘봉을 맡길 거라면 지금처럼 팀 전력이 좋을 때 맡겨서 ‘성공한 감독’을 만드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올해 42세로 젊은 나이도 다른 코치진 연령대가 젊어지면서 큰 문제가 아니란 평가. 내부자 가운데 가장 KIA가 바라는 감독상에 가까운 후보인 건 분명하다.

외부 인사 중에선 이종범 전 LG 트윈스 코치가 기준에 들어맞는다. 은퇴 후 KIA 감독 단골 후보였던 이종범은 방송 해설, 한화 코치, LG 코치,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 연수코치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국가대표팀 주루코치도 맡아봤고, 한 시즌 LG 2군 감독도 해봤다. 타이거즈 한 팀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감독으로 가는 필수 코스 대부분을 밟았다. 지난해 LG 우승을 함께하며 수준 높은 야구를 해본 경험도 큰 재산이다.
‘천재’ ‘레전드’ 출신들이라 생기는 단점은 외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보완했다. 보다 시야가 넓어지고, 더 품이 큰 지도자로 거듭났다는 평가. 올해는 오랜 꿈인 감독을 목표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감독 기회가 찾아온다면 바로 실전으로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은퇴 과정에서 생긴 구단과의 서운한 감정은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옅어진 상태. KIA를 떠난 지 오래됐지만 이종범이라면 코치진과 선수단 규합에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하나 더. 이름에 ‘범’ 혹은 ‘호’자가 들어가는 두 후보 외에 제3의 후보가 등장해 막타를 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앞서 KIA를 비롯한 여러 구단의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구단의 뜻과는 상관없이 최고위층이 다른 후보를 낙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여러 사정으로 유력 후보 대신 다른 후보가 감독직을 맡는 경우도 나오곤 한다.
일부 야구인 중에는 여전히 “심재학 단장이 직접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한 야구인은 “현재 KIA의 방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코치진과 선수단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는 심 단장 본인”이라고 했다.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시절부터 타격코치, 주루코치, 수석코치 등 여러 보직을 통해 감독 수업을 쌓았고 국가대표 팀 퀄리티 컨트롤 코치도 역임했다.
타 구단 코치는 “방송 해설 시절부터 데이터에 관심이 많았고, 야구를 디테일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염경엽 LG 감독 같은 야구를 KIA에 도입할 수 있는 적임자는 사실 심 단장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전했다.
현직 단장이란 걸림돌이 있지만 이미 오프시즌 단장의 굵직한 업무는 다 끝났고 ‘감독의 시간’인 스프링캠프가 진행 중이다. KIA 내부의 참신한 인사가 프런트 업무를 총괄하고 베테랑 인사들이 보좌하면 구단 운영 연속성에 큰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앞의 야구인은 “지금 같은 시기에 감독을 맡아서 구단의 방향성을 지켜가고 코치진, 선수단을 하나로 만들 만한 중량감 있는 인사는 심 단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심 단장도 “내 리스트에 (심재학은)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감독 최종 결정권은 단장 윗선과 그룹 고위층의 몫이다. 결정권자가 강력하게 요청할 경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KIA는 설 연휴 기간에도 감독 선임 막바지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국외에 있는 후보와는 화상 면접도 가능하다. 인터뷰 절차를 거쳐 설 연휴 이후엔 새 감독이 정해질 전망이다. 만약 연휴 직후 감독 선임이 이뤄지면 바로 호주로 건너가 1차 캠프 마지막 턴을 지휘할 수 있다. 내부 승격일 경우 현지에서 취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후 2차 일본 캠프에서 선수단을 지휘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