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의 빈축을 산 티빙 하이라이트 자막(사진=티빙 화면)
야구팬들의 빈축을 산 티빙 하이라이트 자막(사진=티빙 화면)

 

[스포츠춘추]

‘변화 저항’은 인간의 본능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습관의 힘, 심리적 불편함, 손실에 대한 우려 등 다양한 이유로 개인과 조직은 변화에 저항하고 거부감을 보인다.

올시즌 KBO가 추진한 여러 변화도 초반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히는 모양새다. ‘피치클락’은 시범운영 단계임에도 현장 감독들의 ‘비토’ 대상이 되고 있다. ‘말도 안 된다’는 비판부터 피치클락을 무시하겠다는 식의 반응까지 노골적 보이콧 움직임이 나타난다. OTT ‘티빙’의 뉴미디어(유무선) 중계 역시 야구팬들의 격렬한 비판과 반발이 만만치 않다. 티빙이 새로운 콘텐츠로 선보이려던 ‘슈퍼매치’도 소통 부족과 현장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야구가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사진=Bing AI)
급격한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야구가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건 시간 문제다(사진=Bing AI)

 

KBO와 티빙,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비판 자초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변화를 주도한 KBO와 티빙의 준비 부족, 운영 미숙이 일차적 원인이다. KBO는 피치클락 등 규정규칙 변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장 지도자와 선수들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일단 확정한 뒤 발표하고 통보하는 순서를 따랐다. 

이후 감독자회의의 강한 반대로 ABS(로봇심판)와 동시 시행이 무산됐고, 피치클락은 시범운영 뒤 정식 도입 시기를 검토하기로 한발 물러섰다. ABS와 피치클락이란 중대 변화를 한꺼번에 추진하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 ‘일방적’인 추진 방식이 현장의 저항을 자초한 면이 있다.

티빙 역시 각종 실수, 오류, 미숙한 운영이 겹치고 겹쳐 안 그래도 야구 중계 유료화로 커진 적대감에 불을 붙였다. 티빙은 9일 시범경기 첫날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3루 세이브’ ‘3루 찍고 홈런’ ‘22번 타자 채은성’ ‘삼성 라이언즈’ 등 야구 초보자도 하지 않을 실수로 질타를 받았다. 영상 송출 딜레이, 음성 오류, 문자중계 오류 등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다. 경기 후 하이라이트 영상 업로드는 무려 5시간이나 걸렸고, 그렇게 올라온 하이라이트도 경기의 맥을 제대로 짚지 못한 수준 이하 결과물이었다. 몇몇 팀을 비하하는 온라인 용어를 ‘오피셜’ 영상에 사용한 것도 팬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기존 네이버 등 포털에서 선보인 안정적이고 품질 높은 서비스와, 티빙의 아마추어적인 서비스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뤘다. 야구팬 사이에서는 ‘무료 중계만도 못하다’ ‘B급 중계’란 비판이 쏟아졌다. 구단 사이에서도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야구를 너무 쉽게 보고 이 판에 들어왔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라운드 프리뷰, 라커룸 촬영 등을 포함한 콘텐츠 계획도 KBO 및 구단과 협의 초기 단계인 사안을 섣부르게 공개했다가 무산되는 결과로 돌아왔다. 야구팬과 미디어, 야구계에 긍정적인 첫인상을 심어주는 데 완벽하게 실패한 티빙이다. 백번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KBO와 티빙의 패착과는 별개로, 일부 현장과 야구계 그리고 대중들이 보이는 반응엔 아쉬움이 남는다. 야구 산업화와 수익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사고방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야구가 대기업 구단주의 취미생활이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더 많은 팬을 끌어들이고 수익을 내야 살아남는 시대인데 여전히 일부 구성원들은 과거의 생각에 머물러 있다. 이는 프로야구의 산업화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먼저 피치클락은 ‘경기 시간 단축’이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면 거부할 수 없는 변화다. KBO 관계자는 “이미 작년부터 미국에서도 하고 있고 타이완(대만)에서도 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대회와 세계야구의 흐름이 (피치클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피치클락이 대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구단 이사회에서도 적극적이고, 구단들도 가능하면 빨리 도입하자는 의견이 다수라고. 반대하면서 어떻게든 무산시키려는 현장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한 야구단 관계자는 “프로야구는 항상 팬의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만 중요하면 프로야구라는 타이틀을 달 이유가 없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팬을 위한 비즈니스다. 고객이 짧은 경기 시간을 원한다면, 더 많은 고객 유입을 위해 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일정 부분 타협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오로지 구단주만 바라보고, 성적만 내면 그만이라는 옛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피치클락을 도입한 시범경기 첫 4일간 19경기 경기 시간은 지난해보다 23분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위반 건수도 첫날 39건에서 21건, 16건, 9건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물론 매 경기가 중요한 정규시즌이 되면 벤치 사인이 많아지고 신중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일단 리그 전체적으로는 피치클락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업화, 수익화를 못하면 먼 미래에 한국야구는 노인들과 소수의 팬만 보는 종목이 될 수 있다(사진=Bing AI)
산업화, 수익화를 못하면 먼 미래에 한국야구는 노인들과 소수의 팬만 보는 종목이 될 수 있다(사진=Bing AI)

 

부실 중계 비판은 당연하지만…수익화-산업화 시도 자체를 부정해서야

티빙의 뉴미디어 중계를 향한 비판에도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티빙의 부실한 서비스와 미숙한 운영을 팬들이 비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품질을 개선하라는 요구도 고객의 지당한 권리다. 하지만 이를 넘어 유료화 자체를 반대하거나, 계약 자체를 무효화하라는 식의 요구는 가능하지도 않고 사안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우선 주요 스포츠 중계의 유료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티빙이 뉴미디어 중계권을 따내면서 예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찾아온 것이지 언젠가는 찾아올 변화였다. 이미 사람들은 OTT를 돈 내고 구독하는 데 익숙해졌다. 좋아하는 영화나 시리즈를 보려고 지갑을 여는 게 더는 어색하지 않다. 야구팬 역시 비싼 경기장 티켓을 구매하고, 굿즈와 식음료 소비에 지갑을 연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중계라는 상품에 일정금액을 지불하는 건 무리하거나 이상한 요구가 아니다. 지속 불가능한 무료 중계에 대한 요구보단, 돈 내고 볼 만한 품질과 가치를 제공하라는 요구가 타당하다. 

KBO가 기존 네이버 등 포털을 제치고 OTT 티빙과 중계권 계약을 맺은 데는 구단들의 강한 요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500억 가까운 운영비를 지출하는 구단들로선 어떻게든 수익을 내고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데, 티빙이 제시한 3년 총액 1350억 원이란 거액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는 설명이다. 한 구단 대표이사는 “티빙이 예상보다 높은 금액을 비딩해줘서 구단들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좋은 대안으로 여겨진 게 사실”이라 했다.

네이버가 닫아놨던 영상 2차 재가공을 KBO와 구단에 100% 허용하면서, 구단 자체제작 콘텐츠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앞의 대표이사는 “팬들에게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기회가 될 거라고 봤다. 기존 네이버는 너무 발목을 묶는 면이 있었는데, 티빙과 손잡으면 영상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고 했다.

실제 시범경기가 시작한 9일 이후 각 구단 유튜브 채널엔 독자적으로 찍은 화면과 경기 영상을 결합한 형태의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다. 앞의 대표이사는 “구단마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고민이 컸는데, 이제는 그 제약이 사라졌다. 더그아웃 위주 영상만 쓰다가 실제 경기 영상을 사용하면서 팬들의 반응이 훨씬 좋다는 걸 느낀다. 앞으로 좀 더 창의적이고 팬들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콘텐츠를 통한 수익 창출도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른 구단 영상제작 담당자도 “이제부터는 구단마다 실력 차가 드러날 거다. 치열한 영상 경쟁이 예상된다”고 했다.

팬들 역시 SNS와 유튜브 쇼츠 허용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즐기고 있다. 티빙 비판 여론에 편승해 연일 부정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SNS 매체에서도 쇼츠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쏟아내는 중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진작부터 이런 방향으로 갔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졌다. 이제라도 자유로운 영상 활용이 가능해져 다행”이라 했다.

과거 정권 압력이나 사회공헌 차원에서 프로야구단을 운영했던 대기업들은 이제 야구단에 수익을 내고 존재 이유를 증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SK 외에도 여러 구단의 모기업이 매각을 타진하거나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어떤 구단이 경영상의 문제로 야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매각하거나 지원을 끊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당장 외형적인 프로야구의 상황은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구단들은 수익화와 산업화를 달성해야 지속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구단 내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데, 정작 야구 현장에선 한가로운 분위기로 대조를 이룬다. 옛날처럼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고, 경기에 방해되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멘탈리티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티빙에서 요구한 라커룸 개방은 수년 전부터 취재 매체에서도 요구했고 구단들도 검토했던 사안이지만 여전히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물론 낙후된 시설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경기력’이 새로운 콘텐츠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단골 핑계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프로야구단 마케팅팀장을 지낸 김경민 한국핸드볼연맹 사업본부 실장은 SNS에 올린 글에서 “티빙이 현재 (너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틀을 깨고 팬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선사하고자 하는 노력마저 원천 봉쇄해버린다면 이들은 1,350억 원이라는 거액 투자의 대가로 무엇을 얻어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시도를 ‘특권’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매도(?)하는 건 좀 그렇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깨뜨릴 수 없는 관행, 관습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선사할 수 있다면 귀찮고 힘들어도 실행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거액을 지불하고 권리를 획득한 자의 요청이라면 더더욱 살피고 살펴야 한다. 이는 타 콘텐츠와의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여 있는 프로야구에 생명력을 더하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티빙이 (기성 미디어들이 제작한) 야구 중계 영상을 온라인에서 실시간 단순 송출하는 역할만 담당하게끔 내몰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한 구단 대표이사 역시 “아무래도 팬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어 걱정은 된다”면서도 “티빙이 빨리 정착해서 팬들을 잡으면 좋겠다. 구단 대표들이 최근 미국에 다녀왔는데 하나같이 ‘이왕 시작했으니 잘 되길 바란다’ ‘아쉬운 부분은 빨리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서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얻어낼 것은 얻어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KBO가 추진 중인 여러 변화와 티빙이라는 새 파트너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고 그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변화와 가능성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강한 반발과 저항 속에 좌초하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 당장 이기고 지는 일만 생각하고 변화의 흐름에 눈을 감으면, 언젠가 야구가 천천히 소멸해서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산업화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한 프로야구의 현주소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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