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 내야수 천성호(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스포츠춘추]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까지 잘해주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개막 첫 10경기에서 단 2승에 그친 KT 위즈지만, 사령탑은 ‘한 선수’를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복귀한 예비역 내야수 천성호 얘기다.

천성호는 현재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한 명이다. KT의 주전 2루수로 10경기 동안 12득점 21안타 3타점 1도루 타율 0.488, 출루율 0.500, 장타율 0.512 등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득점·안타 부문에서 리그 1위를 질주 중인 천성호는 동시에 타율·출루율 2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화 이글스 외야수 요나단 페라자를 바짝 추격 중이다.

또 4월 3일 홈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을 포함해 멀티히트 경기만 7차례다. 여기에 이강철 KT 감독의 칭찬이 뒷받침하듯 빠른 발과 준수한 수비를 앞세워 매 경기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천성호다.

이러한 선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자고로 아프리카 속담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KT를 거쳐 상무, 그리고 KT로 돌아오기까지, 천성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두각을 드러낸 경우다.


“꼭 달라져서 돌아오겠다” 다짐했던 천성호, 마침내 만개 앞뒀다

천성호는 현시점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가운데 하나다(사진=KT)

천성호는 1997년생 우투·좌타 내야수로 183cm, 85kg의 다부진 체격을 자랑한다. 광주 진흥고-단국대를 거쳐 2020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 12순위로 그해 대졸 선수 가운데 가장 빠른 순번에 지명된 바 있다.

입단 후 곧바로 1군 백업 역할을 수행한 천성호는 2021, 2022년 동안 1루수부터 유격수까지 내야 전 포지션을 오가면서 107경기에서 OPS(출루율+장타율) 0.585를 기록했다. 다만 1년 차(66경기)보단 그 이듬해(41경기) 출전 기회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2022년 군 입대를 택했다.

“많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제가 못 살린 거죠. 이젠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2년 후엔 무조건 달라져서 돌아오리라 다짐한 채로 상무로 향했습니다.” 2일 수원에서 스포츠춘추와 만난 천성호의 기억이다.

다만 상무에서의 첫해는 기존의 타격을 그대로 이어간 천성호다. 선수들을 존중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박치왕 상무 감독의 오랜 철칙 때문이었다. 이때를 떠올린 박 감독은 “상무에선 합류 1년 차에 타격 자세 등을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면서 “천성호의 경우 그해 동계 훈련부터 많은 게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천성호가 가진 ‘스프레이 히터’ 면모를 주목한 박 감독은 “아래로 찍어 치는 다운스윙 성향을 고친 뒤 하체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빠른 공 대응도 좋아졌고, 타구 방향도 훨씬 다채로워졌다”고 했다.

12월 8일 일구회 시상식에서 프로지도자상을 수상한 상무야구단 박치왕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상무야구단 박치왕 감독(사진=스포츠춘추 DB)

그렇게 마주한 상무 두 번째 시즌은 달랐다. 천성호는 2023년 퓨처스리그 79경기에 출전해 104안타 16도루 타율 0.350, 출루율 0.438, 장타율 0.434 등을 기록하면서 남부리그 타격왕에 등극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박치왕 감독님께서 항상 ‘1군 투수들은 더 빠르고 변화가 더 많은 공을 던진다’고 강조하셨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스윙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고 말한 천성호는 “그런 말씀들이 지금의 내 타격관이 정립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고 덧붙였다.

천성호는 올 시즌 타석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에 따르면 스윙 비율(62.0%)의 경우 한화 하주석(79.3%)에 이어 리그 2위일 정도. 리그 평균인 50.8%에 비하면 확실히 높은 수치다. 평소 번트 시도조차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상무에서의 경험 덕분이다.

또한 천성호는 “예전만 해도 공을 끝까지 확인하고 치려고 했다”면서 “날아오는 공의 중심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대응하는 게 너무 늦어지고 타구질도 좋지 않더라. 이런 부분을 적극적인 타격을 통해 조금씩 보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상무는 KBO리그 10개 구단에서 내로라하는 기대주들이 모이는 곳이다. 때문에 주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간혹 순번이 꼬이면 2년 내내 그런 풍경이 반복되는 일도 생긴다. 천성호의 포지션 역시 상무에서 고정된 포지션은 아니었다. KT로 복귀한 지금은 2루수로 뛰고 있지만, 상무에선 1, 3루 코너 출전도 잦았다. 그러나 당시를 회상한 선수 본인은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무에서 함께했던 (심)우준이 형도 제게 ‘지금 많은 걸 해놓는 게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어요. 팀이 필요로 할 때 어느 포지션이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저를 위해서라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직까진 ‘제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포텐 터진 천성호…마법사 한 명 만드는 데 온 선수단이 머릴 맞댔다

유한준 KT 1군 타격코치는 올 시즌 천성호에게 ‘루틴’의 중요함을 알려준 이다(사진=KT)

아니나 다를까 KT 구단에선 연일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천성호를 향해 흡족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부터 1군 타격 메인 파트를 맡게 된 유한준 코치도 마찬가지다. 유 코치는 2020, 2021년 팀의 맏형으로 당시 신예였던 천성호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이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생산하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자신의 타격 정체성을 드디어 찾은 느낌이에요.” 달라져서 돌아온 천성호를 본 유한준 코치의 말이다.

이어 유 코치는 “(선수 시절을 함께한 선수이기에) 지금의 활약이 너무 반갑다. 또 천성호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이어가려는 선수다.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인데도 계속 해내가는 점이 대견하다”고 했다.

참고로 천성호의 루틴 만들기는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 코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고. 이와 관련해 천성호는 “선수 시절 늘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가장 먼저 나오셨던 분이 유 코치님이셨다”면서 “신인 때부터 코치님의 루틴을 많이 배우고 싶었는데, 이제야 많이 여쭤보고 나만의 것을 만드는 중”이라고 밝혔다.

천성호가 믿는 건 특정한 행동 양식이 가져다주는 효과가 아니다. 루틴을 통해 습관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한다. 천성호는 루틴의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보단 “군인 때는 신경 쓰기 어려웠지만, 루틴의 필요성은 줄곧 느끼고 있었다”면서 “이번 겨우내 그런 걸 많이 준비했고, 앞으론 좋든 안 좋든 계속 밀고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2024년 KT의 테이블세터를 책임지고 있는 외야수 배정대(사진 왼쪽부터), 내야수 천성호(사진=KT)
2024년 KT의 테이블세터를 책임지고 있는 외야수 배정대(사진 왼쪽부터), 내야수 천성호(사진=KT)

KT의 동료 선수들도 천성호의 연착륙을 돕고 있다. 천성호와 함께 마법사군단 테이블세터를 책임지고 있는 리드오프 배정대가 그중 하나다. KT의 주전 중견수인 배정대 역시 올 시즌 남부럽지 않은 타격감(10경기 타율 0.349)을 뽐내고 있다. 천성호의 역할은 그런 배정대의 뒤를 이은 2번 타자다.

“(배)정대 형이 제 앞에서 너무 잘해주시니까 제가 부담감을 느낄 겨를이 없더라고요. 덕분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혹 경기 시작 전 정대 형이 좋은 말 던져주시는 게 긴장 푸는 데 아주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천성호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 대목이다.

팀 베테랑 선배들의 조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팀 주장인 박경수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천성호는 “긴 호흡으로 정규 시즌을 치러본 경험이 부족해 선배들에게 많이 여쭤본다”“특히 (박)경수 선배는 ‘때론 휴식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걸 계속 염두에 두고 있다. 체력적인 부분도 분명히 신경을 써야 할 듯싶다”고 했다.

한편 좋은 타격감을 유지 중인 천성호에게 ‘홈런’ 욕심은 없을까. 그도 그럴 게 천성호는 프로 데뷔 후 1·2군 통틀어 공식전에서 담장을 단 한 차례도 넘기지 못했다. 최근 물오른 타격 페이스라면 큰 장타도 기대해 볼 법한 상황. 하지만 천성호는 망설임 없이 고갤 저은 뒤 “홈런을 의식하는 것보단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면서 “팀을 위해서 잘 치고 잘 달려서 득점을 올리는 게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답했다.

올 시즌 주전 2루수로 맹활약 중인 천성호(사진 왼쪽부터)를 향해 이강철 감독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사진=KT)

이어 천성호는 타격 순위 및 기록에 대해선 “시즌 내내 이 정도로 높은 숫자를 유지하긴 당연히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류현진(한화), 양현종(KIA) 등 대선배들과 타석에서 대결한다는 게 정말 영광이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 투수들 상대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과 친구들이 타격 순위권에 오른 내 이름을 캡처해 매일 보내주고 있다”고 운을 뗀 천성호는 “다들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 남겨두자’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고 뿌듯하다”고 웃었다.

수원의 팬들도 2년여 만에 돌아온 천성호를 무척이나 반기고 있다. 올해는 선수 전용 응원가도 새롭게 생겼다. 경기장에서 천성호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응원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 이에 감격한 천성호가 “신인 때만 해도 코로나19로 팬분들을 많이 뵙지 못했는데, 올해는 정말 감회가 새롭다. 응원가도 너무 좋아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붙더라. 더 잘해서 더 큰 함성과 응원을 받고 싶다”고 말한 까닭이다.

“아직 제 자릴 만들지 못했지만, 조금씩 주전 역할이 탐이 납니다. 항상 전력질주하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그 자리가 내 것이 되지 않을까요?”

KT는 개막 후 2승 8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팀의 일원인 천성호도 책임감을 느끼는 대목이다. 이에 천성호는 끝으로 “팀 순위가 예상치 못하게 밑에 있어 팬분들께서 실망하셨을 듯싶다”면서 “하지만 시즌 끝날 때쯤엔 우리는 훨씬 더 위에 있을 것이다. 동료들과 함께 반등을 이끌 수 있도록 좋은 모습 약속드리겠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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