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을 마친 뒤 투구 프로그램을 시작한 오타니(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기자회견을 마친 뒤 투구 프로그램을 시작한 오타니(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츠춘추]

최근 급증하는 투수들의 부상과 피치클락이 무관하다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주장에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게릿 콜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놨다. 오타니는 “피치클락이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고 게릿 콜은 사무국의 발표가 “근시안적”이라 비판했다. 시즌 초반 투수들의 팔꿈치가 터져나가는 가운데, 피치클락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는 분위기다.

4월 9일 미국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오타니는 최근 투수 부상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과 관련해 “피치클락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투수라면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지고 싶어 한다”면서 피치클락 도입으로 “짧은 시간 안에 공을 던지려다 보니 과부하가 가해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유일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투수와 타자를 오가는 ‘투웨이’ 선수 오타니는 벌써 두 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018년엔 빅리그 루키 시즌 직후 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지난 9월에도 또 한차례 내부 보조기 삽입을 포함한 토미존 수술을 진행했다. 올 시즌 지명타자로만 출전할 예정인 그는 지난달 말부터 공을 던지며 투수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셰인 비버(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셰인 비버(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최근 MLB는 에이스급 투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 달에만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투수 셰인 비버, 마이애미 말린스의 투수 유리 페레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스펜서 스트라이더가 팔꿈치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 양키스에선 에이스 게릿 콜이 팔꿈치 염증으로 6월까지 투구를 쉴 예정이고, 불펜투수 조나단 로아이시가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다. 그 외에도 샌디 알칸타라, 셰인 맥클라나한, 브랜든 우드러프 등 각 팀 에이스급 투수들이 팔꿈치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된 상황이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2023년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 건수는 총 263건으로 2011년 111건에서 크게 증가했다. 또 ‘뉴욕 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시작한 166명의 선수 중 132명이 투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키스 코치 맷 블레이크는 “162경기 동안 매일 9이닝을 던지는 투수들의 코치로서 걱정스럽다”고 했고,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투수들의 팔을 보호하는 게 중요한데, 우리는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투수 부상이 잇따르자 선수노조는 주자 있는 상황에서 피치클락을 지난해보다 2초 줄이기로 한 사무국의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23시즌을 앞두고 무주자시 15초, 유주자시 20초 피치클락을 처음 도입했던 MLB는 올 시즌부터 주자 있는 상황에서의 피치클락을 18초로 줄였다. 당시 경기위원회에 참석한 선수 대표 4명이 반대했지만 규칙 변경을 막지 못했다.

선수노조의 비판에 MLB가 즉각 반응했다. MLB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분석 결과를 근거로 피치클락이 더 많은 부상을 초래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MLB가 이용한 연구는 아직 동료 교수 평가 단계라 미공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리그(MLB) 양키스 에이스 게릿 콜(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이저리그(MLB) 양키스 에이스 게릿 콜(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MLB의 반박에 다시 선수들의 재반박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게릿 콜은 최근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피치클락이 부상 증가의 원인이 아니라는 MLB 사무국의 발표에 반대 의견을 표했다.

물론 콜은 자신의 팔꿈치 부상이 피치클락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피치클락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팔 부상 증가의 원인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타자들의 기량 향상, 이물질 단속, 구속과 회전수에 대한 강조 등이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디 애슬레틱’의 켄 로젠탈도 “투수를 더 좋게 만들지만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진 않는 드라이브라인의 신과 기술과 데이터에 대한 숭배를 잠시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와 첨단 장비의 발달로 투수가 더 빠르고 더 회전이 많은 공을 던지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내진 못했다는 지적이다. 투수들은 더 강한 공, 더 움직임이 많은 공을 던지려 하고 구단들은 투수에게 초반부터 전력투구를 하라고 요구한다. 부상자가 나오면 마이너에서 새로운 투수를 올려 빈자리를 메꾼다. 로젠탈은 이를 두고 “(프런트 오피스가) 투수들을 마치 낡은 스파이크 한 켤레를 다 쓰고 버리듯 순환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환경에서 어느 때보다 투수들이 부상에 취약해진 가운데, 피치클락이란 변수까지 더해져 부상 위험성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젠탈은 “리그는 ‘경기 시간을 5분 더 줄이자’는 정책을 펼치기 전에 여러 시즌에 걸쳐 피치클락 효과를 연구할 수도 있었지만, 데이터를 수집하는 대신 피치클락 시행 1년 만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면서 “빠른 경기 속도가 투수들의 피로를 가중시켜 (부상에) 더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홉킨스 연구 결과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피치클락 2초 단축으로 부상 위험이 1%라도 증가한다면 문제라는 지적이다.

게릿 콜 역시 “뭔가를 시행하고 단 1년 만에 ‘관련성이 없다’고 말하는 건 근시안적이다. 5년은 지나야 알 수 있을 피치클락 효과를 섣불리 무시하는 건 현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중요한 건 선수들을 보호하고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피치클락을 둘러싼 선수노조와 MLB의 대립에 관해 콜은 “이게 싸움의 문제라는 건 답답한 일이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 부모가 이혼해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합심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문제가 있으면 최소한 해결하기 위해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롭 맨프레드 커미녀서는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MLB 사무국은 투수 부상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위해 지난해 10월 의료 관계자를 포함한 야구계 관계자 100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가 완료되면 사무국은 태스크 포스를 구성해 투수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권장 사항을 구단에 제공할 예정이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26인 로스터에서 투수 수를 13명에서 12명으로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 관해 로젠탈은 이 과정에 선수 노조도 참여하게 해야 하고, 선수노조 역시 비판만 할 게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본격적인 위기에 대응해 사고방식의 변화, 훈련 방법의 변화, 규칙에 의한 인센티브 부여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투수를 소모품처럼 쓰는 것을 막기 위해 투수 엔트리 제한은 물론 마이너리그 옵션 제한을 함께 적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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