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핫코너를 책임졌던 이범호 KIA 감독(사진 왼쪽부터), 올 시즌 MVP급 활약을 펼치고 있는 KIA 3루수 김도영(사진=KIA)

[스포츠춘추]

개막 전만 해도 예기치 못한 풍파에 크게 흔들리는 듯했다. 그런 걱정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새 선장’ 이범호 감독과 함께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KIA 타이거즈 얘기다.

KIA는 2024년 정규시즌 개막 후 27경기 만에 20승 고지를 밟았다.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빨랐고, 4월 27일 경기 종료 기준으로 봐도 여전히 유일무이한 ‘20승’ 팀이다. 

이는 타이거즈 사상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7년 전과 비교해도 한 경기 더 빠른 페이스이기도 하다. 참고로 KIA의 통합 우승 시즌인 2017년은 28경기 만에 20승에 성공했다. 올해의 경우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불미스러운 일로 사령탑이 교체되는 등 악재 속에서 호성적을 내고 있기에 의미가 더 남다른 대목이다.

특히 리그 선두는 투·타에서 고른 활약이 나와야 가능한 자리다. 이를 뒷받침하듯,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는 올 시즌 KIA를 두고 팀 마운드(7.37), 타선(7.57) 모두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총합 1위로 평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주목할 점은 2017년만큼이나 매서운 방망이를 뽐내는 중인 타자들이다. KIA는 올 시즌 득점(173개), 타점(165개), 타율(0.295), 장타율(0.452)에서 으뜸을 차지하는 건 물론이고, OPS(출루율+장타율), wRC+(조정 득점창출력)은 각각 0.825, 119.8로 리그에서 가장 높다. 가히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7년 전 타선과 견줘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올해 강하지만, 7년 전만큼은 아니다” 대투수&나비의 ‘이구동성’

KIA와 함께 2009, 2017년 우승 트로피를 두 차례 들어올린 왼손 에이스 양현종(사진=KIA)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던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25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7이닝 2실점 투구로 개인 통산 170승을 달성한 ‘대투수’ 양현종은 앞서 2009, 2017년 두 번의 우승을 KIA 유니폼을 입고 일궈낸 이다.

“지금 선수들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인데, 아직까진 7년 전만큼 강하진 않은 것 같아요.” 25일 경기 뒤 취재진과 만난 양현종의 말이다.

이때 양현종은 “지금 분위기도 그때만큼 너무 좋다”면서도 “시즌 초반에 승패 마진을 이렇게까지 벌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떤 경기에서도 질 것 같지 않은 팀 분위기다. 다만 아직까진 2017년 KIA가 조금은 더 강력하지 않았나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근거가 타선의 차이다. 이를 두고 “올 시즌 방망이도 좋지만, 2017년을 떠올리면 충격적일 정도로 타격이 강했다”고 말한 양현종은 “짜임새가 정말 좋았다. 이범호 감독님이 7번 타자를 맡을 정도로 타선의 무게감이 대단했다.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이 감독은 1981년생 동갑내기 김주찬 현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와 함께 7년 전 KIA 타선의 최고참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또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면서 그해 115경기를 출전해 104안타 25홈런 89타점 OPS 0.870 등 노익장을 발휘해 팀 통합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이범호 감독님께서 7번을 치실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위 타순은 얼마나 더 잘 쳤을까요. 올 시즌 동료들도 참 잘하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2017년이 좀 더 임팩트 있고 강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현종의 설명이다.

4월 9일 광주 LG전을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범호 KIA 감독(사진 왼쪽부터), 나지완 SBS 스포츠 해설위원(사진=KIA)

또 다른 ‘우승 멤버’인 나지완 SBS 스포츠 해설위원도 양현종의 의견에 고갤 끄덕였다. 나 위원은 현역 시절 KIA에서만 15년을 뛴 ‘원클럽맨’이다. 그중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중요할 때마다 끝내기 홈런(2009년)이라든지 대타 홈런(2017년)을 때려 우승 트로피를 얻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2017년 정규시즌에선 좌익수와 지명타자 등을 오가면서 137경기 동안 138안타 27홈런 94타점 타율 0.301, 출루율 0.405, 장타율 0.534 등 이른바 ‘3/4/5’ 슬래시 라인을 뽐낸 바 있다. 그해 이범호 감독이 팀의 7번 타자로 주로 활약했다면, 나 위원은 클린업인 5번 타순에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27일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나 위원은 “2017년은 베테랑이 주축이고, 올 시즌은 젊은 선수들이 돋보이는 해”라면서 “전자는 무르익은 느낌이 매력이라면, 후자의 경우엔 경험을 채워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재밌는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 위원은 “그렇지만, 나 역시 객관적으로 봤을 땐 2017년 타선이 우위에 있지 않나 싶다”면서도 대투수의 생각에 동의했다.

“지금 타선은 아직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더 많아서 장점이기도 하고, 반대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나 위원의 설명이다.

나 위원이 계속해서 강조한 건 요컨대 ‘젊은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현시점 모습이 최대치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더 치고 올라갈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선 나 위원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름값은 2017년이 좋은 게 맞다”면서도 “올 시즌 젊은 선수들의 파급력이 어느 고점까지 올라갈지가 관건이다. KIA 타선이 지금 거침없는 모습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때론 힘에 부칠 때도 올 듯싶다. 그걸 잘 이겨낸다면 얘긴 달라진다”고 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 기준 2017년(사진 왼쪽부터), 2024년 KIA 타선(표=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 기준 2017년(사진 왼쪽부터), 2024년 KIA 타선(표=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한편 올 시즌 KIA 타선의 핵심은 1, 3루 코너 내야수들과 중견수에 있다. 올 시즌부터 제대로 만개하고 있는 김도영, 이우성, 그리고 군 제대 후 리그 정상급 중견수로 활약 중인 최원준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도영은 지난 4월 한 달 동안 10홈런과 13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바 있다. 이는 KBO리그 42년 역사상 최초의 ‘월간 10-10클럽’ 달성이다. 내로라하는 전설들마저 정복하지 못한 걸 프로 데뷔 3년 차 및 스무 살에 불과한 신예가 해낸 셈이다.

나 위원도 그런 김도영을 향해 거듭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먼저 “어쩌면 ‘KBO리그 무대가 작은 것 아닐까’ 할 정도로 잘하고 있다”고 언급한 나 위원은 “현시점 김도영의 라이벌은 자기 자신인 것 같다. 부상만 안 당하고 시즌을 잘 마친다면 30홈런-30도루는 기본적으로 해낼 선수”라고 말했다.

서른을 앞두고 팀 주전 1루수로 도약한 이우성을 두곤 다음과 같이 엄지를 치켜세운 나 위원이다.

“꽃이 늦게 핀 케이스인데, 예전부터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던 선수입니다. 작년(2023년) 풀타임 소화를 통해 선수 본인이 뭔가 깨달은 느낌이 있어요. 자기만의 타격 루틴이 정립된 것 같더라고요.”

나 위원은 외야수 최원준의 이름도 주목했다. 7년 전 내·외야를 두루 소화하면서 KIA 타선의 막내 역할을 맡았던 최원준은 돌고 돌아 올 시즌부터 중견수 자리에 안착했다. 개막 전엔 우려가 많았다. 시범경기에선 10경기에 출전해 타율 0.074, 출루율 0.167, 장타율 0.185에 그치는 등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막상 개막 후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최원준이다. 지난 28경기에서 기록한 OPS가 0.954에 달한다.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9번 타자’로 통할 정도다. 이에 나 위원은 “시범경기 때부터 마음고생이 있었을 텐데 그 실타래를 잘 풀어냈다”면서 “경기력에 대한 욕심이 워낙 많은 선수다. 지금 이 시점을 잘 이겨내고 자신의 것을 만들어내면 향후 10년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칭찬했다.

KIA 간판타자 나성범이 1군 복귀를 앞뒀다(사진=KIA)
KIA 간판타자 나성범이 1군 복귀를 앞뒀다(사진=KIA)

KIA 타선은 심지어 더 강해질 전망이다. 팀의 주장이자 주전 외야수 나성범의 복귀가 임박한 것. 나성범은 올 시즌 시범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력에서 낙마한 까닭에 개막 후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놀라운 건 나성범의 부재 가운데서도 최정상급 타격을 선보인 KIA 타선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성범까지 1군에 가세해 ‘완전체’를 이루기 직전이다. 최근 재활을 마친 나성범은 27일 퓨처스팀(2군) 경기가 열린 함평에서 상무 피닉스 야구단 상대로 실전 경기를 소화한 바 있다. 이때 나성범은 3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KIA는 차주 홈 광주에서 예정된 KT 위즈와의 주중 3연전에 맞춰 나성범을 1군으로 콜업할 예정이다.

같은 날 잠실에서 취재진과 만난 이범호 감독은 나성범, 김도영이 함께 빚어낼 시너지를 기대하면서 “둘의 타순을 붙일 생각인데 2-3번에 배치할지, 혹은 3-4번에 놓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활화산’ 같이 더 타오를 KIA 타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재편된 호랑이 군단의 방망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고참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나성범의 복귀는 단순 기량 플러스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최형우, 고종욱, 김선빈 등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나 위원도 이를 주목하며 “시즌 중 어린 선수들만으론 힘에 부칠 순간이 분명히 온다. 그때 베테랑들의 존재 하나하나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게 잘 이뤄진다면 2017년 KIA만큼의 강인한 모습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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