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대전]
“코치 생활하면서 감독님이 중간에 나가신 게 두 번째인데, 최원호 감독님은 40년 친구이기도 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시즌 중 감독이 바뀌는 상황은 한화 이글스엔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겐 낯선 일이기도 하다. 모시던 감독이자 친구를 떠나보낸 정경배 감독대행은 퉁퉁 부은 두 눈으로 취재진 앞에 나타나 눈길 둘 곳을 찾지 못했다. 팀이 한창 상승세인 가운데 이뤄진 뜻밖의 감독 경질 상황에 코칭스태프도 선수단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화는 2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감독 대행 체제 첫 경기를 치른다. 한화는 전날 최원호 감독과 박찬혁 대표이사의 자진 사퇴 소식을 발표했다. 시즌 초반 단독 선두를 달리다 승률 0.420에 8위까지 성적이 추락하면서 이뤄진 변화다. 정경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이날부터 새 감독 선임 전까지 선수단을 이끈다.
이제는 ‘전 감독’이 된 최원호 감독은 이날 오후 2시경 대전 경기장을 찾아 선수단, 코치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최 대행은 코치진과 선수단에 사과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 남은 시즌 선전을 당부한 뒤 경기장을 떠났다. 이후 경기전 한화 선수단의 훈련은 평소보다 침울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주장 채은성과 최고참 류현진 중심으로 선수단을 모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포착됐다.
사령탑 바턴을 물려받은 정경배 대행은 취재진과 만나 “최 감독님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 외에는 딱히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하고, 좀 더 도움을 드렸어야 했다. 코치 생활 15년 동안 중간에 감독님이 나가신 게 처음인 데, 40년 친구이기도 해서 많이 울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 대행은 감독 경질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정 대행은 “오히려 조금 더 안 좋은 상황에선 감독님도 예상을 하고 계셨다. 계속 그런 말을 하면서 ‘힘들다’고 했었다”면서 “최근엔 팀이 상승세로 올라왔고, 코칭 스태프나 선수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대행을 맡는 동안 정 대행은 기존 최원호 감독 체제의 기조를 유지할 생각이다. 그는 “감독님이 만들어 놓은 그런 기조에서 뭔가 확 바꿀 건 없다”면서 “밖에서는 모르겠지만 감독님이 안에서는 잘 만들어 놓으셨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잘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선발 라인업도 김태연(지)-요나단 페라자(좌)-노시환(3)-안치홍(1)-채은성(우)-이도윤(유)-최재훈(포)-황영묵(2)-장진혁(중) 순으로 최근 경기에서 선보인 라인업과 큰 차이 없다. 펠릭스 페냐가 나간 엔트리에 박상원이 등록한 정도가 변화다.
코칭스태프도 당분간 계속 유지한다. 수석코치는 따로 두지 않을 예정이다. 정 대행은 “갑작스러운 상황이다. 수석코치를 따로 임명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각 파트 코치들과 상의하면서 하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코치의 대행 역할은 차기 감독이 선임되기 전까지다. 한화는 늦어도 6월 안에는 새 감독 선임을 완료할 계획이다. 정 대행도 “새로운 감독님이 오시기 전까지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고 팀을 잘 끌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행은 베테랑 선수들을 향한 당부를 전했다. 그는 “류현진, 채은성 등 고참 선수가 많다. 고참들이 코치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만큼,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만난 주장 채은성도 “결국은 선수들이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것을 열심히 준비해서 이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감독님의 부탁이기도 했다”면서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남은 시즌이 많다. 먼저 나가신 감독이나 사장님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더 하고 목표했던 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