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 재키 로빈슨(사진=MLB.com)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 재키 로빈슨(사진=MLB.com)

 

[스포츠춘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이른바 '다양성 지우기' 움직임이 미국 야구의 전설이자 민권 운동의 상징인 재키 로빈슨까지 겨냥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급히 후퇴했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지난 19일(한국시간) 자사 웹사이트에서 야구 아이콘 재키 로빈슨의 미 육군 복무 시절을 다룬 기사를 삭제했다가 하루 만에 복구했다. 이 기사는 '스포츠 영웅들의 군 복무: 위대한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은 제2차 세계대전 군인이었다'는 제목으로, 2021년 작성됐다.

문제의 기사 링크는 "dei"가 포함된 URL에 접속했을 때 404 오류 페이지가 표시됐으나, 19일 오후 "dei" 문구가 삭제되고 원래 기사가 복구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연방 정부 기관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을 모두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후 진행된 정부 웹사이트 콘텐츠 삭제 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

존 울리엇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말했듯이 국방부에서 DEI는 종료됐다"며 "차별적 형평성 이념은 워크(Woke) 문화 마르크스주의의 한 형태로, 우리 군대에 설 자리가 없다"고 강변했다. 이어 "모든 플랫폼에서 DEI 콘텐츠를 제거하라는 지시에 신속하게 따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삭제됐던 기사는 재키 로빈슨의 군 복무와 야구 기여, 그리고 그가 두 분야에서 경험한 인종차별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1947년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가 되기 전, 로빈슨은 1942년 징집되어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의 분리된 기병 부대에 배치됐고, 1943년 소위로 임관했다.

기사는 또한 1944년 로빈슨이 육군 버스에서 "유색인이 있어야 할 버스 뒤로 가라"는 지시를 거부한 사건도 언급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군사재판에 회부됐으나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 켄터키주 캠프 브레켄리지로 전출된 후 1944년 11월 명예 제대했다.

캔자스시티 니그로리그 야구박물관의 밥 켄드릭 관장은 "우리는 로빈슨의 유산이나 그와 관련된 콘텐츠를 'DEI'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미국 역사다. 로빈슨은 내 관점에서 미국인의 의미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정책은 분명히 경악스럽다. 니그로리그 야구박물관 같은 기관의 가치가 그만큼 더 중요해진다"고 비판했다.

재키와 레이첼 로빈슨의 아들인 데이비드 로빈슨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웹페이지가 삭제됐다는 소식에 놀랐다"며 "우리는 군인이자 스포츠 영웅으로서 아버지의 국가 봉사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국방부가 DEI 퍼지 과정에서 흑인 명예훈장 수상자인 찰스 캘빈 로저스 육군 소장을 기리는 웹페이지와 일본계 미국인 군인들의 기여를 다룬 인터넷 페이지도 삭제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연방 정부 기관의 DEI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등 취임 50일 동안 총 15개의 DEI 관련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또한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합참의장인 찰스 브라운 장군을 경질하고, 미국 최초 여성 해군참모총장인 리사 프란체티 제독을 포함한 군 수뇌 다섯 명의 교체도 지시했다.

이처럼 정부 웹사이트에서 여성과 소수 인종 그룹의 역사적 기여를 조명하는 콘텐츠를 삭제하는 움직임은 미국 내에서도 "역사 지우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알링턴 국립묘지에서도 흑인, 히스패닉, 여성 참전용사를 소개하는 페이지로 연결되는 내부 링크가 삭제되는 등 DEI 삭제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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