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영국 축구 방송의 살아있는 전설' 게리 리네커(64)가 SNS 게시물 논란으로 26년간 지켜온 BBC 스튜디오에서 전격 하차한다.
BBC는 5월 20일(한국시간) "리네커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모든 프로그램 진행에서 물러나기로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리네커는 오는 26일 2024-25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을 다루는 '매치 오브 더 데이' 진행을 마지막으로 BBC와 작별하게 된다.
BBC 측은 "리네커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며 "따라서 우리는 그가 이번 시즌 이후 더 이상 진행을 맡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팀 데이비 BBC 사장은 "리네커는 20년 넘게 BBC 축구 중계의 상징적인 목소리였다. 그의 열정과 지식은 영국 스포츠 저널리즘을 형성했고 영국 안팎의 축구 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며 "그의 기여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는 리네커가 지난 14일 인스타그램에 '팔레스타인 로비'라는 단체의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문제가 된 게시물은 "시오니즘을 2분 안에 설명한다"는 제목의 영상으로, 쥐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쥐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하할 때 사용한 상징으로, 반유대주의적 모욕으로 간주된다.
리네커는 게시물 공유 직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영국 내 유대계 단체들의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영국 반유대주의 캠페인(CAA)은 성명을 통해 "리네커의 BBC 내 위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그의 해고를 요구하는 청원을 시작해 7,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리네커는 사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의도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인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믿는 모든 가치에 위배된다"며 "가자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상황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방식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실수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거리낌 없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리네커는 올해 11월 발표했던 계획과 달리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중계에도 참여하지 않게 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리네커에게 40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의미 있는 작별 무대가 될 예정이었다.
BBC와 리네커의 관계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갈등을 겪었다. 2023년 3월에는 당시 영국 보수당 정부의 난민 정책을 "1930년대 나치 독일의 언어"와 비슷하다고 비판해 일시적으로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에 대한 항의로 다른 축구 해설진들이 방송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매치 오브 더 데이'가 해설 없이 방송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리네커의 정치적 견해 표출이 BBC의 정치 중립 원칙과 충돌하면서 결별은 불가피한 수순이었다"고 분석했다. BBC는 영국 국민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으로, 모든 직원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엄격한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리네커는 2023-24년 135만 파운드(약 24억원)를 받는 BBC 최고 연봉자였다. 15년 동안의 선수 경력을 마친 후 1999년부터 영국 최장수 축구 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의 진행을 맡아왔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는 월드컵과 유로 등 주요 국제대회 중계의 간판 진행자로 활약했다.
필립 버킹엄 디 애슬레틱 기자는 "리네커의 퇴장은 영국의 문화 전쟁 속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결말"이라며 "뛰어난 방송인으로서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작별"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리네커는 자신이 공동 설립한 제작사 '골행어'를 통해 팟캐스트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있다. '골행어'는 미국 외 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 팟캐스트 제작사로 성장해 2024년에만 4억 회의 청취 기록을 달성했다. BBC 문화미디어 편집장 케이티 라잘은 "리네커가 미래에 다른 방송사를 통해 월드컵 해설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