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사진=넷플릭스)

 

[스포츠춘추]

넷플릭스에서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를 보는 날이 온다. 드라마와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명사인 넷플릭스가 이제 야구 중계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소식이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중계권 이슈 전문기자 앤드류 머천드는 15일(한국시간)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넷플릭스, 애플, NBC 등과 새로운 방송권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넷플릭스가 홈런 더비 중계권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넷플릭스의 야구 중계 진출이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예견된 수순이었다. 넷플릭스는 최근 '빅 이벤트' 중계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엔 마이크 타이슨과 유튜버 제이크 폴의 복싱 경기를 중계해 화제가 됐고, 올해는 NFL 크리스마스 게임 중계권도 따냈다.

짧고 임팩트 있는 이벤트 성격이 강한 홈런 더비는 이런 전략에 딱 들어맞는다. 머천드 기자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내년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중계권도 함께 노리고 있다. 만약 성사된다면, 한국야구 대표팀의 활약을 안방에서 OTT 서비스를 통해 볼 수도 있을 전망이다.

애플 티비 플러스의 금요일 경기 중계방송 '프라이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애플 티비 플러스의 금요일 경기 중계방송 '프라이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이번 협상의 배경에는 ESPN과 MLB의 돌연한 결별이 있다. 지난 2월 두 회사는 2028년까지 유효했던 방송권 계약을 '상호 합의'로 해지했다. 평균 연간 5억5000만 달러(약 7590억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중도에 끝낸 것이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당시 ESPN을 "쪼그라드는 플랫폼"이라고 혹평했다. 계약금은 많이 받으면서 정작 MLB 중계나 관련 보도는 소홀히 한다는 불만이었다. ESPN이 포기한 방송권에는 홈런 더비 외에도 30년 넘게 ESPN의 간판이었던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 연간 8~12경기의 1라운드 플레이오프 중계권이 포함됐다.

그런데 4개월 뒤인 6월, 두 회사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완전한 결별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제 이 권리들을 두고 각 플랫폼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넷플릭스가 홈런 더비를 노린다면, 더 큰 판은 따로 있다. 바로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이다. NBC/피콕과 애플 티비 플러스가 이 프로그램과 1라운드 플레이오프 경기 중계권을 놓고 최종 경합을 벌이고 있다.

NBC는 지난 5월 '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중계권 인수에 처음 제안서를 냈고, 애플이 나중에 경쟁자로 부상했다. 애플은 이미 미국 시간 금요일 2경기 중계에 연간 8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프라이데이 나이트 베이스볼(한국 방영명은 '불금엔 야구')'이란 타이틀로 방영 중이다. 여기에 일요일 중계권까지 가져간다면 MLB에서 애플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MLB는 '선데이 나이트 베이스볼'과 플레이오프를 따로 분리해서 판매할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더 많은 플랫폼에 더 많은 콘텐츠를 팔기 위한 전략이다.

한편 ESPN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다. 일요일 경기 위주로 중계하던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주중 경기 중계권과 더 많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권을 새로 확보하려 하고 있다. 특히 ESPN이 관심을 보이는 건 MLB.TV 서비스 운영권이다. 현재 MLB가 직접 운영하는 이 서비스는 연간 149.99달러에 홈팀을 제외한 모든 팀 경기를 볼 수 있게 해준다. 

ESPN은 지난주 월 29.99달러(약 4만1300원)짜리 독립 스트리밍 서비스를 8월 21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서비스는 ESPN의 모든 채널과 콘텐츠를 하나로 묶은 '올인원' 패키지다. 만약 ESPN이 MLB.TV 운영권까지 확보한다면, 앞으로는 MLB 앱이 아닌 ESPN 앱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봐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ESPN 회장 지미 피타로는 "ESPN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팬들에게 직접, 한 곳에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MLB.TV 운영권은 이런 전략에 핵심적인 퍼즐 조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계약은 3년 단위로 맺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MLB의 목표는 2029년 시즌에 월드시리즈와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모든 중계권을 동시에 입찰에 부치는 것이다. 2028년 이후 FOX와 TNT 스포츠와의 계약도 끝나기 때문이다.

MLB는 조각조각 중계권을 나눠파는 전략으로 현재 ESPN으로부터 받을 예정이었던 내년 5억7000만 달러와 맞먹는 수익을 올리려 하고 있다. 넷플릭스, 애플, NBC 등이 각각 일정 부분씩 가져가면서 ESPN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ESPN과 MLB의 파트너십(사진=ESPN)
ESPN과 MLB의 파트너십(사진=ESPN)

하지만 이런 전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팬들 입장에선 야구 한 경기를 보기 위해 이 플랫폼 저 플랫폼을 옮겨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홈런 더비는 넷플릭스, 금요일 경기는 애플, 일요일 경기는 NBC, 평일 경기는 ESPN에서 봐야 한다면?

각 서비스의 월 구독료만 따져봐도 만만치 않다. ESPN 스트리밍 서비스가 월 29.99달러, 애플 TV+ 기본 서비스가 월 9.99달러, NBC 피콕이 월 7.99달러, 넷플릭스 스탠다드가 월 15.49달러다. 모두 구독한다면 월 60달러(약 83,810원)가 넘는다. 미국 가정용 케이블 TV 요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MLB가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중계권을 조각내면서, 정작 팬들은 야구 보는 비용 부담만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스트리밍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팬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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