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한국 여자배구가 4년 만에 일본을 꺾었지만, 환호 대신 비판이 쏟아졌다. 과거라면 '한일전 승리'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열광했을 국민들이 이제는 승리의 과정을 묻고 있다.
페르난도 모랄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16일 경남 진주체육관에서 열린 2025 코리아인비테이셔널 진주 국제여자배구대회 4차전에서 일본을 3-2(25-18 19-25 20-25 25-21 15-12)로 이겼다. 2021년 7월 31일 2020 도쿄올림픽 예선 4차전 이후 약 4년 만의 한일전 승리였다. 한국은 올해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0-3 패배를 포함해 일본에 4연패를 당하다가 오랜만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날의 승리는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웨덴에 연달아 패한 한국이 간신히 올린 첫 승의 상대가 주포 이사카와 마유와 미들블로커 시마무라 하루요를 빼고 온 일본의 1.5군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홈에서 벌어진 편파판정 의혹까지 겹치면서 승리의 의미는 크게 퇴색됐다. 세계랭킹 39위인 한국이 일본의 2~3군 선수들을 상대로도 고전하며, 그마저 홈 어드밴티지에 의존해야 했다는 점에서 한국 배구의 뼈아픈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은 문지윤(18점·흥국생명)과 강소휘(14점·한국도로공사)가 32점을 합작했지만, 일본의 후오타 아이(22점), 오사나이 미와코(21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경기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부끄러운 승리"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특히 승부가 갈린 5세트에서 한국에게 유리한 판정들이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네티즌은 "명백하게 아웃된 공임에도 한국에 유리하게 '인'으로 선언됐고, 일본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5세트에서 오버넷, 넷터치, 터치아웃, 라인 판정 등 4개의 심판 판정이 모두 한국에게 유리했다"며 "리플레이조차 보여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계방송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편파판정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리플레이 영상을 노골적으로 안 틀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식의 승리라면 지는 게 낫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차라리 못해서 지는 게 낫다"며 "아직도, 여전히 일본과는 너무도 수준차가 크다"고 탄식했다. 또 다른 팬은 "배구팬인데 배구가 싫어진다"고 토로했다.
"시대가 변했다. 2025년에 이런 식으로 이겼다고 좋아할 팬이 어디 있겠나"라는 댓글은 달라진 국민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일본에게 미안하다. 일본이 이겼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영어 댓글까지 등장했다.

한일전 승리를 알리는 하이라이트 영상 댓글란도 비판이 일색이었다. 보통 한국이 승리한 경기에는 칭찬과 응원 댓글이 주를 이루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네티즌은 "한국인들에게 더욱더 패배감을 안겨줬다"며 이번 승리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대회 운영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제 대회인데 비디오 판정도 없고 한국 경기인데 한국인 심판"이라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나름 초청경기인데 이러면 나중에 누가 오나"라며 향후 국제 대회 개최에 대한 우려도 표출됐다. "배구협회장 사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제기됐다.
특히 한 네티즌은 "우리나라 1군이 일본 2~3군보다 못해서 질 수도 있는 건데, (나중에) 일본 원정가면 어쩌려고"라며 근본적인 실력 부족과 함께 지나친 홈콜에 대한 부메랑 효과를 우려했다.
이번 경기는 한일 양국 여자배구가 150번째로 맞붙은 역사적인 경기였다. 한국은 상대 전적에서 56승 94패로 열세에 놓여 있어 더욱 간절했던 승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친 편파판정 논란으로 인해 기념비적 의미는 완전히 퇴색됐다.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팬들과 국민들이 보인 성숙한 의식이다. 무조건적인 승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과정과 공정성을 중시하고, 떳떳하지 못한 승리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에서 한국 스포츠 문화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은 17일 낮 12시 체코와 최종 5차전을 치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