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스포츠춘추]
'역경을 딛고 별에 닿는다.'
라틴어 'Per ardua ad astra'라는 이 글귀를 해석하자면 위와 같다. 영국 왕립공군(RAF)의 좌우명으로 잘 알려진 이 문구는 도전과 극복, 목표 달성을 상징하는 격언이다. 이 글귀를 왼팔에 새기고 묵묵히 공을 던져온 투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단 6년차에 첫 선발 등판의 기회를 잡았다.
그 주인공은 두산 베어스 투수 제환유(25)다. 제환유는 지난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 선발 등판해 5이닝 1실점의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데뷔 첫 선발 등판, 그것도 주말 홈경기와 강타자가 즐비한 KIA를 상대로 한 시험대였지만, 스스로를 증명해냈다.
1회초는 불안했다. 제구가 흔들리며 1사 후 박찬호에 볼넷, 김선빈에 중전 안타를 내줬다. 이어 최형우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맞아 첫 실점을 기록했고, 나성범과 위즈덤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러나 오선우를 내야 땅볼로 잡아내며 실점을 최소화했다.
이닝 도중 마운드를 찾은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의 격려도 힘이 됐다. 제환유는 경기 후 “감독님이 ‘쫄았니? 쫄지 마라. 네가 잘 던지니까 지금 마운드에 서 있는 거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 덕분에 ‘후회 없이 던지자’는 마음으로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달라졌다. 2회와 4회, 5회를 삼자범퇴로 틀어막으며 제구를 되찾았다. 3회에는 김선빈에게 우전 안타 하나만을 내줬을 뿐이었다. 주무기 커브 제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이날은 평균 145km 포심 패스트볼(45구)을 중심으로 과감히 밀어붙였다.
이 선발 기회를 잡기까지는 무려 5년이 넘게 걸렸다. 2020년 2차 2라운드 19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제환유는 입단 4년차인 2023년에야 첫 1군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순위가 이미 결정된 정규시즌 막바지 롯데전 구원 등판에서 2이닝 4실점, 혹독한 데뷔전을 치렀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마운드에 오른 건 올 시즌. 두 차례 1이닝씩 구원으로 던졌고, 그 사이 묵묵히 준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최민석이 휴식 차원에서 엔트리에서 빠지자, 두산은 꾸준히 선발 수업을 받아온 제환유를 대체 선발로 낙점했다. 리그 최상위권급 커브를 가진 점도 그 이유였다.
제환유는 “대체선발로 들어간다는 얘기를 지난 주말부터 들었다.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제대로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루하루 운동에 집중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함께 배터리를 이룬 포수 김기연에게도 공을 돌렸다. 그는 “(김)기연이 형 리드를 100% 따랐다. 변화구 컨트롤이 뜻대로 안 됐는데도 끝까지 이끌어준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만원 관중 앞에서 당당히 이름을 알린 제환유는 짜릿한 경험을 전했다. “만원 관중의 함성은 처음 들어봤다. 정말 짜릿했고, 그 함성을 더 자주 듣고 싶다”며 선발 기회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조 대행도 "제환유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최고의 피칭을 해줬다"고 박수를 보냈다.
팔에 새긴 문신처럼, ‘역경을 딛고 별에 닿겠다’는 각오가 현실로 드러난 이날 투구. 이제 제환유는 두산 마운드에서 진짜 ‘스타’가 될 준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