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의 외국인 9번타자 스티븐슨(사진=KT)
KT 위즈의 외국인 9번타자 스티븐슨(사진=KT)

 

[스포츠춘추=수원]

과거 NC 다이노스에서 공포의 8번타자로 군림했던 애런 알테어처럼, KT 위즈 앤드류 스티븐슨도 공포의 9번타자가 될 수 있을까. 

KT 스티븐슨은 이번 주 들어 계속 9번타자로 출전하고 있다. 지난주까지 KBO리그 데뷔 첫 9경기에 1번타자로 나서다 19일 SSG전부터 9번타순으로 '강등' 당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성향 탓에 초구, 2구에 아웃되는 상황이 잦다는 점, 아직 한국 투수들의 볼에 익숙하지 않아 공을 충분히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첫 9경기에서 타율 0.231, 출루율 0.268로 아쉬운 성적을 내면서 8계단이나 내려간 9번까지 타순을 이동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9번타순으로 내려간 뒤 스티븐슨의 타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9번타자로 첫 출전한 19일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로 만점 활약을 펼쳤다. 특히 4대 4 동점을 이룬 9회말 공격에서 안타를 친 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허경민의 끝내기 2루타 때 홈을 밟아 결승득점 주자가 됐다.

20일 경기에서는 문승원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터뜨렸다. 0대 2로 뒤진 3회말 공격에서 우측 담장을 넘겨 2대 2 동점을 만드는 한 방을 날렸다. 이 타석에서는 2구째에 한 차례 기습번트를 시도한 뒤 전력질주하는 모습으로 투수 문승원을 당황하게 만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21일 SSG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이강철 감독은 스티븐슨의 활약에 대해 "9번으로 간 뒤 조금 나아진 것 같다"면서 "그렇게라도 해서 좀 살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외국인 타자의 9번타순 배치는 흔치 않은 일이다. 2020년 NC 다이노스의 외국인 타자 애런 알테어가 시즌 초반 8번타순에 배치돼 맹활약한 사례 정도가 떠오른다. 알테어는 그해 8번타순에서 가장 많은 232타석에 나와 타율 0.325에 17홈런 52타점으로 중심타자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NC의 통합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타순이 대거 상위로 이동해 정규시즌 대부분을 5번타자로 출전했다.

스티븐슨도 9번타순에서 한국리그 적응기를 잘 통과한 뒤 상위타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감독은 "처음에는 8번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8번보다는 9번이 낫지 않나 해서 그렇게 배치했다"며 "발이 빠르니까 9번에서 치면서 상위타선으로 연결되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고 밝혔다. 타격보다는 애초에 수비와 주루 등을 기대하고 데려온 선수라는 점도 9번타순 배치가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 감독은 스티븐슨에 대해 "모든 플레이를 정말 열심히 하고 절실하게 하는 것 같다"며 "어제 기습번트는 나도 당황했다. 그런데 그만큼 절실하다고 할 수도 있고, 좋게 생각하면 상위타순에 연결해주고 싶었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 허슬플레이를 칭찬했다.

당분간 스티븐슨의 9번타순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리드오프는 공격적인 성향 탓에 기용하기 어렵고, 2번타순에는 김민혁이 있다. 그렇다고 중심타선에 적합한 거포 스타일도 아니어서 9번에 배치하면서 적응하는 모습을 지켜볼 계획이다. 이 감독은 "허경민이 좋아지고 있고, 김민혁도 기본적으로 쳐주고 있다. 9번에 있으면 타순의 연결이란 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배제성(사진=KT)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배제성(사진=KT)

KT는 이날 선발 라인업을 허경민(3루)-김민혁(우익)-이정훈(좌익)-강백호(지명타자)-김상수(2루)-황재균(1루)-장준원(유격)-조대현(포수)-스티븐슨(중견) 순으로 구성했다. 선발투수는 고영표가 출격한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이자 MVP 후보인 안현민은 이날 라인업에서 빠졌다. 안현민은 지난 주말 키움전에서 양쪽 종아리 근육뭉침으로 병원 검진을 받은 뒤 출전시간을 조절받고 있다. 이 감독은 "어제도 경기 후반에 빼줬다. 어제 그쪽으로 타구가 많이 갔는데 종아리 근육이 조금 올라오는 것 같다고 해서 뺐다"며 "오늘은 좀 뒤에 나가는 게 더 낫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안현민은 경기 후반 대타로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KT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전날 선발 배제성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윤준혁과 배제성이 말소되고 야수 안치영과 투수 원상현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배제성은 전날 경기에서 4.1이닝 동안 11피안타 5실점으로 정상적인 피칭을 하지 못했다. 특히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거의 던지지 못해 팔꿈치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감독은 "배제성의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다. 오늘 내려보냈으니 완전히 좋아질 때까지 준비하게 하려고 한다"며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던지다가 다시 다치면 안 되지 않나"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음 배제성의 선발등판 차례에는 다른 대체선발을 콜업하거나, 불펜데이로 경기를 치를 구상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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