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2026년 FIFA 월드컵 조추첨이 12월 5일 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하지만 조추첨 소식보다 트럼프와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볼썽사나운 '브로맨스'가 더 화제다.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인판티노, JD 밴스 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조추첨 개최를 발표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공동 개최로 열리는 2026년 월드컵은 48개국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로, 내년 6월 11일 멕시코시티에서 개막한다.
조추첨 개최지 선정 과정은 FIFA의 '트럼프 퍼스트' 정책을 여실히 보여줬다. 원래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가 압도적 1순위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조추첨의 전통도 있고, 화려한 쇼맨십으로 유명한 도시 아니던가.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FIFA는 올해 내내 라스베이거스와 구체적인 협상을 벌였다. 그랜드 가든 아레나 등과 세부 논의를 진행했고, 각 리조트는 12월 첫째 주 스위트룸을 미리 확보해두기까지 했다. 개최도시 관계자들과 스폰서들도 당연히 라스베이거스를 원했다.
그런데 갑자기 워싱턴? 디 애슬레틱은 "FIFA가 트럼프의 참여를 최대한 용이하게 만들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월드컵 개최 도시도 아닌 워싱턴이 선택된 이유다. 지난해 마이애미 클럽 월드컵 조추첨에선 영상 메시지로 참석을 대신했던 자신의 '주군'을 무대 중앙에 세우고 싶었던 인판티노의 욕심이다.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펼쳐진 인판티노의 트럼프를 향한 아부는 가관이었다. 인판티노는 월드컵 트로피를 트럼프에게 건네며 "이건 승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당신은 승자이니까 당연히 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내가 가져가도 되겠나?"라며 농담하자 크게 웃으며 화답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더 압권은 트럼프가 케네디센터를 "트럼프 케네디센터"로 부를 수 있다고 제안했을 때였다. 트럼프는 JF 케네디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인판티노는 주저 없이 "모든 것이 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시작될 것이다. 아니면 트럼프 케네디센터가 될지도 모르겠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FIFA가 그토록 내세우는 정치적 중립성은 어디로 갔을까? 트럼프가 워싱턴 DC를 "범죄가 득실거리는 쥐구멍"이라고 비난했을 때도 인판티노는 "오, 그렇습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럼프가 구두를 핥으라고 하면 바로 핥기라도 할 기세다. 참고로 워싱턴 DC의 범죄율은 2년 연속 감소했다.
트럼프는 조추첨 발표 도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푸틴이 (월드컵 결승에)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고 휴전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국제적 논란이 예상된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디 애슬레틱은 이를 두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브로맨스"라고 표현했다. 지난 7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클럽 월드컵 결승에서도 트럼프가 첼시에 우승 트로피를 전달하며 무대 중앙을 차지했다. 첼시 선수들이 아니라 트럼프가 우승자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이것도 인판티노가 만든 작품이다.
FIFA는 그동안 "정치와 축구는 섞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왔다. 하지만 트럼프 앞에서만큼은 이런 원칙이 신기하게 사라진다. 디 애슬레틱의 아담 크래프턴 기자는 "정치와 축구가 섞이지 않는다는 FIFA의 주장이 위선적으로 느껴진다"며 "트럼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구는 대부분 매각됐다"고 꼬집었다.
인판티노는 "코치와 방송인을 위한 워크숍도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도 "FIFA 관계자들이 주요 행사와 기자회견을 위해 머물 수 있을 것"이라며 화답했다. 조추첨 하루짜리 행사를 며칠간의 '트럼프 축제'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월드컵이 정치적 도구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