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한 번 1000만 관중 시대를 열며 그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뜨거운 응원 속, 야구장을 채우는 사람들은 선수와 팬뿐만이 아닙니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구단을 움직이고, 무대를 빛나게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들은 바로 야구단에서 일하는 여성 프런트들입니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인식되는 스포츠 산업 속에서 이들은 치열한 노력과 전문성으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프로야구단에서 일하는 여성 프런트를 만나, 그들의 일상과 열정, 그리고 야구에 대한 진심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스포츠춘추]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라는 말은 이제 진화했다. 오늘날의 야구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데이터로 움직이는 스포츠가 됐다.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선수의 감각을 증명하고, 팀의 전략을 구체화하는 핵심 도구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숫자 뒤에는, 그라운드는 아니지만 야구장 깊숙한 곳에서 묵묵히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지난해까지 R&D팀에 몸담았던 현 운영팀 소속 박주현 매니저(30)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가 처음 야구를 본 것은 2008년 5월 25일, 롯데와 SK의 경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야구와의 인연은 대학 시절 학업 슬럼프라는 개인적인 위기를 지나며 더욱 깊어졌다. “당시 거의 매일 야구장을 찾았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문득 ‘야구장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야구단에 들어온 계기를 회상한 박 매니저다.
한양대학교에서 유기나노공학을 전공한 그는, 야구에 대한 애정을 구체적인 진로로 연결하기 위해 스포츠산업학을 복수전공했다. 동시에 야구 콘텐츠 활동과 커뮤니티 경험을 통해 데이터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2020년 롯데 자이언츠 R&D팀에 입사하며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박 매니저는 R&D팀에서 트랙맨 시스템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불펜 투구의 구속과 회전수, 무브먼트 등 트래킹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칭스태프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각화 자료와 보고서 양식을 제작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보고서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한눈에 보이게’ 구성하는 것이다. 경기 중엔 길게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숫자도 이미지도 간결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며 자신을 철학을 강조했다.
박 매니저가 만든 분석 양식과 템플릿은 코칭스태프의 피드백을 반영해 발전해왔고, 외국인 선수가 요청하는 자료까지 커버할 만큼 정교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주루 능력 평가 지표처럼 선수의 기여도를 수치화하는 도구를 개발해, 프런트의 의사결정에도 실질적인 참고자료가 되기도 했다.

박 매니저는 자신이 만든 자료가 실제 팀의 전략 결정이나 선수 영입 판단 등에 활용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코치님들이 직접 활용해 주시거나, 프런트에서 참고자료로 삼는 걸 보면 ‘그래도 도움이 되고 있구나’ 싶다”며 미소지었다. 그는 데이터가 단순히 사무실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 프런트를 잇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는 결국 현장을 위한 것이고, 또 프런트의 의사결정을 돕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박 매니저는 "이미 정형화된 양식이 많기 때문에, 우리 팀 상황에 맞게 그걸 어떻게 적용하고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를 다루며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 순간으로, 선수의 가능성과 경향성이 수치로 보일 때를 꼽았다. “유망주든 1군이든 데이터를 계속 들여다보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 타구 속도, 회전수 같은 수치를 통해 이 선수가 어떤 강점을 가진 선수인지 알 수 있다”고 한 박 매니저는 영상 없이도 숫자만으로 선수의 특성과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고 했다.
현재는 운영팀으로 소속이 바뀌었지만, 그가 R&D팀에서 보낸 시간은 야구 데이터를 대하는 철학을 더욱 깊게 만들어줬다. 그는 야구를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은 숫자라는 언어로 야구를 말하는 사람이 됐다. 좋아하던 야구를 일로 삼고, 데이터를 통해 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박주현 매니저는 오늘도 조용히 숫자와 마주하며, 야구장이라는 가장 생생한 현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수치의 이면에는, 야구를 향한 진심과 선수들을 향한 응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