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부정배트 논란이 터졌다. 애런 분이라는 감독의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예상 가능한 일이긴 하다.
올 시즌에만 벌써 5번째 퇴장을 당한 분 감독은 7년간 양키스를 지휘하면서 총 41번 퇴장당한 기록을 갖고 있다. 심판과 코 끝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항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특히 그의 쇼맨십 가득한 퇴장 장면들은 각종 밈과 GIF로 제작되며 소셜미디어를 강타하기로 유명하다.
5일(한국시간) 휴스턴 다이킨 파크에서 벌어진 일은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뉴욕 양키스가 8대 4로 앞선 9회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테일러 트라멜이 2루타를 쳤다. 무사 2·3루로 휴스턴의 추격에 불이 붙으려는 순간, 바로 그때 분 감독이 덕아웃에서 나왔다.
"저 배트 좀 검사해봐요."
타이밍이 절묘했다. 트라멜이 펜스를 강타하는 안타를 친 직후였다. ESPN에 따르면 분 감독은 "이번 시리즈 내내 트라멜의 배트가 계속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더 일찍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트라멜은 이날 7회에도 같은 배트로 타석에 들어서 삼진을 당했는데, 그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에이드리언 존슨 주심은 트라멜의 배트를 압수해 다른 심판들과 검토했다. 뉴욕 리플레이 센터와의 긴 통화 끝에 배트는 결국 추가 검사를 위해 MLB 사무국으로 보내지게 됐다.
분 감독의 해명은 구체적이었다. "배트의 라벨 부분에 변색이 있었다"며 "자연스러운 변색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테일러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지만, 비디오를 보다가 발견했고 리그에 문의했더니 '불법 배트처럼 보인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트라멜은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배트를 깎는다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며 "내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 의심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트라멜은 작년 양키스에서 5경기를 뛴 경험이 있다. 분 감독은 한때 같은 팀에서 데리고 있던 선수에게 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트라멜은 "양키스에 있을 때 분 감독을 많이 존경했다. 솔직한 분이었다"면서도 "이런 상황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트라멜은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 팀에 온 이후로 그 배트를 계속 써왔다. 타격연습에도 쓰고 경기에도 쓴다"며 "그냥 광택 처리를 하지 않은 무광 배트다. 페인트가 벗겨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휴스턴 조 에스파다 감독도 "그 배트로 계속 쳤는데 왜 지금?"이라며 분 감독의 문제제기 타이밍에 의문을 표했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왜 하필 역전의 기회가 열리는 그 순간이었을까? 분 감독이 정말 시리즈 내내 의심했다면 더 일찍 문제를 제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결정적 순간까지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분 감독의 항의로 경기가 중단된 이후 양키스 마무리 투수 데이비드 베드나는 위기를 넘기고 승리를 완성했다.
양키스는 8대 4로 승리했고, 3경기 시리즈를 2승1패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경기 결과보다 더 큰 화제가 된 건 마지막에 불거진 트라멜의 배트 논란이었다. 과연 트라멜의 배트에 정말 문제가 있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오해였을까? 혹시 상대의 경기 흐름을 끊으려는 분 감독의 술책은 아니었을까. MLB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