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O 조원태 총재(사진=KOVO)
KOVO 조원태 총재(사진=KOVO)

 

[스포츠춘추]

한국배구연맹(KOVO)이 또다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13일 자정까지 국제배구연맹(FIVB) 승인을 받지 못하면 전면 취소하겠다고 공언했던 2025 여수·NH농협컵 남자부 대회를 몇 시간 만에 조건부 재개한다고 뒤집어버린 것이다. 대회 개막일 파행에 이어 취소, 그리고 다시 재개까지. KOVO의 갈팡질팡 행정은 이제 국제적 망신을 넘어 한국 배구 자체의 신뢰성마저 흔들고 있다.

KOVO는 14일 새벽 "FIVB로부터 남자부 대회를 조건에 맞춰 진행할 수 있음을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불과 몇 시간 전 "13일 자정까지 FIVB가 컵대회 개최와 관련된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으면서 결국 컵대회 개최 취소를 확정했다"던 입장을 180도 뒤집은 셈이다. 이미 첫 경기를 치른 뒤 취소를 결정했다가, 이제는 조건부 재개라니.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문제는 이번 사태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는 점이다. 배구 관계자들에 따르면 각 구단의 외국인 감독들과 팀 관계자들은 지난 6월부터 "대회 개최가 문제될 수 있다"며 수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KOVO는 "문제없다, 괜찮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FIVB가 공개한 2025년 캘린더에는 9월 12일부터 28일까지 세계선수권대회가 명시되어 있었다. 이 기간에는 국내리그를 포함해 어떤 다른 대회도 개최할 수 없다는 것이 FIVB의 원칙이다. KOVO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FIVB가 2025-2028시즌 캘린더를 공개한 것은 지난 2023년 12월이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KOVO는 무엇을 했는가. 불과 몇 달 전 V리그 개막전을 10월 18일에서 내년 3월 19일로 급작스럽게 변경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KOVO는 컵대회를 '이벤트성 대회'라고 포장하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상금과 스폰서, 중계방송까지 있는 대회가 단순한 친선경기라는 항변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그간 KOVO와 구단들은 컵대회 우승과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달성하면 '트레블'이라고 홍보해왔다. 이제 와서 친선대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초청팀으로 참가할 예정이던 태국 나콘라차시마는 FIVB 조건에 따라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이들은 바로 귀국하지 않고 국내 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른 뒤 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들이 한국과 한국배구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을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국제적 망신도 이런 국제적 망신이 없다.

한국배구연맹은 24일 오후 2시 여수시와 '2025 여수·KOVO컵 프로배구대회' 유치 협약을 체결했다(사진=KOVO)
한국배구연맹은 24일 오후 2시 여수시와 '2025 여수·KOVO컵 프로배구대회' 유치 협약을 체결했다(사진=KOVO)

가장 큰 피해는 팬들과 관련 기관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13일 두 번째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 했다. 제대로 된 안내도 받지 못해 혼란은 가중됐다. 먼 거리에서 내려온 팬들의 숙박비와 교통비, 시간은 모두 헛된 투자가 되고 말았다. 스케줄 전면 개편으로 참가팀들과 방송사도 큰 혼란에 빠졌다. 남은 경기를 무료 관람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KOVO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롯한 모든 SNS 댓글창이 막혀 있다. 팬들의 항의와 비판을 듣지 않겠다며 귀를 막은 것이다. 온라인 배구 커뮤니티는 KOVO에 대한 비판으로 들끓고 있다. "친선경기라고 빡빡 우기더니 결국 티켓 무료로 푸네", "태국팀한테 너무 미안하다", "여자부도 안하겠다고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거 아니냐", "환멸나서 배구 그만보고싶다", "너희는 컵대회 열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고 그걸 이행하면 됐어요" 등 팬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초유의 사태에도 조원태 KOVO 총재는 보이지 않는다. 공식 사과는커녕 입장문 하나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SNS 댓글을 막고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정도 사안이면 총재가 직접 나서서 공식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한 배구 관계자는 "그동안 KOVO는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KOVO가 진정 한국 배구의 발전을 원한다면, 이제라도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SNS 댓글창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자성과 함께 책임자에 대한 문책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프로'라는 이름만 붙인다고 다 프로가 아니다. 이번 컵대회를 둘러싼 KOVO의 행태는 지방 아마추어 체육단체 수준이었다. 국제 규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구단과 팬들의 경고도 무시하며, 사태가 터지면 SNS 댓글창부터 막는 모습 어디에서도 프로다운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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