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포드의 대표작 '더 내추럴'의 한 장면.
레드포드의 대표작 '더 내추럴'의 한 장면.

 

[스포츠춘추]

헐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감독인, 야구팬들에게는 영화 '더 내추럴'의 로이 홉스로 기억되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세상을 떠났다. 레드포드가 17일(한국시간) 유타주 선댄스의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레드포드는 '내일을 향해 쏴라', '대통령의 음모', '보통 사람들' 등으로 할리우드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지만, 스포츠팬들에게는 1984년 작품 '더 내추럴'의 로이 홉스로 더 강렬하게 기억된다. 번개 맞은 나무로 만든 배트 '원더보이'를 휘두르며 경기장 조명을 박살내는 장면은 스포츠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홍보 담당자 신디 버거는 성명을 통해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가 사랑했던 장소인 유타주 산속 선댄스의 자택에서, 그가 사랑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며 "그가 너무나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생활 보호를 원한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롭 피터슨 기자는 17일 "로버트 레드포드가 '더 내추럴'의 로이 홉스로 여전히 스포츠팬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라는 제목의 부고 기사에서 레드포드의 특별함을 분석했다. 피터슨에 따르면 레드포드가 다른 배우들과 달랐던 이유는 "실제로 선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터슨은 "야구 영화의 배우들은 선수의 움직임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로이 홉스 역의 레드포드는 실제 운동선수였고 열정적인 아웃도어맨이어서 정말로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레드포드는 야구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마크 베히텔 기자는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운 레드포드는 테드 윌리엄스를 영웅으로 삼던 왼손 강타자였다"며 "명예의 전당 투수 돈 드라이스데일의 고등학교 동기로, 드라이스데일은 한때 레드포드를 '꽤 괜찮은 야구선수'라고 불렀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한 콜로라도 대학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레드포드는 1984년 인터뷰에서 "야구 대신 술을 즐기다 퇴학당했다"며 "팀 스포츠에 흥미를 잃었다. 관심이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처음에는 규칙에 따라 경기하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경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환멸을 느꼈다"고 당시 심경을 회상했다.

그런 레드포드였기에 영화 '더 내추럴'에서 보여준 왼손 스윙도 자연스러웠다. 피터슨은 "레드포드의 부드러운 좌타 스윙은 정말 자연스럽다"며 "영화 속 다른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배리 레빈슨 감독이 '좋아 로이, 공의 껍질을 벗겨버려!'라는 신화 같은 대사를 현실로 만들 때 레드포드의 스윙이 믿음을 준다"고 분석했다.

레드포드의 대표작 '더 내추럴'의 한 장면.
레드포드의 대표작 '더 내추럴'의 한 장면.

'더 내추럴'은 원작 소설과 완전히 다른 결말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버나드 맬러머드의 원작에서 로이 홉스는 영웅이 아니었지만, 영화에서는 영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피터슨은 "로저 에버트를 비롯한 비판가들이 있었지만, '더 내추럴'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있다"고 변호했다.

피터슨은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로 "집 뒷마당이나 동네 공원에서 공을 던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것"이라며 "마지막 순간 역전골을 넣거나, 결승 터치다운을 기록하거나, 우승을 결정하는 홈런을 날리며 온 세상이 환호하는 그 순간을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피터슨은 특히 홉스가 1루를 돌며 등을 보이고, 9번 등번호가 화면 하단 중앙에 자리하며 그 위로 조명이 터지는 장면을 "스포츠 영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슬로모션 촬영과 울려퍼지는 호른 소리는 과장될 수 있고 맬러머드의 원작과는 분명히 배치되지만, 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베히텔 기자는 "레드포드는 지적이면서도 거칠고, 섬세하면서도 운동선수 같은 캐릭터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배우였다"며 "그 어떤 세대를 통틀어도 가장 위대하고 다재다능한 배우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레드포드는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감독으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0년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고, 1992년 플라이 낚시를 다룬 '흐르는 강물처럼', 2000년 맷 데이먼 주연의 골프 영화 '베가번스의 전설' 등을 연출했다. 특히 그가 설립한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독립 영화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스포츠팬들에게 레드포드는 여전히 로이 홉스다. 번개 맞은 나무로 만든 배트를 휘두르며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그 순간이 레드포드의 가장 빛나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피터슨이 말했듯이 레드포드는 우리가 평생 꿈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을 영화 속에서 펼쳐 보인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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