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은퇴한 선수들은 대개 살이 찐다. 턱밑에 살이 접히고, 배가 나오고, 뒤뚱거리며 제대로 뛰지도 못한다. 그러나 '레전드' 스즈키 이치로는 다르다. 여전히 현역 시절과 똑같은 77kg 체중을 유지한다. 그라운드를 뛰는 모습도 멀리서 보면 현역 때와 구별하기 어렵다. 달라진 건 하얗게 샌 머리와 더는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현역 복귀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몸을 관리하는 걸까.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브래드 레프턴 기자가 이치로를 직접 만나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말로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은퇴한 선수들은 대개 몸이 편한 길을 택한다. 코치, 감독, 방송 해설위원. 크게 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다. 이치로는 그런 자리를 마다했다. 대신 젊은 선수들 옆에서 함께 땀 흘리는 길을 택했다. 현장에서, 그들과 나란히. "지금 내가 하는 건 오락이 아니다. 진지하고 경쟁적인 일이다." 이치로의 말이다.
그래서 52세인 지금도 매일 특수 기계로 유연성과 가동 범위를 키운다. 현역 시절과 똑같은 루틴이다. 이치로는 레프턴 기자에게 "몸이 따라주는 한 계속할 생각"이라면서 "적어도 배가 나와서 유니폼이 안 어울릴 때까지는 계속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치로의 이 지독한 자기관리와 집념은 두 곳에서 빛을 발한다. 일본 여자 고교야구와 친정 시애틀 매리너스다.
일본 남자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100년 넘게 고시엔에서 열렸다. 하지만 5년 전부터 시작된 여자 대회는 아는 이가 적고 관중도 많지 않다. 이치로는 여기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남자 경기는 모든 게 풍족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이치로는 매년 친구들과 전직 프로 선수들로 팀을 꾸리고, 고교 시절처럼 투수가 되어 여자팀과 경기한다. 올해 8월 나고야 경기에서는 최고의 경기력을 펼쳤다. 7.2이닝 무안타, 14탈삼진, 무사사구. 111개 공을 던졌고 시속 135km를 찍었다. NPB 주니치 드래곤스의 홈구장에서 열린 이 경기는 2만1233명이 지켜봤다. 여자 고교 경기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다.
유격수에 마쓰이 가즈오, 좌익수에 마쓰자카 다이스케, 중견수에 마쓰이 히데키가 섰다.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이다. 세 명은 가끔 절뚝거렸다. 이치로만 우아하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유일한 안타를 친 고3 모리 루카는 "대학에서도 야구를 계속하며 여자 야구가 관심을 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발 아베 사쿠라는 마쓰이 히데키를 삼진 처리한 순간을 평생 자랑으로 간직하게 됐다.
"소녀들은 내가 처음 야구에 끌렸던 이유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야구와 상대를 존중한다. 무엇보다 여자 선수들은 이 기회를 잘 살려서 매년 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나도 매년 피칭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얻어맞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음은 시애틀 구단에서의 역할. 원래 이치로는 은퇴 이후 '회장 특별보좌'라는 모호한 직함을 받았다. 이치로의 역할을 정의한 건 18세 소년이었다. 첫 메이저리그 캠프에 온 훌리오 로드리게스가 어느 날 캐치볼 파트너를 찾지 못했고, 과감하게 이치로에게 부탁했다. 10번이나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레전드와 공을 주고받을 기회였다.
이 만남은 중요한 배움의 기회가 됐다. 외야 송구 불안으로 고생하던 로드리게스는 캐치볼 훈련 중 이치로가 글러브에서 맨손으로 공을 옮기는 방식을 보고 조정을 이뤘다. "한 번 보는 게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낫다. 눈앞에서 보면 바로 깨닫는다. '이거구나' 싶은 거다. 보는 게 메시지를 훨씬 더 믿을 만하게 만든다." 이치로의 말이다.
투수 브라이언 우도 휴대폰으로 이치로의 롱토스 영상을 찍어 연구했다. "50대인 이치로가 그렇게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왜 20대인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신인 때부터 낮은 팔 각도로 던지던 우는 메커니즘을 바꿨다. 올해 올스타에 뽑혔고 시애틀 에이스로 떠올랐다. "이치로가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서 배웠다. 팔을 조금 올렸고, 덕분에 고질적인 부상에서 벗어났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치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내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다. 어떤 수준의 선수든 야구에서 계속 즐거움을 찾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치로는 현역 시절에도 누구보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야구를 사랑했던 선수였다. 은퇴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은 여전하다. 폼 나는 일, 편한 일이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함께 땀 흘리는 일을 택했다. 일본 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시애틀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레전드. 이치로는 지금도 현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