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사진=프로축구연맹)
홍명보 감독(사진=프로축구연맹)

 

[스포츠춘추]

대한축구협회가 칼을 빼들었다. 22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접수하며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고 밝혔다. SNS와 영상 플랫폼에서 축구대표팀과 협회 관련 허위사실이 악의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축구협회는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진실을 왜곡하고 명예훼손을 일삼는 활동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표팀 선수나 관계자가 하지 않은 발언, 국가대표팀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갈등 상황에 대한 허위 창작,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회장을 향한 의도적 인신공격이 허용 범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이다.

협회는 "'박항서 월드컵지원단장 새 대표팀 감독 취임', 'FIFA, 대한축구협회 징계' 등 허무맹랑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축구팬들의 우려 섞인 민원까지 다수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차질 없는 대표팀 지원과 축구팬들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사이버 레카'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는 내부 판단도 작용했다.

협회 관계자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무작위로 유포하며 여론을 선동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사이버 레카'들의 행태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 기능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대한축구협회의 발표문(사진=대한축구협회 인스타그램)
대한축구협회의 발표문(사진=대한축구협회 인스타그램)

악의적인 허위정보 유포에 대응하는 건 당연히 필요하다. 근거 없는 루머가 기정사실처럼 퍼지고, 선수와 관계자들이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이 인용되며, 존재하지 않는 갈등이 마치 사실인 양 확산되는 상황은 분명 문제다. 이런 악의적 허위정보는 선수들에게 고통을 주고 대표팀 분위기를 해치며 팬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실제 축구팬들은 강력대응 소식이 알려진 뒤에도 게시판과 기사 댓글에서 "훼손될 명예가 있냐" "너희만 나가면 다 해결되는데" "적반하장" "답 없는 집단"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반응엔 이유가 있다. 가짜뉴스가 이토록 힘을 얻는 건 그동안 협회와 회장이 보여온 불투명한 행정과 신뢰 상실 때문이다.

특혜 의혹이 제기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만 봐도 그렇다. 그 이전엔 위르겐 클린스만 참사가 있었다. 정몽규 회장 장기 집권 기간 불거진 온갖 논란과 의혹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온갖 의혹과 불만이 쌓이고 쌓여 팬들의 불신을 키웠다. 

만약 협회가 투명하게 일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며, 잘못이 있을 때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가짜뉴스가 나와도 팬들은 "협회가 그럴 리 없다"며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이들이 팬들의 비난을 받으며 설 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신뢰받는 조직에 대한 가짜뉴스는 힘을 얻지 못한다.

협회가 문제 삼는 '박항서 감독 취임설'이나 'FIFA 징계설' 같은 루머가 퍼지는 건 팬들이 현 체제에 대한 대안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물론 허위사실 유포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루머가 마치 진짜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어떤 면에서 협회가 자초한 것이다.

일부에선 이번 법적 대응이 회장과 감독을 향한 정당한 비판 여론까지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건전한 비판과 악의적인 허위정보 유포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협회가 그 경계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실제로 협회 한 고위 인사는 홍명보 선임 과정을 비판한 기자에게 "문해력?" "축구협회 설명문을 제대로 정독?"이라는 제목의 조롱성 메일을 보내 논란이 된 바 있다. 비판 기사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협회가 법적 조치의 기준을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적 대응으로 루머를 잡겠다는 발상보다, 루머가 설 자리를 없애는 게 먼저다. 투명한 의사결정, 납득 가능한 설명, 팬들과의 소통. 이런 기본이 갖춰져야 가짜뉴스는 자연스레 힘을 잃는다. 월드컵을 앞두고 협회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소송이 아니라 팬들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다. 악의적 허위정보에 단호히 대응하되, 그보다 먼저 협회 스스로 투명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가짜뉴스를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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