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게이트]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경기를 프레디 프리먼의 스윙 한 번이 끝냈다. 연장 18회말 선두 타자로 나선 프리먼은 토론토의 9번째 투수 브렌든 리틀의 싱커를 중견수 방향으로 퍼올렸다. 타구는 123미터를 날아가 담장을 넘었고, 6시간 39분에 걸친 혈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 18회 혈투 끝에 웃은 팀은 LA 다저스였다. 다저스는 28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2025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6대 5로 승리했다. 1차전을 내줬던 다저스는 2차전과 3차전을 잡고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서갔다.
18이닝, 6시간 39분으로 사실상 더블헤더나 다름없었던 이날 경기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은 프리먼이다. MLB닷컴에 따르면 프리먼은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끝내기 홈런을 두 번 이상 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프리먼은 지난해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연장 10회말 끝내기 역전 만루 홈런을 때린 바 있다. 프리먼은 경기 후 그라운드 인터뷰에서 "이번 경기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어도 정말 굉장했다. 우리 불펜진이 정말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에서는 수많은 기록이 탄생했다. 2018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18이닝 혈투를 벌여 월드시리즈 최장 이닝 기록을 남겼던 다저스는 7년 만에 상대를 바꿔 타이기록을 세웠다. 당시에는 맥스 먼시가 연장 18회 끝내기 홈런을 때렸고, 이번엔 프리먼이 팀을 구했다.
다저스 1번 지명 타자로 나선 쇼헤이 오타니는 4타수 4안타(홈런 2개, 2루타 2개) 3타점 3득점에 볼넷 5개로 9출루 경기를 펼쳤다. 볼넷 5개 중 4개는 고의 볼넷이었고, 나머지 하나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사실상 고의 볼넷과 다름없었다. 한 경기 9차례 출루는 포스트시즌 최다 신기록이며, 정규시즌을 포함하면 타이기록이다.
MLB 정규시즌 한 경기 9출루는 총 3번 있었고, 1942년 스탠 핵(시카고 컵스)이 18이닝 경기에서 5안타 4볼넷으로 달성한 게 마지막이었다. 오타니가 경기 중반까지 장타만 4방을 터트리며 최고의 타격 감을 뽐내자 토론토 벤치는 후반부터 아예 상대하지 않고 대놓고 거르면서 한 경기 9출루라는 기록이 탄생했다.
오타니는 7회까지 4개의 장타를 때려내며 119년 만의 기록을 세웠다. 1906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프랭크 이스벨이 세운 한 경기 4장타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다저스타디움에서 치른 최근 7타석 동안 오타니는 5개의 홈런과 2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 이날 오타니의 월드시리즈 한 경기 12루타는 다저스 월드시리즈 신기록이다.
바로 다음 날인 29일 4차전 선발 투수로 출격할 오타니는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이겼다는 것"이라며 "오늘 내가 이룬 것도 이 경기의 맥락 안에 있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건 페이지를 넘기고 다음 경기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웃으며 "가능한 한 빨리 자서 준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오타니는 이 경기 종료로부터 17시간 뒤에 데뷔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선발 등판한다.
다저스는 2회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선제 솔로포로 앞서갔다. 3회에는 오타니의 한 방이 터졌다. 오타니는 1볼 2스트라이크로 몰린 상황에서 맥스 셔저의 속구가 몸쪽으로 날아오자 그대로 방망이를 돌렸다. 타구는 오른쪽 펜스를 훌쩍 넘어갔고, 다저스는 2대 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토론토가 홈런 한 방으로 단숨에 경기를 뒤집었다. 4회 무사 1루에서 보 비셰트의 평범한 땅볼 때 토미 에드먼의 실책이 나오면서 무사 1, 3루가 됐다. 후속 타자 달튼 바쇼가 뜬공으로 물러났으나 알레한드로 커크가 다저스 선발 타일러 글래스노의 초구 커브를 공략, 좌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역전 3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토론토의 이번 포스트시즌 24번째 홈런.
기세가 올라간 토론토는 애디슨 바거와 어니 클레멘트의 연속 안타로 만든 1사 1, 3루에서 안드레스 히메네스의 희생플라이로 4대 2를 만들었다. 선발 글래스노가 일찍 무너진 다저스는 5회가 끝나기도 전에 불펜을 가동해야 했다.
하지만 다저스에는 오타니가 있었다. 오타니는 5회 1사 1루에서 좌익수 쪽 2루타로 1타점을 올린 뒤 이어진 프리먼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동점 득점을 책임졌다. 토론토가 7회초 비셰트의 적시타로 다시 리드를 잡자, 오타니는 왼쪽 담장으로 동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오타니의 이날 경기 2번째 홈런이자 포스트시즌 8호 홈런이다. 2020년 코리 시거가 세운 다저스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기록(8개)과 타이 기록이다.
토론토 벤치는 5대 5로 맞선 9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오타니가 타석에 등장하자 고의 볼넷으로 내보내 대결을 피했다. 오타니는 2루 도루를 시도했다가 커크의 송구에 아웃됐다. ESPN은 이것이 정규 이닝 동안 오타니의 유일한 실수였다고 평가했다. 경기는 그대로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연장에 들어서며 경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10회 초엔 다저스의 좋은 수비가 실점을 막았다. 토론토의 대주자 슈나이더가 네이선 루크스의 안타로 홈을 향해 달렸지만, 에르난데스에서 에드먼으로 이어진 중계 플레이에 몇 발자국 차이로 아웃됐다.
12회에는 명예의 전당 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등판했다. 이미 은퇴를 선언한 노장은 에밋 시한이 만들어놓고 내려간 만루 상황에서 루크스를 땅볼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커쇼지만, 이날 경기에선 중요한 순간에 등판해 팀을 구했다.
토론토는 연장 12회에 등판한 KBO리그 KIA 타이거즈 출신 에릭 라우어가 4.2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쳤으나 팀 패배로 웃지 못했다. 반면 다저스 투수 윌 클라인은 4이닝 무실점 역투로 승리를 챙겼다. 이날 경기에서 다저스는 10명의 투수를 기용했고, 토론토는 벤치를 모두 비웠다. 양 팀 모두 가진 자원을 총동원한 소모전이었다.
한편 다저스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승선한 김혜성은 장장 연장 18회 혈투가 펼쳐진 가운데서도 경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다저스 엔트리에 함께한 김혜성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상대 디비전시리즈 5차전 대주자 출전을 끝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4차전은 29일 오전 9시(한국시간) 같은 구장에서 열린다. 오타니가 다저스 선발로 나서고, 토론토는 전 사이영상 수상자 셰인 비버를 맞세운다. 다저스는 홈에서 두 경기를 더 이기면 1963년 이후 62년 만에 홈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다. 디 애슬레틱은 "이런 유형의 경기는 1승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며, 양 팀이 이 마라톤에서 어떻게 회복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