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게이트]
"손동현과 원상현의 역할이 중요하다."
KT 위즈 이강철 감독은 내년 시즌 불펜진의 키플레이어로 손동현과 원상현, 두 우완투수를 지목했다. 11월 7일부터 9일까지 타이완(대만) 타오위안시 정부가 주최하는 아시아 프로야구 교류전에 참가한 두 선수는 일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타이완 라쿠텐 몽키스를 상대로 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타오위안시의 초청으로 열린 이번 교류전은 한국, 타이완, 일본 3개국의 야구 문화를 교류하고 스포츠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본 와카야마에서 마무리 캠프 중이던 KT 선수단은 교류전을 위해 타이완으로 날아가 7일 라쿠텐 골든이글스, 9일 라쿠텐 몽키스와 각각 맞붙으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교류전을 마친 뒤 현지에서 취재진과 만난 손동현은 "일본 투수들의 실력이 좋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 던지는 걸 보며 배울 점도 있을 테고, 투수 입장에선 여러 유형의 타자를 상대하는 것도 공부가 될 거다"며 "그러면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다. 실제로 골든이글스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원상현도 "타이완도 처음 왔고, 일본 팀과도 경기한 적이 없다"며 "평소 일본프로야구를 좋아해 궁금했던 게 많다. 실제로 수준이 어떨지, 배울 점이 많을지 궁금했는데 결과를 떠나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점이 좋다"고 밝혔다.
이어 "힘을 역동적으로 쓰는 나와 달리, 일본 투수들은 시속 150km/h의 공도 몸을 부드럽게 써 던지더라"며 "골든이글스전에서 1이닝 무실점했는데, 감독님께서도 '한국에서도 제발 이렇게 던져 달라'고 하셨다"고 웃으며 말했다.

'포크볼의 마법사', 슬라이더까지 장착한다
손동현은 타이완 언론에서 '포크볼의 마법사'로 소개됐다. 올 시즌 포크볼 구사율이 40.4%로 포심(56.6%) 다음으로 높았고, 피안타율 0.207에 피장타율 0.293으로 가공할 위력을 자랑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손동현은 "우리 구단 관계자 분이 타이완에서 날 소개한 자료를 보내줘서 알게 됐다"며 "타이완 분들이 내 정보를 직접 찾아 쓰신 거라고 하더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손동현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타자들이 포크볼에 적응하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거라고 올 시즌 초반 예상했는데, 후반기 들어 적응한 모습도 보였다"고 진단했다. 일본 와카야마 마무리캠프에서 새 구종 장착에 공을 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치님이 '구종을 하나 더 만들자'고 하셨다. 슬라이더 같은 움직임의 공을 하나 더 만들면 내년에는 더 수월할 것 같다. 공이 갈라지는 궤적에 차이를 두면 훨씬 유리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손동현은 "당장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번 교류전 실전에서 연습한 구종을 많이 던지며 감각을 익히려고 했다"며 "골든이글스전에서 몇 개 정도 시도했는데, 손에 좀 더 익혀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부상의 교훈 "관리의 중요성 다시 느꼈다"
손동현은 2년 연속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엔 허리 부상으로 7월과 8월을 거의 날렸고, 올해도 6월 한 달을 통째로 날리다시피 했다. 그는 "학생 때부터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가 지난해부터 2년 연속 잘나가다 부상이 찾아왔다"며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이 역시도 경험 같다. 그동안 다친 적이 없으니 관리를 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충실히 하진 않았을 수 있다." 특히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시기에 다쳐 더 힘들었다고.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잘하고 있었으니까. 부모님께 말씀드릴 때도 행여 놀라실까 전화를 못 걸겠더라."
손동현은 이번 경험으로 몸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고 보강 운동 비중을 늘렸다. "하루는 LG 트윈스가 원정경기를 왔는데, 비가 와서 우리 쪽 실내 연습장에서 원정팀 선수들이 훈련했다. 그때 김진성 선배에게 먼저 인사했다. 보강 운동을 엄청 많이 하는 분으로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가 이번에 인사 드리니 '아프지만 않았다면 네가 톱클래스 불펜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거다. 투수는 365일 보강 운동을 달고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실제로 대단한 성적까지 내시니 느낀 게 정말 많았다. 김진성 선배는 물론, SSG 랜더스의 노경은 선배, 우리 팀의 우규민 선배 모두 대단한 분들이다."

"월드시리즈 야마모토 보며 느낀 것 많아"
올해 처음 불펜에 투입된 원상현은 손동현을 보며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캠프 때부터 동현이 형을 계속 믿고 따랐다. 난 첫 시작을 선발로 했다. 그땐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시즌 시작되고 나선 계속 붙어 있었다." 그러다 손동현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형이 다친 뒤로 나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형의 역할이 엄청 크지 않았나. 내가 아무리 잘해도 메울 수 있는 몫이 아니었다."
원상현은 그때 이강철 감독에게 듣은 말을 잊지 못한다. "감독님께서 '넌 이제 신인도, 어린이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동현이 형의 몫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때론 긴 이닝을 소화하며 형의 빈자리를 느끼기도 했다. 힘들 때면 형에게 전화해 '언제 복귀하냐'고 투정도 부리곤 했다."
불펜으로 전환한 뒤로는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원상현은 "얼마 전 월드시리즈를 보다 LA 다저스의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보며 입을 다물게 됐다"고 말했다. 야마모토는 월드시리즈 2차전 완투승, 6차전 6이닝 호투, 그리고 바로 다음날에도 구원으로 등판해 2.1이닝 무실점 호투로 팀에 우승을 안겼다. "그동안 내가 한 변명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는 걸 보며 느낀 게 많았다." 원상현의 말이다.
손동현도 옆에서 거들었다. "월드시리즈 다음날 와카야마에서 일본 사회인 팀과 연습경기가 있었다. 그날 상현이가 등판했는데, 가슴 속에 무언가 끓어 올랐는지 마운드 위에서 혼자 영화를 찍는 거다. 그때 점수가 10점 차였는데…." 이에 원상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오랜만에 던지는 거라, 끓어 오른 게 있긴 했다."

"필승조 역할 자랑스럽다…루틴 정립할 것"
이강철 감독이 직접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목한 두 선수인 만큼 책임감과 자부심도 적지 않을 터. 손동현은 "KT 투수진의 일원인 게 자랑스럽다. 자부심을 느낀다"며 "투수 입장에선 타이트한 상황에서 던지는 게 성취감의 측면에선 더 짜릿하다. 반대로 못 던졌을 때 감수할 몫도 크지만, 점수 차가 큰 것보다 집중력도 다르게 나타난다"고 답했다.
원상현은 "'이 형들과 내가 한 필승조에 묶이다니'라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다"며 "동현이 형, 박영현이 형 이름 앞에 내 이름이 써 있는 걸 보면 신기했고, 흥분됐다. 기분도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좋은 거에만 그치지 않고 형들의 루틴도 따라하며 많이 배우고 있다. 난 그동안 루틴을 꾸준히 하던 선수가 아니었다. 형들을 보며 느낀 게 정말 많았다. 확실한 나만의 루틴을 내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찾아서 정립하겠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아랑곳하지 않고 지키는 루틴을 말이다."
손동현도 거들었다. "고영표 형을 비롯한 선발투수들도 마찬가지고, 우규민 선배처럼 800경기 넘게 뛴 선배도 계신다. 우리 팀은 나 스스로 운동을 잘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원상현이 덧붙였다. "신인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 왜 이렇게 하지 못했지'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주변의 좋은 선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아서 잘 성장하고 싶다. 성장이 돼야 한다. 후회가 되면 안 된다."
마무리캠프부터 내년 시즌 초석을 쌓고 있는 두 선수의 다음 시즌 목표는 명확했다. 손동현은 "가을야구다. 매 시즌 하다 안 하니 '모두가 가을야구 하려고 스프링캠프부터 준비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무조건 가을야구 가고 싶다. 그리고 매년 똑같다. 안 아프고 싶다. 아프지 않으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고 강조했다.
"결과가 안 나오면 그만큼 준비가 덜 된 거라고 받아들이겠지만, 어쨌든 후회 없이 잘 준비하겠다." 손동현의 다짐이다.
원상현도 "나도 가을야구다. 난 가을야구 무대에 아직 오른 적이 없다"며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는 엔트리에 등록돼 있었지만, 공은 못 던졌다.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 정말 재미있더라. '나도 저기서 던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원상현은 "개인적으론 까불지 않고 겸손하게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마찬가지로 건강히 야구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