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드래프트 현장(사진=KBO)
2차 드래프트 현장(사진=KBO)

 

[더게이트]

19일 열린 2025 KBO 2차 드래프트는 '패스'의 향연이었다. 1라운드 패스, 2라운드 패스, 3라운드까지 올패스한 구단이 여럿이었다. NC 다이노스,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세 구단이 단 한 명도 지명하지 않았다.

예고된 사태였다. 지난 3월 KBO 이사회가 2차 드래프트 규정을 '개악'할 때부터 일찌감치 예견됐다. 구단들은 4년차 선수 중 군보류 이력이 있는 선수를 보호 명단과 별개로 자동 보호하기로 정했다. 한 야구인은 "각 팀마다 4년차 군보류로 자동 보호되는 선수가 5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지명 대상 선수 풀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패스가 속출할 거란 예상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2차 드래프트는 미국의 룰5 드래프트와 유사한 제도다. 기존 선수층에 막혀 1군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 새 출발을 하도록 돕는 게 원래 취지다. 선수 이동 활성화와 전력 평준화라는 명분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자기 팀 선수를 뺏기기 싫은 구단들이 보호 범위를 과도하게 넓히면서 제도는 변질됐다.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악성 FA를 처분하는 용도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KBO 로고(사진=KBO)
KBO 로고(사진=KBO)

72억짜리 '앓던 이' 뽑아 넘기기

이날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안치홍이 대표적이다. 안치홍은 2023년 한화와 최대 6년 72억원에 FA 계약을 맺었다가 올해 타율 0.172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한화로서는 '앓던 이'를 4억원에 키움에 넘긴 셈이다. 2012년부터 한화에서 활약한 이태양도 1라운드 2순위로 KIA에 지명됐다. 최근 3년 이내 FA 계약을 맺었다가 부진한 베테랑들의 이동이 눈에 띈다.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는 본래 취지는 실종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수도권 A구단 단장은 "몇몇 구단들이 보호 대상 확대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전 한 지방팀의 경우 막 군제대한 선수가 원소속팀 합류를 앞두고 2차 드래프트로 다른 팀에 건너갔다. 어렵게 키운 선수를 써보지도 못하고 뺏기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는 구단이 많았다."

서울 B구단 단장도 "여러 팀들이 강하게 요구해서 어쩔 수 없었다"면서 "한두 팀이 아니라 여러 구단들이 다수결로 하는데 어쩔 수 있나"라고 했다. A 구단 단장은 "선수 풀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취지가 좋은 제도인데 운영 과정에서 취지와 달라진 부분은 있다"고 인정했다.

구단 이기주의는 이미 한 차례 2차 드래프트를 죽였다 살린 바 있다. 2020년 일부 구단 주도로 2차 드래프트를 폐지하고 퓨처스리그 FA 제도를 도입했다. 몇몇 구단이 애써 키운 유망주를 뺏긴다며 앞장섰다. 막상 도입해보니 퓨처스 FA는 선수도 구단도 외면하는 실패작이었다. 비판이 쏟아지자 다시 2차 드래프트를 도입했지만 원래 취지와는 더욱 멀어졌다.

한 야구인은 "올해 KBO리그에선 샐러리캡이 무력화되고 2차 드래프트 제도도 무력화됐다"고 지적했다. "2차 드래프트로 기회를 기대했던 선수들은 제도 개악으로 길이 막혔다. 여러 팀이 올패스를 하지 않았나. 리그 발전을 생각한다면 우리 구단들이 이래서는 안 된다."

KBO 로고(사진=KBO)
KBO 로고(사진=KBO)

샐러리캡도 누더기로

샐러리캡 제도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지난 2020년 1월 '리그 전력 상향 평준화'를 명분으로 도입해 2023년부터 시행한 제도다. 외국인 선수와 신인 선수를 제외한 2021·2022년 각 구단 연봉 상위 40인 평균의 120%를 상한액으로 정했다. 초과 구단은 횟수에 따라 초과액의 50%, 100%, 150% 벌금을 냈다. 2차, 3차 위반 시에는 이듬해 신인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이라는 중징계도 따랐다.

막상 시행하고 보니 원성이 쏟아졌다. 샐러리캡을 만들자고 나섰던 구단들이 입장을 바꿔 폐지 혹은 조정을 외쳤다. 실행위원회에서 다수 구단이 수정을 요구했고, 논란 끝에 2024년 8월 KBO는 상한액을 20% 올려 137억원으로 인상하고 명칭도 '경쟁균형세'로 바꿨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올해 9월 KBO는 제도를 또다시 대폭 손질했다. 1회 초과 시 벌금을 초과분의 50%에서 30%로, 2회 연속 초과 시 100%에서 50%로 낮췄다. 2회 연속 초과 시 부과되던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 제재는 완전히 폐지했다. 7시즌 이상 재적한 프랜차이즈 선수 1명의 연봉 50%를 샐러리캡 계산에서 제외하는 예외선수 제도까지 신설했다.

샐러리캡 제도는 애초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사실상 무력화됐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이 KBO리그에서 현실이 됐다. 리그 전체의 발전이나 이익보단 내 구단의 손해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빚은 결과다.

KBO리그는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작년 1000만 관중에 이어 올해는 정규시즌 관중 12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일부 구단들의 행보는 리그 발전과는 반대로 향한다. 단기적 이익에만 몰두할 뿐 장기적 비전이나 리그 발전은 안중에 없다.

샐러리캡과 2차 드래프트는 모두 구단들이 제안하고 주도해서 만든 제도다. 그런데 막상 불리한 상황이 되자 뒤집거나 무력화시키고 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야구를 모르는 경영진이 와서 임기만 채우고 지나가니 야구계 중대사가 모기업 요구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면서 "이런 여건에선 장기적인 야구 발전을 논하기 어렵다"고 한탄했다.

구단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리그의 미래를 담보로 잡고 있다. 기회를 기대했던 선수들은 울고, 제도는 무력화되고, 신뢰는 무너진다. 구단들이 이런 식이면 리그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패스가 속출한 2차 드래프트가 남긴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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