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김라경이 전체 11순위로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사진=더게이트 황혜정 기자)
에이스 김라경이 전체 11순위로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사진=더게이트 황혜정 기자)

[더게이트]

여자야구 국가대표 1선발 김라경(25·서울대 졸)이 마침내 평생 꿈꿔온 ‘프로야구 선수’라는 이름을 손에 넣었다.

21일(한국시간) 열린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WPBL·Women's Pro Baseball League) 드래프트에서 전체 11순위로 뉴욕에 지명되며, 자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을 한순간에 되돌아보게 하는 벅찬 순간을 맞았다.

이날 김라경은 생중계를 직접 지켜보며 순번이 지나갈 때마다 손이 떨렸다고 했다. 이날 함께한 이들은 김라경이 오랫동안 재활을 버틸 수 있게 옆에서 지켜준 은사들이었다.

‘내 이름이 안 불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파고들던 찰나, “라경 킴”이라는 이름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그는 스승들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2022년 토미 존 수술 후 재활에만 3년 넘게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야구를 내려놓아야 하나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야구를 그만둘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전체 11번째로, 그리고 전세계 투수 중 네 번째로 제 이름을 불러줬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엔 못하겠어요.” 김라경은 천천히 말하며 긴 시간을 삼켰다.

뉴욕에 지명된 김라경.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사진=WPBL)
뉴욕에 지명된 김라경.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사진=WPBL)

지명 팀이 ‘뉴욕’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뉴욕 팀의 홍보 영상이 공개되던 시기, 어느새 김라경은 하루 종일 뉴욕 관련 음악만 듣고 있었다고 했다. “뉴욕~ 뉴욕~ 하는 그 유명한 노래 있잖아요. 그걸 정말 100번 넘게 들었어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계속 듣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정말로 뉴욕에서 이름이 불리자 김라경은 “말이 씨가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물가 비싼 곳이니까 많이 벌어야죠. 그게 걱정”이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수년간의 버팀과 싸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라경은 어린 시절부터 ‘프로야구 선수’라는 말 한마디로 꿈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였다. 여자야구에는 프로가 없고, 단지 좋아한다고 해서 직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수술 후 재활로 운동장에서 멀어졌을 땐, 김라경 스스로도 흔들렸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건가.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하지만 우연히 옛 인터뷰를 다시 본 날, 당차고 맑은 눈으로 “프로 선수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던 어린 자신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의 제가 참 고맙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고 버티게 해준 건 결국 그 아이였어요.”

가족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특히 전 한화 이글스 투수였던 친오빠 김병근은 누구보다 먼저 기쁨을 전했다. “오빠가 엄청 자랑스러워해요. 계약금은 본인에게 넘기라고 농담도 하고요.” 서로의 꿈을 지켜준 남매의 이야기는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김라경이 일본을 거쳐 이제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사진=더게이트 황혜정 기자)
김라경이 일본을 거쳐 이제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사진=더게이트 황혜정 기자)

2026년 출범하는 WPBL은 70년 만에 미국에서 부활하는 여성 프로야구 리그다. 이제 여자야구 선수들도 야구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김라경은 가장 오래, 가장 간절히 그 날을 기다린 선수 중 하나였다. 마음속에 품어온 성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처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뒤 결과를 겸허히 기다려온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드디어 답을 줬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당당히 ‘프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발표하게 됐다.

“평생의 꿈이었어요. 허황된 꿈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걸 스스로 믿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김라경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담겨 있는 감정은 뜨거웠다. “기록 많이 만들게요. 뉴욕에서도, 전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로 잘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누구도 보지 못하던 자리에서 묵묵히 공을 던져온 김라경은 이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선다. 더 이상 꿈이 허황되지 않는 시대, 스스로 그 문을 열어젖힌 한 선수의 여정은 지금부터 또 다른 장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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