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WBC 대표팀 부진을 바라본 야구 팬들의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박세웅(사진 왼쪽부터)과 원태인의 역투뿐이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2023 WBC 대표팀 부진을 바라본 야구 팬들의 마음을 그나마 달래준 건 박세웅(사진 왼쪽부터)과 원태인의 역투뿐이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스포츠춘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열기가 점점 달아오른다. 조별예선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더 뜨거워지는 축제 분위기지만, 한국 야구대표팀은 정작 웃을 수가 없다. 3대회 연속 조별예선 탈락이 유력해진 까닭이다. 매우 희박한 경우의 수를 언급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대회 조별예선 첫 경기 호주전 7대 8 패배 여파는 한일전 4대 13 패배 대참사로 이어졌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실패 요인이 있었지만, 가장 크게 보이는 건 대표팀 마운드 문제다. 경기 초·중반 리드를 잡았음에도 대표팀 구원진들이 한순간 연쇄적으로 무너진 점이 뼈아팠다. 

박세웅·원태인 덕분에 버틴 대표팀 마운드, 말하기 부끄러운 경우의 수도 이들의 역투로 가능했다

한국 대표팀은 박세웅의 역투 덕분에 체코전에서 대회 예선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사진=gettyimages)
한국 대표팀은 박세웅의 역투 덕분에 체코전에서 대회 예선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사진=gettyimages)

그나마 한국야구에 희망 한 줄기를 남긴 얼굴들은 있었다. 바로 원태인과 박세웅이다. 원태인은 호주전(1.1이닝 26구 무실점)과 한일전(2이닝 29구 1실점)에서 선발 투수의 뒤를 받쳐주는 ‘텐덤(선발 투수 뒤를 받쳐주는 두 번째 투수)’ 역할을 수행했다. 

박세웅도 한일전 콜드게임 패배라는 굴욕적인 위기 순간 구원 등판해 1.1이닝 11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인상적인 WBC 데뷔전을 치렀다. 조별예선 탈락 확정이 걸렸던 체코전에서 박세웅은 단 하루 휴식 뒤 선발 투수로 등판해 4.2이닝 59구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통한 대표팀의 7대 3 승리를 이끌었다. 

만약 원태인과 박세웅이 없었다면 한국은 더 굴욕적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전반적인 대표팀 투수들의 투구 컨디션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호주전과 한일전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투구 내용을 보여준 몇몇 투수의 부진이 치명타였다. 거기에 담 증세가 온 마무리 투수 고우석의 등판 불발로 계획했던 마운드 운영이 완전히 어그러졌다. 결국, 한국 벤치도 특정 투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 대표팀 관계자는 “애리조나 대표팀 베이스캠프에서 이상 기후와 비행기 결항 등 갑작스러운 변수 때문에 전반적인 투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원태인과 박세웅 선수는 현재 대표팀 마운드에서 컨디션이 꽤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바깥 변수 핑계 없이 더 철저하고 헌신적으로 준비, 원태인·박세우 도쿄돔 역투 이유 있었다

원태인이 호주전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있다(사진=gettyimages)
원태인이 호주전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있다(사진=gettyimages)

원태인과 박세웅이 첫 WBC 무대에서 태극마크 무게감을 견딘 건 헌신적인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태인은 비시즌인 1월 미국 마이애미로 넘어가 개인 훈련을 소화하고 다시 스프링캠프 직전 귀국해 2월 1일 시작하는 삼성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2월 중순 다시 미국 애리조나 대표팀 베이스캠프로 넘어간 뒤 한국과 일본을 다시 오가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 어떤 대표팀 선수들보다도 힘든 일정을 소화했지만, 원태인은 철저한 준비 아래 WBC 공인구 적응과 대회 일정에 맞춘 투구 컨디션 끌어올리기에 성공했다. 원태인은 ‘공인구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단 의지 아래 대회 직전까지 WBC 공인구에서 나오는 자신의 변화구 움직임에 대한 고심을 거듭해 투구 전략을 짰단 후문이다. 

삼성 팀 동료인 최충연은 WBC 대표팀으로 떠난 원태인과 관련한 질문에 “잠깐 팀 스프링캠프에서 함께 있었지만, (원)태인이가 대회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한 게 느껴졌다. 훈련 때 공 던지는 걸 보면 다르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빨리 몸을 끌어 올려야 하니까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대회를 잘 마무리하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박세웅도 마찬가지였다. 박세웅은 2월 초 소속팀의 괌 스프링캠프를 따라가지 않고 상동 2군에 남아 개인적으로 몸 상태를 더 빨리 끌어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소속팀보단 대표팀에 먼저 모든 걸 집중하고 싶단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동거리와 더불어 다른 곳에 쏟을 힘을 줄인 박세웅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중국전 선발 투수가 불펜 연투 뒤 이틀 쉰 원태인? 철저히 잘 준비한 투수가 더 무리한 책임감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

한일전 경기 후반 대패 분위기 속에서 충격에 빠진 한국 대표팀 벤치. 마운드 연쇄 붕괴는 한국야구의 현 주소를 적나라게 보여줬다(사진=gettyimages)
한일전 경기 후반 대패 분위기 속에서 충격에 빠진 한국 대표팀 벤치. 마운드 연쇄 붕괴는 한국야구의 현 주소를 적나라게 보여줬다(사진=gettyimages)

한국은 3월 13일 조별예선 최종전인 중국과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중국전에 앞서 열리는 호주와 체코의 경기에서 체코가 최소 4실점을 기록한 뒤 5득점 이상으로 호주를 이기는 경우의 수만이 한국 8강 진출 조건을 만들어준다. 이 희박한 경우의 수가 성립된다면 한국은 중국전 승리로 극적인 8강 진출을 노릴 수 있다. 

이 시나리오 또한 원태인이 일부분 적지 않은 책무를 떠안는다. 호주전과 한일전에서 이틀 연속 구원 등판한 원태인 이틀 휴식 뒤 중국전 선발 마운드에 오르는 고된 등판 일정을 소화한다. 결국, 대회 준비를 더 철저히 한 원태인에게 더 무리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WBC 마운드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여야 한다. 몸 상태와 투구 컨디션, 그리고 공인구에 대한 얘기도 모두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 누구보다도 더 철저하고 헌신적으로 준비한 원태인과 박세웅의 등판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비판과 비난, 질책과 반성을 말하기 전에 한국야구 미래를 짊어진 두 투수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대표팀 성적 부진에 두 투수의 헌신적인 준비와 노력이 가려지지 않길 바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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