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변화’를 예고했다. 한국야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레벨 업’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
KBO는 7월 20일 “대표팀 전력 향상, 경기제도 개선, 유망주 및 지도자 육성, 야구 저변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야구 강국으로 발전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 가운데, 이목을 끈 건 역시 ‘KBO리그 경기 제도 개선’ 방향성이다. 메이저리그(MLB)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에서 시행 중인 규정들을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 KBO리그에서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메이저리그(MLB) 규정 변화, 향후 국제대회 반영 가능성 높아

MLB는 올 시즌 수비 시프트 규제, 견제구 제한, 피치 클락, 베이스 크기 확대 등의 규정 변화를 선보였다. MLB 사무국은 지난 3월 새 규정을 발표하며 “선수는 더 많은 운동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무엇보다 ‘더 빠른 경기 진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일단, 수비 시프트가 사라졌다. 투수가 투구할 때 2루 베이스를 기준으로 양쪽엔 수비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 또한 내야수 4명은 내야를 벗어나 외야로 나갈 수 없다. 투수들의 주자 견제는 매 타석 2회로 제한된다.
홈 플레이트를 제외한 1, 2, 3루 베이스 크기도 변했다. 기존 15인치(약 38.1cm)에서 올해 18인치(45.7cm)로 확대된 것.
피치 클락은 말 그대로 타이머(Timer)다. 경기장엔 커다란 전자시계가 설치된다. 이를 통해 선수들의 시간을 제한한다. 공을 건네받은 투수는 주자가 없을 시 15초 이내, 주자가 있을 시 20초 이내 투구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주심은 해당 투구를 볼로 판정한다.
피치 클락은 타자의 시간도 제한한다. 한 타석이 끝나면 후속 타자는 타석에 30초 내로 들어서야 한다. 투수들이 투구 제한 시간을 받는 동안, 타자 역시 타격 준비를 마치고 8초 안으로 타석에 자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주심은 타자에게 자동 스트라이크를 부여한다.
3월 제5회 WBC에선 검증 및 시기상조 문제로 MLB의 이번 변화가 적용되진 않았지만, 3년 전 MLB에서 도입된 ‘투수의 최소 세 타자 의무 상대 규정’이 등장했다. MLB의 새 규정들은 2026년에 열릴 6회 WBC에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최소 세 타자 상대 의무 규정’ 두고 현장·여론 모두 엇갈린 시선

이에 맞춰 KBO 역시 국제대회 경쟁력 강화 및 더 흥미로운 야구를 선보이고자 KBO리그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
KBO가 20일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 피치 클락, 연장전 승부치기,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세 타자 의무 상대 규정을 골자로 하는 ‘KBO리그 경기 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까닭이다. 참고로 MLB에서 올 시즌 도입한 ‘견제구 제한’ 규정은 KBO의 이번 계획에서 언급되진 않았다.
스포츠춘추 취재에 응한 야구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특히, 대부분 야구의 ‘세계화’란 취지에 공감을 표했다.
한 야구계 관계자 A는 “팬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이번 WBC 결과로 많은 걸 느꼈다”며 “KBO가 MLB의 모든 변화를 곧장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경쟁력을 위해 ‘다양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KBO리그 2군 지도자 B는 “새 규정에 대한 적응 문제는 없을 듯싶다. 올 시즌만 해도 강화 12초 룰이 퓨처스리그에 등장하지 않았나. 어린 투수들이 혹시 혼선을 빚게 될까 걱정했는데, 다들 무리 없이 적응 중이다. 향후 도입될 규정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려를 표한 대목이 존재한다. 바로 ‘세 타자 의무 상대 규정’이다. 현장뿐만이 아니다. 팬들 여론 역시 해당 규정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스피드업은커녕 경기가 더 늘어질 여지가 있다. 이처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앞 관계자 A가 “가령, 1군 엔트리를 최소 3타자 상대 가능한 투수들로 가득 채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한 대목에서 그렇다.
A는 “당장은 그게 현실이다. 한국야구에 ‘수준 높은 선수가 부족해서 안 된다’는 지적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규정이 도입되면 장기적으론 수준 높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 않겠나. 기대 효과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겠지만, 양면성이 있을 듯싶다. 멀리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다”며 엇갈린 시선을 전했다.
KBO는 세 타자 의무 상대 규정을 내년 2024시즌 퓨처스리그에 도입한 뒤 이듬해 1군 무대에 등장시킬 계획이다. 이에 2군 지도자 C는 “다른 규정은 몰라도, 세 타자 의무 상대 경우엔 퓨처스리그 시범 운영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바라봤다.
“1·2군 선수단 운용엔 차이가 있다. 투수 등판만 해도 일정 부분 ‘결’이 다르다. 1군은 ‘이기기 위해’ 경기를 치른다. 2군 역시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거기에 ‘선수 육성’이 더해진다. 그만큼 목적이 다른데, 2군에서 쌓인 데이터가 1군에 과연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진 모르겠다.” C의 지적이다.
KBO리그가 그야말로 ‘대격변’을 앞뒀다. 국제대회 경쟁력 제고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건 팬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로운 야구를 선보일 수 있는지다.
앞서 KBO가 2월 8일 ‘더 빠르고 재미있게’란 슬로건을 발표한 이유도 이와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KBO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