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롯데 자이언츠는 최근 잇따른 선수 이탈에 차·포를 다 뗐다. 국가대표 차출부터 줄부상까지 먹구름 몰려오듯 겹친 것.
하지만, ‘가을’을 향한 포기는 없다. 롯데의 후반기가 여전히 치열한 까닭이다. 지난 주말 인천에서 열린 SSG 랜더스 상대 3연전 위닝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맹활약 중인 선수가 있다. 바로 5월 KT 위즈와의 일대일 트레이드(↔내야수 이호연)를 통해 고향 팀에 합류한 좌완 심재민이다.
‘그때 그 커브, 살아났다’ 평가에 끄덕인 심재민 “자신감 붙었다”

심재민은 1994년생으로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해 201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KT의 우선 지명을 받았다. 그 뒤 7시즌 동안 KT 유니폼을 입고 293경기(6선발)를 등판해 13승 20패 31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 5.03을 기록했다.
2017년엔 좌완 불펜 역할로 좋은 활약을 펼쳐 시즌 종료 뒤 태극마크를 달았다. 11월에 열린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야구대표팀에 합류한 것.
하지만, ‘국대 좌완’ 심재민은 군복무를 마치고 계속 부침에 허우적거렸다. 프로 내내 선발 전환도 줄곧 여의치 않았다. 지난 24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만난 심재민은 다음과 같은 얘길 들려줬다.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잘 살리지 못했다. 선발 전환 역시 체력적으로 부족함이 계속 생겼고, 변화구 구사 측면에서도 미흡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너무 없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 없이 공을 던졌던 시간이었다.”
그랬던 심재민이 새 보금자리에서 ‘히든카드’로 급부상 중이다. 롯데 합류 뒤 25경기(3선발) 동안 31.1이닝을 던져 2승 0패 5홀드 평균자책 2.59를 거둔 것. 특히, 선발로 등판한 9월 두 경기가 빛났다. 7일 삼성 라이온즈전, 13일 KIA 타이거즈전 얘기다.
심재민은 9월 선발 등판 두 차례에서 모두 5이닝 1실점 호투를 펼쳐 팀 승리를 도왔다. 이를 지켜본 한 야구계 관계자가 “심재민의 커브가 완전히 살아났다”며 “한창 좋았을 때의 느낌이 든다”고 귀띔할 정도.
이에 고갤 끄덕인 심재민은 “고교 때부터 커브를 던졌는데, 프로에선 시간이 흐르면서 구사 빈도가 점차 줄었다”며 “그간 불펜으로 주로 활약하면서 ‘구종이 많이 필요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커브 비중이 줄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심재민의 커브는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말 그대로 귀신처럼 나타난 뒤 귀신처럼 사라지기 때문. 상대 타자를 농락하듯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과감하게 들어가거나, 바깥쪽으로 기가 막히게 헛스윙을 끌어내기도 한다.
“등판을 거듭할수록 커브에 대한 자신감이 붙고 있다. 범타로 시작해서 삼진도 나오고 커브 활용 방향이 계속 커진다. 다만, 모든 구종이 그렇지만 커브 실투 하나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선발로 던질 때는 ‘보다 더 조심스럽게’ 마인드 컨트롤을 가져가는 이유다.”
심재민의 커브가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적응 완료’ 심재민, 거인군단 잔여 시즌 ‘히든카드’로 거듭날까

한편, 롯데 우완 에이스 박세웅이 지난 23일 SSG전 뒤 더그아웃 인터뷰에서 심재민의 이름을 언급한 바 있다. 참고로 이날 박세웅은 “비록 국가대표 출전으로 잠시 자릴 비우게 됐지만, (심)재민이 형과 (한)현희 형을 중심으로 선발진 공백을 잘 메꿔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심재민은 2년 후배인 박세웅(경북고 졸업)과 고교 재학 때부터 인연이 깊다. 같은 지역인 경상권 유망주로 맞붙을 기회가 유독 많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재민과 박세웅은 KT에서 2시즌 동안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부상으로 인한 유급 두 차례 여파에 프로 입단 당시 KT 창단 멤버로 함께한 것.
이를 두고 심재민은 “새 팀에서 적응을 빨리할 수 있던 건 (박)세웅이 도움이 컸다. 둘이 알고 지낸 지 참 오래됐다. 워낙 편한 사이라 때론 서로 장난도 짓궂게 치곤 한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심재민은 일전 박세웅의 인터뷰 내용을 기자가 전하자 “세웅이가 평소에도 항상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있다. 아무래도 선발로 경험이 많다 보니 특정 상황에 대한 노하우라든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롯데의 후반기는 분투의 연속이다. 그 와중에 박세웅, 나균안 등 선발진 기둥들이 이탈하게 됐다.
24일 SSG전을 앞두고, 롯데 이종운 감독대행은 “차주 28, 29일 사직 한화 이글스전에선 찰리 반즈와 애런 윌커슨이 나흘 휴식 일정으로 등판한다”며 “그 뒤 대체 선발 후보들은 아직 고민 중이다. 심재민 역시 고려 대상이다. 다만, 지금 정해두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선수가 들어가는 게 맞다”고 말을 아꼈다.
심재민은 9월 들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1.2이닝 동안 평균자책 1.54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 바 있다. 현시점 대체 선발 유력 후보로 손꼽히는 이유다.
“지금으로선 중압감보단 책임감을 더 의식하고 마운드에 오르고자 한다. 그만큼 중요한 시기다. 만일 선발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5이닝은 무조건 버티고 싶다. 하지만, 좀 더 나아가고 싶다. 팀이 필요한 건 이닝 소화 아닌가. 내가 퀄리티스타트(QS)까지 해야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심재민이 남은 시즌에 임하는 자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