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기쁨을 만끽하는 김현수(사진=LG)
우승 기쁨을 만끽하는 김현수(사진=LG)

 

[스포츠춘추]

1994년 LG 트윈스의 우승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사회 문화적 현상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선 그해 LG의 우승이 연세대 농구부 신드롬, 삼풍백화점 참사와 함께 주요한 사건으로 다뤄졌다. 드라마 속 LG 코치 역할로 나온 성동일은 1994년 우승 기념 우승주를 담그며 ‘앞으로 당분간 10년은 서울 쌍둥이의 독주체제’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듬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우승주를 꺼내 마실 일은 없었다. 드라마에선 성나정(고아라 분)의 결혼식이 열린 2013년에도 여전히 우승주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응답하라 1994’가 방영한 지도 벌써 10년, 마지막 LG 우승으로부터 29년이 지났다. 마침내 올해 찬장 속에 고이 간직해둔 우승주를 꺼내 마실 시간이 왔다. 시즌 내내 리그 최강팀으로 선두를 질주한 LG는 지난 10월 3일 감격의 정규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직행을 이뤘다. 29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LG 우승은 ‘신드롬’이다. 우승 소식을 1면에 다룬 종이신문이 동나서 특별판을 찍어냈고, 우승 과정을 다룬 책까지 나왔다. 만약 먼 훗날 ‘응답하라 2023’이란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LG 우승은 올 한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등장할 것이다.

1994년 LG 우승을 만든 주역들은 올해 LG의 정규리그 우승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스포츠춘추는 ‘신바람 야구’로 우승을 이끈 사령탑 이광환 당시 감독, 선진적인 프런트 운영으로 강팀의 기틀을 다진 최종준 당시 수석 운영부장으로부터 1994년의 추억과 2023 우승 소감을 들어봤다. 

1994년 우승의 순간(사진=LG)
1994년 우승의 순간(사진=LG)

 

이광환 감독 “강팀의 조건 갖춘 LG, 이번에야말로 우승 기대”

이광환 감독은 LG의 마지막 통합 우승 감독이자 한국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주역이다. 1980년대 일본과 미국에서 선진 야구를 배우고 돌아온 이 감독은 마운드 분업과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도입해 프로야구에 변화를 일으켰다. 

초기엔 저항도 심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처음 지휘봉을 잡은 OB 베어스에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창단 때부터 메이저리그식 선진야구를 추구한 LG 구단이 이 감독의 진가를 알아보면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고, 결과는 1993년 준플레이오프 진출과 1994년의 통합 우승으로 돌아왔다.

당시 기억에 대해 이 감독은 “그때 새로운 야구 스타일을 도입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다른 팀들은 안 하는데 우리만 하려니까 저항도 심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그래도 조금씩 프로다운 팀으로 자리를 잡아나갔고 결국엔 모두가 따라가게 되지 않았다. 그 점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올해 LG 우승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이 감독은 “30년이나 우승을 못했지 않나. 너무 오래됐다”고 껄껄 웃은 뒤 “꼭 한번은 우승했으면 했는데,  지난해부터 좋은 선수도 많이 보이고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서 기대를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래전 ‘강팀의 5가지 조건’으로 ‘에이스, 주전 포수, 테이블 세터, 중심타자, 마무리 투수’를 거론했던 이 감독은 올해 LG에 대해서도 “성적을 내기 위한 기본적 조건이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30년 전 야구와 지금을 일대일로 비교하긴 어렵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마운드 전력인데, LG를 보면 지난해부터 마운드가 안정된 게 눈에 띄었다. 여기에 공격까지 받쳐주고 있어 전력이 탄탄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 감독은 “LG 팬들이 30년 동안 우승을 못 보지 않았나. 올해는 어느 정도 전력이 갖춰진 것 같다. 이번엔 우승하리라 생각하고 있다”며 덕담을 전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

 

“구본무 회장님이 LG 우승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1994년 LG 우승의 비결을 얘기하려면 프런트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기준으로는 생소한 야구를 추구한 데다 우승 경험도 없는 이광환 감독을 영입한 건 당시 LG 프런트의 혜안을 보여주는 대목. ‘아저씨 이미지’가 강했던 프로야구단을 세련되고 깔끔한 이미지로 잘 포장해 10대 팬과 여성 팬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은 것도 LG가 프로야구에 공헌한 대목이다.

프런트의 핵심인 수석 운영부장으로 1994년 우승을 함께한 최종준 전 단장(현 대한바둑협회 수석부회장)은 “10년이나 15년도 아니고 29년이면 굉장히 긴 세월 아닌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다. LG가 정말 한을 풀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소감을 말했다.

‘앞으로 당분간 10년은 서울 쌍둥이의 독주체제’라고 외친 드라마 속 성동일처럼, 최 전 단장도 1994년 우승 당시 LG의 전성기를 예감했다. 그는 “1990년 창단 우승하고 1993년 3위, 1994년 우승을 하지 않았다. 당분간 LG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했고, 전성기가 오래갈 줄 알았다. 그런데 10년 넘게 포스트시즌에 못 나가는 암흑기가 찾아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프런트 출신답게 최 전 단장은 팀 성적에 프런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994년에도 그랬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최 전 단장은 “당시만 해도 언론에서 ‘프런트 야구’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프런트가 제 역할을 해야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며 “OB에서 이광환 감독을 영입한 이유도 메이저리그식 구단 운영을 하려면 선진 야구에 밝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 “당시 선진 야구를 위해 스카우트를 늘리고 트레이닝 파트도 보강했다. 경기장 시설도 개선하면서 선수단 지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장과 프런트의 조화가 잘 이뤄진 게 좋은 성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최 전 단장은 “차명석 단장은 선수 시절에도 언변이 좋고 재치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연봉 협상 때마다 구단 내에서는 ‘우리 팀에 차 변호사가 두 명 있다’고 했는데 그게 차명석, 차동철이었다”면서 “올해 LG 우승도 프런트를 잘 이끌어 좋은 선수단을 만든 차명석 단장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최 전 단장은 LG 우승 소식을 듣고 작고한 구본무 회장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팀의 지주였던 구본무 회장님이 LG 우승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안타깝다” “그분의 야구단에 대한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선수단이나 구단 운영엔 일절 관여를 하지 않으셨다. 구단 사장님과 내게 거의 전권을 맡겨놓고 응원해 주셨다. 구 회장님이 계셨기에 LG가 우승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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