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전 감독과 이광환 감독(사진=스포츠춘추 DB)
박용진 전 감독과 이광환 감독(사진=스포츠춘추 DB)

 

[스포츠춘추]

지난 2일 세상을 떠난 이광환 전 LG 트윈스 감독을 향한 야구계의 애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전 절친이었던 야구 원로 박용진 전 감독이 추모글을 발표했다. 박용진 전 감독은 3일 "나의 영원한 친구, 광환아"로 시작하는 추모글을 통해 64년간 이어진 우정을 회상하며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광환 전 감독은 지난 2일 오후 3시 13분 제주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1948년 대구 출생인 고인은 중앙고와 고려대를 거쳐 한일은행과 육군 경리단에서 내야수로 활약했다. 1977년 모교인 중앙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1980년대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와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선진야구를 익혀 한국야구 혁신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박용진 전 감독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LG 트윈스 2군 감독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을 맡아 이광환 1군 감독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1948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1961년 대구중학교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나 평생지기가 됐다.

박 전 감독에게 이광환은 '평생의 동지이자 인생의 은인'이었다. 박 전 감독은 "1961년, 대구 중학의 교정에서 같은 반에서 너와 처음 만난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며 64년 전 첫 만남을 떠올렸다. 당시 이광환은 "유격수로 정말 야구를 예쁘게 잘했고", "야구만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으며 공부도 잘한 야구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중학교 동창에서 시작해 육군야구부 동료, 고교야구 지도자, 프로야구 감독으로 함께 걸어왔다. 박 전 감독은 "세월이 흘러 야구공 하나에 온 꿈을 실었던 소년들이 어느덧 육군야구부의 동료로, 고교야구의 지도자로, 그리고 프로 무대의 동반자로 함께 걸어온 지 벌써 60여 년이 훌쩍 넘었다"고 적었다.

1970년대 말 고교 감독 시절에는 박 전 감독이 선린상고를, 이광환이 중앙고를 맡아 동대문야구장에서 자주 맞붙었다. 박 전 감독은 "나는 선린 감독으로 너는 중앙고 감독으로 동대문 야구장에서 경기는 늘 너의 번쩍이는 지략으로 경기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면서도 "서로의 벤치 싸움 속에서도 결국엔 존경과 우정을 잃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프로야구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더욱 특별했다. 박 전 감독은 "나는 2군 감독으로 너는 1군 감독으로 LG, 한화에서 두 번의 만남은 너무나 소중한 만남이었다"며 "1군, 2군을 거의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한 일은 어느 감독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감독은 이광환의 가장 큰 업적으로 선진야구 도입을 꼽았다. "네가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배워온 선진야구의 이론과 테크닉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며 "거기서 배워온 아이디어를 팀에 접목하려 애썼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회상했다.

이광환의 혁신적 시도는 처음에는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가 증명됐다고 박 전 감독은 강조했다. "팀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켰고 때로는 이 창조성을 이해하지 못해 비난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옳은 것이 되었다"고 적었다. 특히 "너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율야구, 야구는 모르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이광환의 지도 철학을 기억했다.

10년간 서울대 야구부를 지도한 이광환 감독(사진=서울대 야구부)
10년간 서울대 야구부를 지도한 이광환 감독(사진=서울대 야구부)

박 전 감독에게 이광환은 친구이자 야구 동료를 넘어 인생의 은인이기도 했다. 박 전 감독은 "2018년, 하늘로 먼저 떠난 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해준 이도 바로 너였다"며 "그 인연 하나가 내 삶을 바꾸었고, 나는 한평생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너를 기억하며 살아왔다"고 밝혔다.

박 전 감독은 이광환을 "강한 직구처럼 정직했고, 누구보다도 타인을 존중하는 넓은 마음을 지녔다"며 "음악을 아는 사람으로 기타를 치며, 독서 모임을 만들고 낭만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또한 "늘 야구를 사랑했고, 사람을 믿었으며, 낭만이 있었다"며 "후배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았던 진정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너는 내 인생에 야구만 남긴 사람이 아니었다"며 "너는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을 선물해준 친구였고, 언제나 곁에서 나를 일으켜준 버팀목이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너의 삶, 너의 철학, 너의 미소는 이 땅 위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라며 "부디 그곳에서 평안히, 환한 미소로 우리를 지켜봐 주길 바란다"는 애틋한 작별 인사로 추모를 마무리했다.

이광환 전 감독은 1994년 LG 트윈스를 통합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승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통산 608승으로 역대 11위에 그쳤지만, 5인 로테이션과 불펜 분업화, 자율야구 등 한국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가였다. 은퇴 후에도 여자야구와 티볼 보급, 서울대 야구부 무보수 지도, 야구박물관 건립 등 야구 발전에 평생을 헌신했다.

저작권자 © 더게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