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
프로 입단은 흔히 ‘바늘구멍’에 비유되곤 한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하물며 프로 첫해 1군 데뷔는 어떨까. 낙타가 아닌 코끼리를 떠올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난이도다.
하지만, 올 시즌엔 그 어려운 걸 해낸 새내기들이 제법 많다. 지난해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한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정대선이 좋은 예다. 올 시즌 롯데에 입단한 정대선은 지난 9월 1군 무대를 처음으로 밟았다. 최근 잠실 원정 더그아웃에서 만난 거인 군단의 새싹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경했던 선배들과 함께 1군 더그아웃에 있다. 특히, (안)치홍 선배와 동반 출전할 때는 기분이 묘하다. 배울 건 배우면서도 우린 ‘프로’니까 늘 경쟁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롯데 정대선·키움 오상원, “고교 무대와 확실히 다르다” 이구동성

정대선은 2004년생 우투·우타로 세광고등학교를 졸업해 2023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 43순위로 입단했다. 이종운 감독대행은 시즌 초부터 정대선을 지켜본 이다. 당시 2군 감독이던 이 대행은 정대선을 두고 “공을 맞히는 능력이 워낙 좋아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한 바 있다.
선수 본인도 “프로 입단 전부터 가리는 구종이나 투구 스타일(좌·우완) 없이 늘 자신감 있게 타석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런 정대선이 마침내 ‘임자’를 만났다. 겁 없던 신인 타자가 처음 느낀 벽은 바로 한화 이글스 좌완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다. 정대선은 올 시즌 산체스를 3차례 만나 삼진 하나를 포함해 출루에 모두 실패했다.
“최근 인천에서 맞상대한 커크 맥카티(SSG 랜더스 좌완) 공 또한 좋았지만, 지금까지 본 공들 중에서 산체스의 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이 날아온다.” 정대선이 감탄하듯 들려준 얘기다.
열아홉 루키 정대선은 올 시즌 9월 말 1군 데뷔 후 17경기 동안 41타석을 소화했다. 짧은 시간 내 확실한 숙제를 받은 정대선은 “1군 투수들이 확실히 만만치 않다. 그중 팔 각도가 낮은 사이드암 공이 좀 어려운 듯싶다. 다만, 더 많이 상대할수록 눈에 익숙해지고 있다. 여기서 더 발전하는 모습을 팬들께 보여드리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키움 히어로즈 신인 우완 오상원도 7월 말 후반기 시작과 함께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한 오상원은 187cm·84kg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며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동기 김동헌(12순위)과 함께 2라운드(16순위)로 지명돼 키움 유니폼을 입었다.
오상원은 “프로 무대는 확실히 다르다”며 “작년까진 고교야구선수로 여러 대회를 나가곤 했지만, 휴식일 텀도 나름 길고 숨 고를 틈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새삼 체력적인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가능한 한 밥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영양제도 먹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오상원은 “우리 팀 (김)동헌이도 그렇고, 입단 동기들이 1군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나 스스로 조바심이 났다. 그게 오히려 자극이 돼 나를 앞으로 이끄는 느낌이다. 내년엔 ‘오상원’하면 2군보다 1군이 더 익숙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 시즌 1군 11경기 동안 타자 74명을 상대한 오상원은 그 가운데 “구자욱(삼성), 양의지(두산) 선배들과의 타석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프로 오기 전부터 꿈꿔왔던 순간인데, 그 두 선배 상대론 도무지 던질 곳이 안 보이더라. 내년 맞상대가 기대된다. 탈삼진 욕심은 없지만, 올해보다 성장한 모습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고 싶다.” 오상원이 밝힌 당찬 포부다.
‘향상심(向上心)’ 가득한 루키들,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한편, 4월 개막 엔트리에 포함돼 150일 넘게 1군에 머무른 신인들도 있다. SSG 우완 이로운(188일)과 키움 포수 김동헌(162일)이 그 대표격이다.
하지만 이로운, 김동헌이 올 시즌 내내 부침 없이 탄탄대로만 달린 건 아니었다. 시즌 도중 2군으로 내려갈 때도 있었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상륙자들’ 일원이 된 이로운의 경우, 5월 초 감기 몸살 증상으로 2군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를 떠올린 이로운은 “회복 차원에서 내려간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휴식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주변 코치님들 조언을 통해 키킹 동작도 수정하고, 투구 밸런스를 잡으려고 계속 노력했다”고 말했다.
키움 오상원처럼, 이로운 또한 삼성 외야수 구자욱과의 맞대결을 줄곧 고대했다. 특히, 본리초-협성경복중-대구고를 졸업한 이로운은 구자욱과 12년 차 초·중·고 동문이다. 그런 구자욱을 만난 건 지난 4월 13일 대구 원정에서였다.
“프로 데뷔 후 시즌 두 번째 등판 만에 (구)자욱 선배를 만났다.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비록 2루타를 맞아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로운의 기억이다.
그 외에도 상대하기 어려운 선배 타자들로 홍창기(LG), 채은성(한화) 등을 손꼽은 이로운은 “두 선배는 타석에서 특별한 약점이 보이질 않는다. 매 순간 마운드 위에서 상대할 때마다 정말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로운은 “나 스스로에게 올 시즌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기복 문제가 컸다. 더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야 한다. 불펜이든, 선발이든 앞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에서 실점을 최소화하려면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10월 초 류중일호에 승선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키움 김동헌 역시 올 시즌 2군보단 1군에 더 친숙한 이름이다. ‘신인 포수’답지 않게 올해 1군 수비를 522이닝이나 소화했다.
“홍원기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아낌없이 경기에 내보내 주셨다. 그 기회만큼이나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점이 있다. 그래서 이번 마무리캠프는 독하게 소화해야 할 것 같다.”
지난 14일 인천에서 열린 키움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만난 김동헌의 말이다.
‘개막 엔트리 진입, 원정 구장 다 가보기, 포수 수비 500이닝’, 올해 개막 전 김동헌이 1군에서 꿈꾼 목표다. 그걸 모두 달성한 김동헌의 시선은 경기 수와 타격 기록을 향한다. 이에 김동헌은 “올해보다 더 많은 타석을 소화하고 싶다. 시즌 100안타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나로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향상심(向上心)’ 없는 프로 선수가 있을까. 때론 좌절과 실망감이 큰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는 법이다. 김동헌도 좌절하기보단 더 큰 도약을 꿈꾼다. 내년 시즌을 향한 계획을 묻자, 김동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쁜 일도 많았지만, 내가 받은 기대만큼 날 잘 보여주진 못한 한 해였다. 내년엔 ‘신인’이라는 변명도 할 수 없다. 지금보다 훨씬 잘해야 한다. 다가올 겨울은 귀중한 시간이다. 잘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
야구소년들이 비로소 프로 선수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금의 미숙한 이 모습을 기억해 두자. 훗날 미래엔 KBO리그를 대표할 이름들이 될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