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마무리로 재기한 임창민(사진=키움)
키움 마무리로 재기한 임창민(사진=키움)

 

[스포츠춘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일의 대부분은 드라마보다 다큐에 가깝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이상이나 논리적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열심히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투자한 만큼의 수익이 반드시 보장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좋은 의도에서 한 일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과정은 나빴는데 결과는 좋은 경우도 나온다. 

그런 야구에서 정직한 노력으로 값진 결실을 본 선수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올해 KBO리그에선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두 동갑내기 노장의 드라마가 큰 울림을 줬다. 1985년생으로 올해 서른여덟인 키움 임창민과 LG 김진성이다. 한때 NC 마무리 투수였고 ‘단디 4’ 멤버였던 둘은 2021시즌이 끝난 뒤 나란히 방출 통보를 받았다. 선수 은퇴까지 고민했지만 어렵게 새 소속팀을 찾았고, 올 시즌 다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임창민은 올 시즌 100세이브를 넘어 120세이브를 달성했다(사진=키움)
임창민은 올 시즌 100세이브를 넘어 120세이브를 달성했다(사진=키움)

 

임창민은 키움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51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1홀드 26세이브 평균자책 2.51로 전성기인 2015~2017시즌의 활약을 재현했다. 역대 38세 이상 투수 가운데 한 시즌 26세이브 이상을 거둔 투수는 임창민을 포함해 8명뿐이다. 오승환, 임창용, 김용수, 구대성이라는 ‘레전드’ 투수들만이 임창민과 같은 일을 해냈다. 

개인 통산 100세이브를 넘어 120세이브를 달성한 것도 큰 성과다. 2017년까지 NC 붙박이 마무리로 활약하며 통산 91세이브를 쌓은 임창민은 2018년 부상과 수술로 3세이브를 더하는 데 그쳤다. 이후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한 개의 세이브도 추가하지 못해 통산 100세이브 기록은 불가능한 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해 두산 유니폼을 입고 2세이브를 더하면서 100세이브에 4개 차로 접근했고, 올해 키움 소속으로 100세이브 금자탑을 쌓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세이브를 쌓아나간 끝에, KBO 역대 15번째 120세이브 투수가 되는 명예를 얻었다. 

김진성의 역투(사진=LG)
김진성의 역투(사진=LG)

 

김진성이 거둔 성공도 기억할 만하다. 올 시즌 LG 필승조로 활약한 김진성은 21홀드를 추가해 역대 17번째 ‘100홀드’ 대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시즌 최종전 포함 무려 80경기나 마운드에 올라, 역대 단 11명뿐인 ‘시즌 80경기 출전’ 투수로 이름을 남겼다. 이 11명 가운데 좌완이 아닌 우완 투수는 김진성이 유일하다. 

올해 김진성은 단순한 ‘재기’ 수준을 넘어 아예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등판 경기 수와 평균자책(2.18)은 물론 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WAR)도 2.97승으로 개인 한 시즌 최고 기록이다. LG 팀 내에서 김진성보다 WAR이 높은 투수는 외국인 에이스 아담 플럿코(3.89승) 하나뿐이다. 김진성 스스로도 “시즌 끝난 뒤 기록 사이트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할 정도로 굉장한 활약이었다. 

임창민과 김진성의 NC 시절(사진=NC)
임창민과 김진성의 NC 시절(사진=NC)

 

“무서울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임창민-김진성” 

임창민과 김진성의 드라마틱한 재기를 지켜보며 그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이 있다. NC 다이노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로 두 선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정연창 팀42 트레이닝 센터 대표 코치다. 정 코치는 “프로의식과 철저한 몸 관리, 야구에 대한 사랑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수들”이라며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운동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게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정 코치는 임창민에 관해 “함께 밥 먹으러 가면, 샐러드를 사 와서 따로 먹을 정도로 빈틈없이 식단을 관리했다. 다들 찌개 먹고 밥 먹고 할 때 혼자 샐러드를 먹을 만큼 철저했다”고 떠올렸다. 김진성에 대해서도 “운동 시작하는 시간이 1시면 아침 9시부터 나와서 먼저 운동을 시작하는 선수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8세 노장이 된 지금도 임창민, 김진성은 여전히 NC 시절의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나이와 몸의 변화에 맞춰 달라진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다.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임창민은 “나이가 어릴 땐 항상 컨디션이 좋았다. 스스로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반면 지금은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많다. 경기 후 전기 치료를 받기도 하고, 보강 운동이나 경기 전후 루틴을 좀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진성은 “지금도 운동 시간 4시간 전에 먼저 와서 시작한다. 홈 경기 때 3시부터 운동이면 11시 반 정도에 먼저 와서 러닝부터 한다”면서 “그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몸 푸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이다. 몸 푸는 데만 거의 30~40분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LG 트레이닝 파트에서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휴식을 병행하며 운동한 게 올해 80경기에 나가면서도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낸 비결”이라고 밝혔다.

김진성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사진=LG)
김진성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사진=LG)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정연창 코치가 바라본 임창민은 야구계 최고의 ‘학구파’ 선수다. 정 코치는 “책을 많이 읽는데, 책도 그냥 책이 아니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같은 책을 읽는다”고 전했다. 오프시즌 열리는 야구 관련 학술 행사에 연사로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이에 관해 임창민은 “책은 호기심이 생기면 일단 읽는 편이다. 운동 외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책을 접한다”고 했다.

김진성에 대해 정 코치는 “책임감이 정말 강하고,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선수”라고 했다. 그 책임감은 2020년 한국시리즈 6경기 연속 등판을, 올 시즌 리그 최다 80경기 등판을 만든 동력이다. 이에 대해 김진성은 “내가 가장 힘들 때 LG에서 먼저 연락을 해줬고 손을 내밀었다. 그 기대와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밝혔다.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두 노장이 올 시즌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이는 노장 선수를 쉽게 버리고, 웬만해선 재기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KBO리그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국야구에선 부상과 부진에 빠진 노장 선수가 마이너 계약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재기에 성공하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그러나 KBO리그에서 방출은 곧 현역 은퇴로 이어진다.

김진성은 “박찬호 선배님도 마이너리그에서 예전 폼을 찾으려고 힘든 시기를 보내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쯤에 월드 시리즈를 경험하지 않았나”라며 “나도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힘줘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베테랑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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