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춘추=인천]
1승만 더하면 수원이다. 2023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을 먼저 확보한 NC 다이노스는 향후 남은 3경기 내로 SSG 랜더스 상대로 1승을 거둘 시 KT 위즈가 기다리는 플레이오프로 향할 수 있다.
그런 NC를 기다리는 SSG 3차전 선발투수는 좌완 영건 오원석이다. SSG는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로에니스 엘리아스-김광현-오원석으로 이어지는 ‘3연속 좌완 선발’ 카드를 꺼냈다.
SSG의 올 시즌을 돌아볼 때, 제법 익숙한 그림이기도 하다. 사실 정규시즌은 더했다. 현시점 부상 복귀로 선발이 아닌 불펜 대기 중인 외국인 투수 커크 맥카티도 정규시즌에선 선발 투수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자 단적인 예는 5월 20일부터다. SSG는 당시 20일 김광현, 21일 맥카티, 23일 오원석, 24일 엘리아스 등 4연속 좌완 선발 등판을 선보인 바 있다. ‘왼손 4중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게 끝이 아니다. 시즌 중 김원형 SSG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 남은 한 자리에 백승건을 투입해 ‘선발진 전원 좌완화’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SSG는 올 시즌 팀 좌완 선발 최다 등판(104)에 최다 이닝(568.1)에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KBO 42년 가을야구 사상 두 번째 ‘3연좌’? 2023년 SSG가 선보인다

KBO리그 42년 역사에서 ‘2023년 SSG 랜더스 선발진’ 같은 경우는 찾기 어렵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연속 좌완 선발 등판을 펼친 팀을 찾는 건 더 어렵다.
좌완 선발 3명을 앞세워 가을야구 무대에 오른 팀은 이전까지 단 5팀뿐이었다. 먼저, 1986년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다. 그해 삼성은 김시진-성준-김일융-양일환-권영호-진동한 등 선발진으로 빙그레 이글스(42)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완투(34)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 삼성이 1986년 포스트시즌에선 김일융(5경기 3선발)부터 권영호(3경기 2선발), 성준(4경기 1선발)까지 좌완 셋을 선발로 활용하며 OB 베어스(플레이오프), 해태 타이거즈(한국시리즈)와 맞섰다.
이들의 성적은 셋이 합쳐 총 12경기(6선발) 동안 50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1.98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좌완 에이스 김일융의 활약이 대단했다. 김일융은 그해 포스트시즌 5경기(3선발)에 나와 3완투 1완봉 괴력투를 선보였고, 30.1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 0.89를 기록했다.
다만 삼성의 경우, 좌완 셋이 나란히 3경기를 연속으로 책임진 적은 없다. 시리즈 중간마다 김시진 혹은 양일환이 선발로 등판했기 때문. 이후 2002년 삼성(나르시소 엘비라-전병호-오상민), 2009년 두산(후안 세데뇨-크리스 니코스키-금민철), 2015년 두산(장원준-유희관-이현호) 등이 포스트시즌에서 좌완 선발 셋을 기용했다.
최근엔 지난해 SSG 랜더스가 있었다. KBO리그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개막부터 최종전까지 1위를 유지하는 것)로 정규시즌을 제패한 뒤 한국시리즈마저 우승한 SSG는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김광현, 숀 모리만도, 오원석 등 좌완 3명을 선발 투수로 기용했다. 에이스인 윌머 폰트만이 선발진 가운데 유일한 우완이었다.
2023년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로 김광현을 꺼낸 SSG는 그 뒤 폰트를 2차전에 내세웠고 3차전은 오원석이, 4차전은 모리만도가 등판했다. 이때도 포스트시즌 3연속 좌완 선발 등판은 없었던 것.
그렇기에 올해 SSG의 포스트시즌은 특별하게 기억될 전망이다. 이전까지 KBO리그 유일 ‘포스트시즌 3연속 좌완 선발 등판’은 2015년 두산이 유일했다. 그해 두산은 준플레이오프에서 2~4차전에서 장원준, 유희관, 이현호를 차례대로 선발로 투입한 바 있다.
23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인천 SSG 랜더스필드 홈 팀 더그아웃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원형 SSG 감독은 3차전 선발 투수 관련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오원석은 좋은 투수다. 지난해 한국 시리즈에서도 잘 던졌고, 최근 10월 이후 투구 내용(2경기 12이닝 4실점 평균자책 3.00)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3차전 선발 투수로 결정했다.”
‘3연속 좌완 선발’ 마주한 NC 타선, 이유 있는 자신감

23일 원정팀 더그아웃에서 만난 NC 사령탑도 SSG의 좌완 선발진을 경계하면서도 “우리 팀 타선이 좌완 투수 상대 경험이 많아 잘 준비할 수 있을 듯싶다”고 신뢰를 내비쳤다. 그 까닭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법 다 이유가 있는’ 자신감이다.
NC는 올 시즌 좌완 상대로 무척 강했던 팀이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리그에서 네 번째(1,660타석)로 좌완 투수와 많이 붙었고, 그만큼 또 잘 쳤다. NC의 정규시즌 좌완 상대 팀 타율은 0.285로 리그 2위에 해당한다. 팀 득점(226), 팀 타점(216) 역시 리그 2위다.
이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송지만 NC 타격코치는 “데이터 팀의 분석이 큰 힘이 됐다. 또 그걸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분석 및 이해 능력 자체도 뛰어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송 코치는 “최근 들어 좌완 선발 투수들이 리그에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 타선은 일단 몸쪽 공 관련해서 대처가 탁월하다. 특정 상황에 따른 즉각적인 대응 역시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설이 있다. ‘타자는 같은 손 투수 상대로 취악하다’는 것이다. 거기서 비롯된 게 ‘플래툰 시스템’이고, 많은 팀이 이를 채택해 경기 운용 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올 시즌 NC에는 제법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다. NC 핵심 좌타 라인들이 같은 손 투수들 상대로 줄곧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간판 내야수 박민우의 경우, 좌완 상대로 올해 155타석 동안 타율 0.351로 강한 면모를 자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캡틴’인 베테랑 외야수 손아섭 역시 197타석을 소화해 타율 0.324를 기록하며 좌완 상대로 좋은 모습을 선보인 것.
둘의 이름은 올 시즌 100타석 이상 소화한 좌타자 가운데 각각 타율 3위, 7위에 자리할 정도. 그 외에도 외국인 타자 제이슨 마틴(163타석 타율 0.292)도 해당 부문 12위다. 같은 기준에 OPS(출루율+장타율)로 따지면, 셋은 모두 리그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그만큼 좌완 상대로 강했던 NC 좌타 라인이다.
이에 ‘NC 좌타 라인’을 두고 송 코치는 “우리 팀은 플래툰 시스템에 크게 영향을 받는 팀은 아니다. 무엇보다, KBO리그에서 내로라하는 교타자들이 손아섭과 박민우다. 마틴 또한 경험이 탄탄한 선수 아닌가. 좌·우 가리지 않고 타구 방향도 골고루 잘 치는 선수들에게 굳이 족쇄를 채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들의 활약은 빛났다. 비록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선 8이닝 2실점 괴력투를 펼친 SSG 엘라아스 상대론 어려움(손아섭 0안타·박민우 1안타·마틴 0안타)을 겪긴 했다. 하지만 셋의 진가는 2차전에서 다시 빛났다.
손아섭-박민우로 이뤄진 테이블세터는 23일 경기 초부터 1안타 2볼넷을 합작하며 상대 선발 김광현을 거세게 압박했다. 4번 타자 마틴 또한 1회 초 적시 2루타를 때려내며 이날 팀의 첫 타점을 신고한 바 있다.
“정규시즌과 단기전은 엄연히 다른 영역은 맞다. 그런데, 최근 선수들과 대화를 해보니 그간 쌓인 경험을 포스트시즌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더라. 선수들이 좌완 상대로 오히려 자신감을 얻으면 얻었지, 따로 중압감은 없는 듯하다.” 송 코치의 설명이다.
공룡군단이 어느덧 가을 무대 3연승으로 돌풍을 향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제 한 계단만 올라서면 플레이오프다.
SSG는 23일 당초 4차전 선발로 내정된 우완 문승원이 팀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4.2이닝 동안 75구를 던졌다. 이틀 휴식 후 26일 4차전에 오르는 건 어려울 전망. 포스트시즌 탈락 위기에 몰린 SSG가 1차전 선발 엘리아스의 3차전 구원 혹은 상황에 따라 4차전 선발 등판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있다.
NC는 결국 좌완을 넘어서야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하다. 남은 시리즈 기간, NC 타선이 슬기로운 대응 능력을 계속 선보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