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롯데의 김태형 감독(사진=롯데)
이제는 롯데의 김태형 감독(사진=롯데)

 

[스포츠춘추]

초보 감독과 비교해 기성 감독이 갖는 장점은 ‘예측 가능성’이다. 초보 감독이 막 신장개업한 가게라면 기성 감독은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과 같다. 먹어보기 전엔 맛집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새 가게처럼, 초보 감독도 실제 경기를 치르고 시즌을 지내보기 전까지는 어떤 감독인지 알 수가 없다. 

선수 시절엔 스마트한 이미지였는데 감독이 돼선 이런 사람이 현역 때는 어떻게 야구를 잘했을까 싶기도 하고, 코치 시절엔 소통왕이었던 사람이 감독이 돼선 고집불통 본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로이스터-힐만을 생각하고 뽑은 외국인 감독이 남들의 평가와 스트레스에 취약한 예민 보스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반대로 우려와 저평가 속에 부임했는데 막상 맡겨보니 기대 이상으로 잘하는 감독도 종종 나온다. 

이 면에서 김태형 감독은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매장 같은 지도자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 두산 베어스를 맡아 7번 한국시리즈에 올라갔고 3번 우승했다. 올해는 해설가로 변신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야구관을 대중과 나눴다. 구단, 코치, 선수들은 김 감독이 어떤 감독인지 그동안 보고 들어서 잘 안다. 팬들 역시 김 감독이 이끄는 팀이 얼마나 강한지 매년 ‘당해봐서’ 잘 알고 있다. 그 기대감이 ‘롯태형’을 현실로 만들었다. 24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 행보를 시작한 거대 프랜차이즈 롯태형 야구는 과연 어떤 맛을 낼까. 김 감독이 과거 두산 사령탑 시절 했던 발언들과 취임식에서 나온 발언들을 근거로 예상해 봤다.

김태형 감독과 롯데 선수단(사진=롯데)
김태형 감독과 롯데 선수단(사진=롯데)

 

하나: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만들어가는 거다

김태형 감독은 섣불리 ‘나는 어떤 야구를 하겠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김 감독도 두산에 처음 선임됐을 때는 ‘소통하겠다’ ‘공격야구를 하겠다’고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내놨지만, 연차가 쌓인 뒤론 자기 야구를 규정하는 발언이 줄어들었다. 

한 팟캐스트에 나와서는 “후배 감독들에게 자부심을 품으라고 이야기한다…누가 짜놓은 프레임에 맞추어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후배 감독들이) 데이터와 선수들 간의 소통을 중요시한다는데 지금껏 야구 감독했던 선배들이 한마디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김응용 감독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젊은 감독들이 주변 여론에 따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걸 중요시하겠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투수 중심 야구, 타격 중심 야구, 데이터 야구, 소통 야구 등등 자신의 야구를 특정한 프레임에 가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팀이 감독의 야구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감독이 팀에 맞는 야구를 하면 된다. 유튜브 ‘크보핵인싸’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선수 뎁스보고 갈 팀 정하는 감독은 감독의 자격이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감독이 안고 가는 거다”는 말로 이를 시사했다.

취임식에서도 김 감독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직접 훈련을 통해 젊은 선수들을 보고 느끼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수 파악이 중요하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도 말했다. 특정한 방향성이나 야구관에 롯데를 끼워 맞추기보단, 훈련과 실전을 통해 파악한 롯데 전력을 극대화하는 길을 택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 감독은 ‘내 야구는 어떤 야구다’라거나 ‘어떤 야구를 하겠다’보단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그는 앞의 팟캐스트에서도 “그냥 딱 까놓고 가서 ‘3년 안에 몇 위 하겠다.’ 이게 훨씬 낫다. 내가 2015년 부임하자마자 ‘우승하겠다’ 이걸 왜 했느냐. 그럼 선수들이 뭐라 하겠나. ‘감독 왜 저래? 우승한대.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식에서 김 감독은 “우승이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첫 번째는 포스트시즌 진출이고 두 번째는 우승이다. 선수들도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좋았다가 안 좋아지는 모습이 반복되면 안 된다.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기자회견하는 김태형 감독(사진=롯데)
기자회견하는 김태형 감독(사진=롯데)

 

둘: 도망가는 야구 금지, 공격적으로!

특정한 프레임을 거부하는 김태형 감독이지만, 초보 감독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강조한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공격적인’ 야구다. 투수는 도망가지 않고 타자와 붙어야 하고, 타자도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자신 있게 배트를 돌려야 한다. 경기 전 인터뷰 때마다 어찌나 자주 강조했는지, 취재용 웹 노트에 ‘김태형+공격’을 검색하니 수십 개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

김 감독은 “투수는 공격적으로 붙어 승부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안타나 홈런을 맞으면 투수를 바꿔주면 된다. 하지만 도망가는 피칭으로 볼넷을 내주면 상대에게 흐름을 내주게 된다. 그게 제일 나쁘다”면서 “아무리 잘 치는 타자도 3할인데, 투수는 3번 져도 7번 이기면 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결과가 좋아도 도망가는 피칭을 하면 투수와 포수를 질책했다. 한번은 투수 이영하에 관해 “빠른볼이 그렇게 좋은데 왜 자꾸 슬라이더로 도망가나. ‘볼볼볼’ 만들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라고 질책했고 대량실점으로 패한 뒤엔 “투수들의 도망가는 피칭이 실점으로 이어져 어려운 경기를 했다”고 평했다. 새로 합류한 외국인 투수에 대해 평가할 때도 “공격적으로 타자와 붙는 모습이 보였다”고 긍정적으로 답한 적이 있다.

타자들을 향한 주문도 비슷하다. 김 감독은 “기다리기보다 좋은 공이 들어오면 자신 있게 방망이를 돌려야 한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당연히 자신 있게 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루에서도, 수비에서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이고 자신 있고 두려워하지 않는 플레이를 주문한다. 어떤 점에서는 롯데의 마지막 전성기인 제리 로이스터 시절 ‘노 피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안그래도 김 감독이 취임식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김 감독은 “롯데 팬들은 열정적”이라며 “화끈한 공격 야구를 하면서 찬스가 오면 (상대를) 몰아붙이는 공격적인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도 정확하게 롯데 팬들이 듣고 싶어했던 바로 그 말일 것이다. 

우승 확정 뒤 김태형 감독에게 안기려고 달려가는 배영수(사진=두산)
우승 확정 뒤 김태형 감독에게 안기려고 달려가는 배영수(사진=두산)

 

셋: 리빌딩은 없다

김태형 감독은 -그리고 그의 전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는- 리빌딩이라는 개념에 부정적이다. 정확히는 한국식 리빌딩, 아직 싸울 준비도 안 된 어린 선수에게 무작정 기회를 주고 인위적으로 세대를 교체하는 식의 리빌딩을 부정한다.

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와서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수시로 강조했다. 주전 무임승차나 거저 주어지는 1군 자리는 없다. 지금 두산 베테랑 선수들도 다 오랜 이천 생활을 이겨내고 1군 기회를 받았고, 선배들의 부상이나 부진과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으면서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두산 시절인 지난해 김 감독은 “우리는 리빌딩이 아니다. 지금 젊은 선수들이 뛰는 건 리빌딩이 아니라, 그 포지션에 선수가 없어서 그 선수들이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인 팀 구성에 대해 “팀의 기존 선수와 어린 선수 간에 여러 요소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면서 “좋은 선수가 있어도 그 포지션에 정말 좋은 주전이 있으면, 그 선수는 주전을 못한다. 계속 잘하는 주전들이 있고,?팀이 강해야 리빌딩도 잘 된다. 어리고 젊은 선수들만으로 팀이 강해지긴 어렵다”는 생각을 밝혔다.

지난 4년간 신인드래프트와 육성을 통해 젊은 유망주를 대거 수집한 롯데는 이제 유망주들이 ‘터지는’ 시기를 기다리는 팀이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은 자신에게 기회가 거저 주어질 것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나이와 연차를 떠나 치열하게 싸우고 한번 기회가 왔을 때 악착같이 기회를 잡아 살아남아야 한다. 공격적으로 싸우고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상위 지명 유망주라는 이유로 나올 때마다 경기를 망치는 데도 계속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봐온 김태형 야구의 맛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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